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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낳은 후궁들 ㅣ 표정있는 역사 8
최선경 지음 / 김영사 / 2007년 9월
평점 :
조선시대는 철저한 신분제사회였다.. 양반가의 첩은 양첩이냐 천첩이냐에 따라 그 차별이 심하였고 첩의 자식은 서얼이라 하여 벼슬에도 제한이 있었다... 그런데 왕을 낳은 후궁에게도 이런 일이 있다니... 왕은 양반보다 더욱 많은 첩을 거느린 사람이었는데.. 양반가에서 뽑은 후궁뿐만아니라 궁녀중 승은을 입은 후궁도 많았는데... 그런 후궁 중에서 아들을 낳았음에도 대접을 받지못한 후궁들이 있을줄이야.. 이런 후궁중에 아들이 왕이 된 것을 보고 죽은 여인은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뿐이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아들이 왕이되면서 그 시호가 상승됐던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와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안타깝게도 이 두 왕은 결국 반정으로 인해 왕의 자리를 잃어서.,..그들의 어머니의 시호도 격상된지 얼마안되어 다시 강등되고 말았다.. 그리고 세조의 왕위찬탈로 왕의 자리를 빼앗긴 단종... 세조의 아들이 죽은 것이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탓이라 여겨 그녀의 릉은 파헤쳐진채 방치되기도 했던... 그리고 희대의 악녀로 불리우는 희빈장씨!! 궁인에서 왕비까지 오르나 정당싸움에 그리고 그녀의 신분상승욕이 지나친 탓에 세자를 낳았음에도 사약을 마신.. 그리고 아들을 버린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이씨!! 소론과 노론의 대립속에서 남편의 대의를 쫓아 아들을 사지로 몰 수 밖에 없었던.. 그리고 왕의 어머니 중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그나마 그녀는 아들의 지극한 효성에 사후에는 육궁전에 모셔지는 영광과 30년에 걸쳐 서서히 시호를 올렸기에 영조 사후에도 강등되지 않은 채 시호가 남아있다니.. 그리고 고종의 후궁인 영친왕의 어머니 황귀비 엄씨..고종의 아관파천에 도움을 준 여자이자 명성왕후의 시해 후 내전을 관리하던 망하는 조선의 마지막을 지킨 후궁이었다고 할까나?
단순히 왕과 사대부신하들의 역사만을 보다가 왕을 낳은 어머니이자 후궁의 모습을 통해 본 역사의 모습은 새로웠다.. 역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의 한계를 보면서도 어찌보면 양반가의 서얼과는 달리 후궁의 자식이 왕까지 될 수 있었던 점이 신기하기도 한...(150년동안 정실왕비에게서 낳은 소실이 끊겼었으니 어찌 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리고 여인들이 고뇌와 한을 볼 수도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