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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귐의 기도 - 개정판
김영봉 지음 / IVP / 2012년 11월
평점 :
'기도 많이 하시나요?'
으.. 저를 늘 부끄럽게 하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소나무 뿌리를 두어개는 뽑아야 한다는 둥, 누구는 하루에 몇시간 이상 기도한다는 둥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저는 부끄럽게도 실제로 기도를 많이 하거나 깊이 하지 못하는 목사이거든요. 방언기도도 하지 못하고, 3일 금식을 작정하고 기도원에 갔다가 이틀만에 내려온 적도 있습니다. 부목사 시절 새벽예배에 나가서 매일 뒤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나 했구요. 솔직히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는 찬송가 가사는 저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지요. 어느 교회 강대상에는 '하루에 5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는 자, 여기에 설 자격이 없다!'라고 까지 적혀 있다는데, 저는 그 교회 입구도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ㅠ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그런데! 저를 건져낼 그 분(책)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김영봉목사님의 '사귐의 기도'입니다.
요즘 한국교회에 기도가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실제로 각 교회에서 많이 행하던 부흥회도 많이 사라졌고, 기도원에 가봐도 집회인원이 확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재작년엔가 금요일에 그 유명한 한얼산 기도원에 갔었는데, 모인 사람의 수가 100명 정도 밖에 안되지 뭡니까!! 그것이 한국교회의 침체의 원인이라고 하면서 다시 기도의 불을 붙여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요. 확실히 기도의 부흥은 다시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부흥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기도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저자는 기도로 흥한 한국교회가 기도로 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교회에서 기도의 모델은 '얍복강가의 야곱'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씨름으로 표현되고, 우리는 일사각오의 자세로 기도에 임하게 되지요. 저자는 우리가 기도를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기도의 모델로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에서 기도의 응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고, 그래야 능력있는 기도이며, 얻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고, 기도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기도를 덜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안하는 기도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사귐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란 하나님을 사모하여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마음과 영혼을 열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격렬한 감정으로 마음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가 깊어질 수록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며 그분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는 우리가 그려야 할 기도자의 모델은 시편 131편에 등장하는 '젖 뗀 아이'라고 주장합니다. 시편 131편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아..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능력있는 기도'와 너무도 다르지 않습니까? 이런 이미지가 지나치게 정적이고 소극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기도자가 이런 영성을 지녀야 진정으로 인생의 성취가 시작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영성을 가진 사람은 '부산하지 않되 부지런히, 나서지 않되 은밀하게, 열광하지 않되 뜨겁게 살아가며 소명을 위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헌신한다'고 이야기하지요. 사실 이 시편을 쓴 다윗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사람 아니었습니까?
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는 저자 안에 있었던 공허함 때문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모범생으로 자라 목사가 되고 신학자가 되었지만 저자의 내면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무엇'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 해답을 '영성생활'에서 찾으려고 했고, 결국 기도의 대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기도를 연습하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몇년이 흐른 뒤, 서서히 공허감이 사라지고 말과 행동에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고, 결국 정리해서 책으로 낸 것입니다. (사실, 10년전에 이 책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는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었지요. 발간 10주년을 맞이해서 내용을 대폭 추가하고 손질했습니다) 아, 그가 가지고 있던 고민은 지금 저의 고민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기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봅니다. 그동안 우리가 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씩 밝혀서 벗겨내고, 시각을 교정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가 상황을 바꾸기보다는 기도자를 바꾸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협상이 아니라 상담이며, 하나님을 내 뜻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나를 바꾸는 것이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사귀는 것 자체가 기도 응답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지요.
2부에서는 사귐의 기도를 위한 준비로 시간과 장소에 대해 조언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정한 시간을 내어 일정한 장소에서 기도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지요.
3부는 기도를 주제별로 분류해서 설명합니다. 회개기도, 감사찬양기도, 청원기도, 치유기도, 내적치유기도, 중보기도인데요, 각각의 기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뛰어난 통찰력과 날카로운 비판, 그리고 실제적인 대안을 아름다운 글로 보여주지요. 하나하나 떼어서 깊이 생각해 볼 내용들입니다.
4부는 사귐의 기도를 위한 도구들입니다. 말씀묵상, 묵상하는 삶, 묵상기도, 침묵기도, 금식기도, 기도문기도, 호흡기도, 기도일기, 통성/방언기도이지요. 이것 역시 깊이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5부는 사귐의 기도를 통해 맺어지는 열매를 소개합니다. 내적 안정감, 전인적 건강, 영적 충만, 진리로 자유함, 사랑의 능력, 새로운 의식인데요, 이 부분을 읽으면 '아.. 나도 정말 이런 것들을 맛보고 싶다!'는 갈망이 마구마구 샘솟게 됩니다. 이 땅에서 누구나 꿈꾸는 그런 모습이 그려지고 있거든요.
저는 감히 이 책이 이 시대의 고전이 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에 관한 고전은 참 많지만, 우리와 같은 한국인의 관점과 정서를 가지고 기도에 대해 이렇게 잘 정리하고 표현한 책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지요. 그만큼 내용이 깊으면서도 쉽고, 표현도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갈망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형식적이고 세속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역동적이고 깊은 만남의 관계로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처음에 저자가 이야기했던 '젖 뗀 아이'의 평안을 이 땅에서 실제로 맛보아 알고 싶어집니다. 말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이제 뵙고 싶어집니다.
아.. 저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삶으로 기도하면 된다고 핑계를 대지 않고 기도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하나님께 집중해야겠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와의 사귐을 갈망하시면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겠습니다. 말을 늘어놓기 전에 침묵해야겠습니다. 처음에는 어렵더라도 꾸준히 나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