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시체를 잘만 갖고 놀았잖아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
구라치 준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9월

:: 이 리뷰는 출판사 블루홀식스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본격 미스터리 X 이상한 시체

작가 데뷔 30주년 기념 작품!

엽기적이고 악마 같은 발상! 이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감상이 될 테다. 표지부터 강렬하다, 진입장벽이 있다, 고 느낄 수밖에 없지만, 막상 책을 펼치면 표지 생각은 절대 떠오르지도 못한 채 다음 장을 넘기기 바쁠 것이다. 내용이 더 강렬할 테니까. 푸르고 또 붉어져 버린 이야기의 시작을.

단편이 네 개뿐임에도 페이지 수를 확인해보면 결코 얇다고 할 수 없는 책이다. 그만큼 하나의 단편 속에서 짧지 않은 볼륨이 있다. 타 작품에서 짧은 볼륨의 단편이 여러 개가 있는 추리소설도 읽어봤는데, 추리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꽤 빠르게 진행이 되어서 스스로 추리하는 걸 좋아하는 독자는 이 책이 정말 안성맞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루즈하지 않고, 서사가 꼼꼼하며, 추리할 시간도 잘 주어지는 소설이다. 아마 작가님도 이것을 노려서 단편을 일부러 네 개만 쓴 게 아닐까.

네 개의 단편 중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이야기는 ‘당황한 세 명의 범인 후보’였다. 트릭도 새롭고, 무엇보다 그것을 추리해낸 인물이…… 읽다 보면 알 것이다. 반드시 이 책은 차례대로 읽어서 마지막까지 도래해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짧은 단편은 금방 끝나 싫고, 장편은 지루해서 싫은 사람에게 이 책을 매우 추천하는 바이다. 생각보다 쉽게 넘어가는 부분에서 진실이 있다. 차근차근 곱씹어서 완독하길 바란다. 표지에 느껴지는 강렬함과 다르게 19금 딱지가 붙을 정도로 잔인성이 드러나지도 않고, 트리거를 유발할 요소(학교폭력, 강간, 장기 적출 등)도 없어서 눈이 피로하지도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재미도 챙기고 추리를 완료했을 때 다그치는 통쾌함도 있고,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을 봤을 때와 견주어볼 만한 최고의 소설이다. 구라치 준 작가님의 데뷔 30주년 기념 작품인 만큼 절대 읽고 실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서점에서 보인다면 일단 집어라!

다 읽고 덮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나도 꽤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 마니아이기도 했는데, ‘과연 나는 몇 구의 시체를 내 머릿속에서 갖고 놀았지?’라는 의문이 든 것이다. 문지원 번역가님께서 말씀하시길, ‘다소 불경스러운 표현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시체를 가장 재미있게 잘 가지고 노는 사람은 미스터리 작가들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그 말에 매우 동의한다. 또한 내 의견을 덧붙여보자면, 작가들만큼이나 독자들도 어마어마하게 시체를 갖고 놀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제2의 탐정이 되어 시체를 직접 들춰보고, 피해자가 될 것 같은 사람을 예측하며 또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 속으로 죽여볼 테니까. 가장 인격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는,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가 아닐까…….

시체는 위를 본 자세로 누워 있었다. - P11

"그럼 아까 죽은 세 명. 지금 어떻게 됐을까?" - P48

"나도 우메모토의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해. 셜록 홈스의 명언이 있잖아.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고 마지막에 남은 것이 아무리 기묘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이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 P91

‘수행에 집착하지 말라, 참된 깨달음은 이미 손안에 있나니‘. - P160

과연 죽은 자가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까? - P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