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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강 텍스트T 17
지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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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설원에서 피어난

가슴 뭉클한 연대와 우정

 

시각 장애인 스키 선수 남우희와

가이드 러너 강예리의

뜨겁고도 찬란한 청춘 이야기

 

나는 항상 우정 앞에서 굶주려있었다. 어떤 때면 썸 같기도 했다. 원하는 바가 두루뭉술하고 괜히 감질나는 선 앞에서 조바심을 느끼고, 기브 앤 테이크가 무엇보다 절실했다. 나에게 우정은 늘 그렇게 주는 만큼 바랐고 받고 싶었다. 그런 내게도 요즘은 밉상이지만 또 사랑스러운 친구가 생겼는데, 이상하게도 이 친구에겐 그런 비즈니스적인 욕심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뭐랄까. 있기만 해도 좋았다. 하는 짓은 매번 치대고 나랑 티격태격하는데도 그 순간 하나하나가 즐겁기만 했다. 친구란 이런 걸까. 받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막 주고 싶은 게 크다.

 

활강은 그런 우정이 있다. 라이벌이며 사이도 취향도 맞지 않던 두 친구가, 어떤 사건을 통해 서로 연합해서 같이 달리는 그런 이야기. 바라는 바가 확고한 상태에서 만났어도 결국 주는 게 더 많은 관계. 절대 모른 척할 수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는 그런 단계. 활강에서 피어난 우정은 눈 위를 뛰어내리는 그러한 시원함이 가득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나의 불행이 우리의 계단이 되는 그런 우스운 아이러니 청춘.

 

읽으면서 우희에게 잔소리하고 예리 입장에 이입했었다. 참 보면 아직 중학생인 이유가 있다. 말이 비즈니스처럼 하겠다지 청소년 특유의 툴툴대고 다 마음에 안 든단 티는 다 내놓더라. 어찌나 귀엽던지. 정말 꿀밤 한 대 놓아주고 싶은 걸 애써 참아가며 책장을 넘겼다. 나도 같이 웃고 또 눈물을 찔끔 흘리고, 탄식을 내뱉다가도 환호를 지르며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시끄럽게 읽은 책이 활강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도 너희처럼 후회 없는 오늘을 보내는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온다고 과연 할 수는 있을까.

 

여태 읽은 것 중 가장 뜻깊은 우정의 책이었다. 어떤 도전을 위해 달리는 청소년들에게 매우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부디 현실의 벽과 싸워서라도 원하는 바를 쟁취하길. 미래의 나에게 과거를 아쉽고 후회하는 기회를 주지 말길. 아자아자.

스키를 신고 부츠 버클을 채웠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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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뜬구름
찬쉐 지음, 김태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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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

해외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중국 여성 작가

 

찬쉐의 소설 중

가장 실험적이고 강렬한 작품

 

시적 언어로 쓴 지구 종말의 풍경화

낯선 감각을 일깨워 줄

찬쉐 문학 세계의 도입부

 

꽃이 지독한 향기를 풍기는 몽롱한 계절,

잠 못 이루는 거리의 생명들에게 일어나는

악몽 같은 이야기

 

이토록 악의를 지니며 왜곡까지 심한 소설이 있을까. 중국의 카프카라는 말이 왜 존재하는지 알 정도로 찬쉐는 이 책에 추악의 정수를 흩뿌리며, 오래도록 덧없는 세상과 빛바랜 극사실주의를 꽉꽉 담았다. 이런 책이 현대에 출판되어도 괜찮은가? 읽으면 읽을수록 나를 저 멀리 두게 된다. 허상이 가득하다 못해 나 자신도 허상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미친 이야기 같으니라고.

 

정말 꿈을 꾸는 것처럼 개연성이 좀처럼 유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데, 그야말로 악몽 같은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휙휙 전환되는 시점이며, 모든 이가 주연이자 조연이 되고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무자비한 전개에 찬쉐 특유의 미학적인 비유가 오히려 불쾌감을 조성해서 메마른 벽에 마음껏 비명을 지르고 싶은 공포가 함께 몰려왔다. 이 소설은 정말, 대사만으로도 발가벗은 본성의 무저갱이 적나라하게 보일 뿐 아니라 마구 뒤틀린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어지럼증까지 유발한 글의 향연이었다. 이렇게까지 낯선 그림자 같은 소설이 있을까?

 

끝내 나는 책을 덮을 때까지도 어디까지가 악몽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사실은 모든 순간이 악몽이자 현실인 건 아닌지 몇 번이고 의심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관찰자이자 감시자가 되고, 인격 분열이 일어날 만큼 끊임없이 질투와 집착, 난자한 벌레의 다리 따위의 징글징글함으로 서로를 갉아먹고 미쳐간다. 내가 보고 있는 하늘도 이 책처럼 붉어진 것 같다. , 실핏줄이 터진 건가?

 

어째서 그들이 중국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이 작가를 선택했는지 뼈저리게 알았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감히 말하건대, 찬쉐밖에 없을 것이다. 도드라진 뼈대 같은 문체로 썩은 살 같은 불안하고도 무형적인 감각과 연하게 긁히는 손톱의 밸런스까지 모두 그녀만이 아우를 수 있을 것이다. 이걸 읽고 나니 당분간 거미줄과 오이는 쳐다도 못 보겠다. 아직도 여운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경련이 몸에서 난다.

