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품절


맥없이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이야, 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러려면 '그날 밤'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꺼내려면 스스로 잠근 문을 열어야 했다. 문을 열면 죽을 힘을 다해 가둔 기억들이 몰려나와 내 숨통부터 끊어놓을 터였다. 기억은 거기 그대로 있어야 했다. 겨울 뱀처럼 동면해야 했다. 아니, 죽은 자처럼 영면해야 했다. 나는 버틸 수밖에 없었다.-53쪽

숲은 기묘한 빛을 띠었다. 어두우면서도 눈을 시리게 하는 흰빛이었다. 아니다. 흰빛이 아니다. 광휘라 해야 옳을 것이다. 곧게 뻗은 나무들의 수피가 뽑아내는 서늘한 광휘. -156쪽

승민은 보호사나 진압 2인조에게 소리치는 게 아니었다.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세상의 총구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내 심장을 쏘라고. 그래야만 나를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직감은 불길한 예언을 내놓았다. 이놈은 스스로 죽을거야.-264쪽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게 아냐.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나는 살고 싶어.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뿐이야.-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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