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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6월
평점 :
13계단 - 다카노 가즈아키
-이 나라에서는 흉악 범죄의 피해자가 된 순간, 사회 전체가 가해자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피해자를 괴롭힌들 사죄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요. (p.109)
-범죄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침투하여 그 토대를 들어내는 것이다. (p.143)
-사형 제도를 유지시키는 것은 국민도 국가도 아닌 남을 마구 죽이고 다니는 범죄자 본인이야. (p.213)
-육체의 상처에만 상해죄가 적용되고, 망가진 사람의 마음은 방치되는 것입니다.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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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은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마침 한국어판 20주년 기념 리커버가 새로 나왔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남은 시간은 3개월, 기억을 잃은 사형수의 무죄를 밝힌다는 내용이 흥미롭다.
교도관 난고와 상해치사 전과자인 준이치는 고액의 보수를 약속받고 사형수 기하라 료의 원죄를 밝혀내려 한다. 사건 당시의 기억이 없는 기하라의 유일한 기억은 어딘가로 오르던 계단뿐이다. 두 사람은 사건이 벌어진 장소로 가서 계단이 있을 법한 곳을 샅샅이 찾지만, 그 어디에도 계단은 없다. 그런데 그곳은 준이치가 상해치사로 살해한 피해자의 고향이자 피해자의 아버지가 사는 마을이었다. 10년 전, 준이치가 여자친구 유리와 함께 가출했던 곳이기도 하다. 어딘지 준이치의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에서, 기하라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며 두 사람은 점점 진실에 가까워진다.
읽으면서 범인을 추리했지만 빗나갔다. 범인은 항상 이미 등장한 사람이기에 그 사람일 줄 알았는데 저 사람이었을 줄이야. 후반부에서 소설은 반전이 거듭되고 사건의 긴박함도 커진다. 마지막에 밝혀진 사건의 내막은 내 생각보다 너무 끔찍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준이치의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누가 옳고 그르다의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13계단>은 일본 사형 제도의 구조적 모순과 국가의 범죄 관리 시스템을 비판한 작품이라 당시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사형수가 느끼는 공포감과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교도관의 고통스러운 심리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기하라 료처럼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할 위기에 놓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보다는 난고 같은 교도관, 준이치처럼 상대방의 시비로 벌어진 정당방위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던 소설이다. 아무래도 책에서 거듭 언급되는 ‘개전의 정’, 즉 갱생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정말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누군가가 판단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마지막 준이치의 편지에서도 알 수 있었다.
결말까지 잘 짜인 추리소설이고, 여러 방면에서 생각해 볼 문제도 많은 책이다. 사건의 단서를 찾아가는 것도 재밌고 복선 회수가 완벽한 만큼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게시물은 황금가지에서 서평단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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