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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우정과 무가치한 연애들 - 연인도 부부도 아니지만 인생을 함께하는 친구 관계에 대하여
라이나 코헨 지음, 박희원 옮김 / 현암사 / 2025년 9월
평점 :
:: 이 리뷰는 트위터 계정 ‘책 서평단 알림 @eum68481’에서 이벤트 당첨으로 제공된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연인도 부부도 아니지만 인생을 함께하는 친구 관계에 대하여」
캐치프레이즈부터 강렬히 이목을 끈다. 세상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사람 간의 관계에 여러 종류와 정의를 분별하기 시작했고, 또 흥미와 관심을, 그리고 주관을 가졌다. 연인의 사랑과 가족의 사랑을 같은 사랑으로 묶지만 분리하듯이. 사랑과 우정 또한 확실히 분리된 감정 개체로 인식하던 분위기가 조금씩 그 경계에 의문점을 느끼며 흐트러트리는 것이다. 이렇듯 사랑은 정말 복잡하고 복합적인 단어였다. 쉽게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관계가 하나둘 늘고, 그것이 가장 사랑스러우며 강렬한 혼돈을 낳았다. 참고로 나는 무성애자이다.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에 괴리감을 느낄뿐더러 누군가를 향한 성적 끌림을 느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며 언젠가 내 인생의 끝을 함께 달려줄 동반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희망 사항을 가지고 있었다. 그 희망에는 항상 친구나 가족이 있었다. 연인이 아니라. 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이 희망에 누군가 해결책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 책이 그 해결책을 알려주며, 나와 같은 사람이 많다는 어떤 객관적 근거를 내밀면서 위로했다.
실제로 같이 살지만, 연인이 아니라 친구로 알려진 유튜버들이 있다. Y 씨와 G 씨는 둘 다 여성이고, 둘이 상황극처럼 장난삼아 부르던 호칭이 ‘여보’였던지라 동성애 관계로 오해받은 일이 잦았으나, Y 씨는 G 씨와 룸메이트로 살면서도 이성과 연애한 전적이 있는 이성애자이고 G 씨는 나와 같은 무성애자이다. 둘은 MBTI부터 취미, 소비 경향도 달랐지만, 마치 한 몸이 둘로 아쉽게 나뉜 것처럼 손발이 잘 맞았고, 그 일상을 코믹하게 풀어 영상을 게시하면 즐겁게 시청하던 구독자들은 ‘둘이 정말 영혼을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니냐,’ 웃으며 감탄했다. 그렇다. 스스로 이상하다고 여겼던 내 이상향을 이미 현실에서 구현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하고 있다. 단지 내가 무지했을 뿐,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렇고 곳곳에서 단지 로맨틱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내 인생의 어느 일부를 공유하며 동거하는 관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이 특히 그것을 근거했다.
우리의 기억을 잘 더듬다 보면, 어릴 때 친구들에게 이런 터무니없는 소원을 말한 적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아서, 얘가 몇 층에 살면 나는 그 위층, 너는 그 아래층에 살자고. 배달 음식을 시켜서 한 집에 모여 같이 먹고,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확인해주고. 하루하루가 정말 재밌고 외롭지 않고 안전할 거라고. 나는 다 큰 성인이 되어도 이 소원을 잊지 못했다. 진심으로 그러길 바라서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웃긴 점은 그 정도로 끈끈하다 싶은 동성의 친구와 인생을 함께하겠다 한들 법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는 여전히 남남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법적으로 어찌어찌 엮고 싶다면 동성혼이라도 하라고 한다. 웃기는 소리다. 왜 아직도 세상은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되는 걸까? 나는 내 동반자를, 내가 직접 정하는 가족을 원한다고 했지, 로맨스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게 아니다. 가족을 왜 로맨스라는 전제를 깔아놔야만 인정이 되는 걸까? 이 책에서는 나와 같은 의문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려준다. 하지만 어떻게 제대로 정립된 법이나 정책을 정부에서 내어주지 못했다. 관계 자체가 정의를 쉽게 내릴 수 없다 보니 그에 따른 법과 정책도 어영부영 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우리를 감히 현실로부터 끌어내릴 수밖에 없는 게 정당방위라도 되듯이. 나는 아직 이 진보되지 못한 현실과 사회에 지극히 불쾌감을 느꼈다. 사람과의 관계는 점차 다양해지고 여러 색을 띠게 되었지만, 법은 여전히 단색인 구조를 띠었다. 동성혼이 합법조차 아닌 대한민국은 더더욱 그렇다.
나는 이 책을 나처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 가족을 꾸리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와 각별히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는 사람, 사랑의 이별은 가슴 아파해주는 이가 많은데 우정의 이별은 그럴 수 있다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서 의문을 느끼는 사람, 어느 날은 연인보다 친구를 더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 사람의 개별적 관계에 호기심을 가져왔던 사람.
관계와 법에 있어 많은 학자의 조언과 정보, 인터뷰 중간중간 작가 라이나 코헨이 친구 M에게 느꼈던 사춘기 같은 불확실성 감정과 이성 등, 읽으면서 위로도 받으며 공부도 될 것이다. 꼭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연인이나 가족을 추월할 만큼 뜨겁게 사랑했던 친구가 있었는지 추억해주길.
그리고 나의 옛친구 J에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네가 내게 주었던 진심이 이러한 게 아니었을까 수없이 생각하고 반성했어. 나 또한 우정의 끝을 당연시한 사람으로서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쉽게 해 네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는 걸. 네가 너무 보고 싶지만, 연락조차 감히 할 엄두도 못 날 만큼 틀어진(정확히는 내가 틀어놓은) 우리의 관계를 보며 슬픔에 자주 빠져. 내가 상처받기 싫어서 정작 너를 통제하고 또 많은 칼 같은 말로 상처를 줬다는 점을 인정해. 그리고 고마웠고, 사랑했어. 너는 내게 진심을 많은 방식으로 나눈 몇 안 된 친구였어. 그 소중함을 안일하게 내다 버린 내 잘못이야. 그러면서도 너한테서 인간관계에 대해 또 하나를 공부하게 된 것 같아. 정말 미안했어. 부디 잘 살아줘.
#프리북 #freebook #현암사
이 책은 버젓이 드러나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어느 관계를 조명하고자 사람들의 사적 영역에 깊숙이 들어간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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