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여자, 작희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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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여자, 작희 ㅣ 고은규 장편소설


*작희는 신문에서 모던 걸이 ‘모단’이고 ‘못된 걸’이라고 비꼬는 기사를 여러 번 읽었다. 나라를 빼앗고 극악무도하게 우리 백성을 죽이는 일본에겐 대항도 못하면서, 힘없는 자국의 여자들은 만만한 건지 야멸차게 비판하는 꼴이 너무나 한심해 보였다. (p.95)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쓰는 여자로 살 거예요. (p.115)


*우리는 각자의 굴레를 벗어야 하고 굴레를 벗지 못하는 누군가를 도와야 합니다. 정신적 독립은 경제적 독립 위에 가능합니다. (p.119)


*내가 왜 글을 쓰느냐면...... 나만 아는 세계가 있어요. 그 세계를 여럿이 함께 알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하면 이해가 되나요?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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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희. 이름부터 쓰는 여자인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현대의 작가 은섬이 1930년대에 쓰인 작희의 일기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은섬, 그리고 작희와 작희의 어머니 중숙의 이야기가 교차되는데, 각자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몰입되는 지점이 많다. 은섬은 소설을 쓰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중숙과 작희는 끊임없이 뭔가를 썼지만 세상에 발표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쓰는 여자들과, 시대의 한계에 부딪히는 여자들이다. 중숙은 사랑받고 자란 귀한 딸이었지만,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원치 않은 결혼을 하게 된다. 작희의 고모 경혜는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도 결국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미설은 아비 때문에 팔리듯이 시집을 왔고, 작희도 그럴 위기에 놓인다. 나는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의 선택이 본인의 의지가 아닌 것이 슬펐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도 그 시대에는 그 방법밖에 없었던 것 같아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 작희가 더 좋았다. 작희의 씩씩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도, 주변의 괴롭힘에도 든든하게 밥을 먹고 일어서는 모습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대적 한계로 벌어지는 비극은 너무 안타깝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건 백 년 전과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분명 그때보다 발전한 부분은 있지만, 당시 여성들이 겪은 부당한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남자한테서 경제적 독립을 해야 진정으로 자기 해방을 할 수 있다고, 작희가 고모에게 알려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But, 고모는) 고모의 비보에도 팔자 탓을 하는 흥규(작희 부친)를 보며 나도 작희처럼 치가 떨렸다. 또한 작희 역시 사랑에 배신당하고, 쓰는 여자로서 꿈을 펼치지 못하는 가혹한 현실을 겪는다.


현대에서 은섬이 작희의 일기장을 복원하여 진실을 밝혀줘서 좋았다. 사실 은섬의 이야기도 좋았던 게,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일기나 서평을 쓸 때만 해도 은근히 첫 문장 시작하는 게 어렵다. 꾸준한 것도 어렵기에 미스터가 알려주는 방법이 꽤 도움될 것 같다.


쓰고 싶은 욕망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글이든, 이 서평을 쓰는 지금도 우리는 모두 쓰는 여자다. 이 글을 모든 쓰는 여자가 읽어 줬으면 좋겠다. 중숙의 서포 이름이었던 모든 서포처럼, 모든 여성이, 책을 좋아하고 쓰는 모든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소설이다.


-「쓰는 여자, 작희」 가제본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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