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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불꽃을 쫓다 ㅣ 설자은 시리즈 2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월
평점 :
설자은, 불꽃을 쫓다 - 정세랑
-“너는 무엇을 베어야 할지 보는 순간 알 것이다. 아직 보지 못했기에 베지 못했음이야.” (p.17)
-한 사람으로서의 자은은 하지 않을 일을, 관직에 있는 자은이라면 망설임 없이 할 것이었다. (p.78)
-자은은 오지 않은 날들이 기다려졌다. 마침내 삶이 제 것 같았다.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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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렸다. 설자은 시리즈의 1권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에 이어 2권 「설자은, 불꽃을 쫓다」가 드디어 발간되었다. 이 책은 680년대 후반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없었던 사람들의 없었던 이야기다. 1권도 재밌게 읽었지만, 무엇보다 정세랑 작가님이 그리는 여성 탐정 이야기가 좋아서 이번에도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1권 마지막에서 왕의 매가 된 자은이 왕에게 하사받은 칼로 무엇을 베게 될지 궁금했었다. 2권은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과 함께 한층 깊어진 사건들이 자은을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금성 곳곳에서 일어난 화재를 쫓는 ‘화마의 고삐’, 두 번째는 자은이 납치된 ‘탑돌이의 밤’, 세 번째는 기이한 산적들이 나타나는 ‘용왕의 아들들’이다. 각각의 사건이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반전도 있다. 실제 역사와 관련된 부분도 많이 나온다. 한국사 공부할 때 외웠던 9서당 10정, 9주 5소경 등 신문왕의 업적을 떠올리며 읽으면 더 재밌다. 삼한일통을 꿈꾸며 통일한 신라의 이후 사회를 둘러보는 느낌이라 저절로 그 시대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금성에 와 있는 기분도 든다. 그만큼 과몰입하게 만드는 재밌는 소설...
내가 이 소설을 더욱 사랑하는 이유는 마냥 무겁지 않고 곳곳에 정세랑 작가님 특유의 유머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자은의 부하가 된 말갈인 삼생아 걸마지, 걸마형, 걸마달은 등장할 때마다 유쾌했다. 여전히 사고뭉치인 집안의 장남 호은과 여동생 도은의 말 주고받음도 재밌다. 무엇보다 이번에 도은과 산아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남장여자인 자은은 물론이고 여성들의 당차고 영리한 행동이 멋지다. 진실을 알게 된 산아가 흔들리지 않고 굳건해서 더 좋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자은의 파트너 인곤. 웃지 않지만 따뜻한 자은과 달리 웃고 있지만 성정이 차가운 게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자은을 위하고 걱정하는 인물이자, 자은의 짙은 그림자도 되어 준다. 2권에서는 인곤의 과거도 풀렸는데 패망한 백제 출신으로 사는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게 했다. 백제 외에도 신라가 출신에 따라 다양한 서당으로 나누어 군사를 관리했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이 이번 책의 핵심이었다.
지금도 차별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생각하면 과거의 금성도 다르지 않다. 그릇된 사상으로 신라의 피를 지키려는 사람들, 잊힌 왕족의 삶, 자은이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생겨나는 과도한 관심과 불쾌한 시샘들. 크게 보면 현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사회에서 자은은 옳은 일을 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래서 자은은 언제나 사람을 구하고, 나아가 세상을 구한다. 그로 인해 자은의 고뇌는 더욱 깊어지지만 그 또한 영웅의 서사답다. 자은은 베어야 할 사람들을 베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흰 매가 새겨진 칼을 든 자은의 다음 이야기가 더 기대된다. 이 시리즈가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 게시물은 문학동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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