닥나무의 새하얀 꽃이 빗물을 잔뜩 머금어 몹시 무거워졌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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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사 사진부와 죽은 자의 마지막 피사체 고블 씬 북 시리즈
김영민 지음 / 고블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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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 들녘의 장르문학 브랜드 고블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곳은 대학교 사진 동아리 난사’.

어느 날 동아리에 기묘한 의뢰가 담긴 이메일이 도착하는데?

 

섬에서 죽은 한 남자,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찍고 싶어 했던 사진을 대신 찍어달라는 부탁이다. 그런데 이 섬에는 무언가 스산한 기운이 서려 있는데.

 

대학교 청춘들의 낯선 섬에서의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이전에 읽은 우리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에서도 굉장한 몰입에 허덕였었는데, 이번 또 다른 고블 씬 북 시리즈 난사 사진부와 죽은 자의 마지막 피사체는 완전히 다른 장르로 내 관심을 확 끌어당겼다. 사실 나는 미스터리 장르를 정말 좋아하는 만큼, 그만한 재밌게 보는 기준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겠다. 깐깐하기까지는 아니지만, 웬만한 미스터리·추리소설을 꽤 읽어왔기에 흔한 소재가 던져지면 그 트릭과 범인 유추가 어렵지 않다. 뻔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루하다고 느끼는 범위까지 치달으면 책을 확 덮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전에 읽은 책이 너무 재밌었으므로 마찬가지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의문의 의뢰 메일을 받고 그 목적지인 어떤 섬을 향하는 대학 사진 동아리 난사멤버들. 그 추격에서 괴이한 일을 마주하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같은 섬에서 사진 촬영 중 사망한 남자의 진실부터 그 섬에 의미심장한 비밀까지 파헤치게 되는데, 그 전개가 꼭 TRPG 같았다. 사건의 발단이 앞에 제시했을 때 공통된 목적 하나를 두고 각양각색인 인원을 모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모험을 떠나는 게임 형식으로, 소설의 흥미진진한 전개 속 무서운 진상까지 알게 되는 그 짜릿한 일련의 일이 이 얇은책에 다 담겨 있다! 솔직히 말해 근래 읽었던 소설 중 그렇게 짧은 볼륨 속에서 가장 강렬하고 재미가 솟구친 게 이 책 말고 더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도 재밌게 읽었었다.

 

추리 입문으로도 적절한 책이라 아무에게 추천하기 너무도 좋은 작품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 친구들 시리즈로 내고 싶다는데 정말 단편집으로 내줬으면 좋겠다.

[C대학 생명과학과 사진동아리 ‘난사‘ 부장 조은서 학생에게]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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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고블 씬 북 시리즈
곽유진 지음 / 고블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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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 들녘의 장르문학 브랜드 고블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것은,

회색 눈이 쉼 없이 내리는 세계 위로

썰매를 끌고 나아가는 소녀의 이야기.

 

그 썰매에 탄 노인이 들려준

먼 외계에 사는 또 한 명의 소녀 모투나의 이야기.

 

이들이 속한 세계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 모든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

 

짧고 가벼운 두께를 허투루 보았다가 곧바로 단숨에 읽게 된 매료의 정점. 고블 씬 북 시리즈는 강인한 흡입력으로 앞표지와 뒤표지 사이 동안 흐르는 시간을 망각하게 만든 마법의 서다. 여운 가득히 완벽한 끝을 찍고 고개를 들면 아직도 그 세계에 갇힌 시야로 머물고 있었다. 특히 이 우리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은 우리가 지금껏 입맛대로 집요히 추격해 온 이야기들이 가진 맹점을 날카롭게 소재로 꺼내 온다. 우리가 자신의 것도 아닌 이야기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제 것인 양 집착하고 또 참견하는 과도기성. 그 몰입의 과도한 부작용이 이야기 끝에서도 쉽게 마침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독자층도 어느샌가 열린 마무리를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로 뒤덮여 있다. 시작에는 끝이 존재해야 하는 논리에 세뇌되고, 예상할 수 없는 미래는 더 이상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 또한 이야기의 끝은 좋은가 나쁜가로 확실히 하는 걸 선호했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끝을 알아내기 위해 책장이라는 썰매를 끌고 그들의 파동 속을 끈질기게 걷고, 또 넘었다.

 

그리고 나는 작가가 마치 내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건지 완벽히 놀아나서 마침표에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통속의 뇌 실험에 갇힌 기분이다. 내가 인식하고 사고하고 느꼈던 모든 퍼즐이 하나둘 어긋난 낌새를 보이며, 나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더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하지만 끝내 내게 떨어진 공허감이란 회색 눈은 처참히 내 시야를 가리고 말았다. 작가가 미친 게 틀림없어! 책을 덮고도 어지러운 기분에 몇 숨을 토해냈다가 조금씩 내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작가는 또 어떤 아이를 쓸 생각일까. 우리보다 한참이나 앞서가는 시간의 이야기는 아이같이 명랑하게 우리를 조롱했다 사라질,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 또 하나의 아포칼립스 최후를 과연 어떻게 보여줄까. 이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엘리베이터 양 벽면에 붙여진 거울을 보는 듯한 소름 끼치는 연출은 이 작가만이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언컨대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를 듣고 따라가듯 동화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 것.

소설을 읽는 간호사를 보았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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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 우국·한여름의 죽음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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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 현대문학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삶 전체를 통해 예술과 삶의 일치를 추구한

탐미주의 문학의 거장,

그가 직접 고른 단편 문학의 정수

 

세계가 환호하는 매혹의 선입을 일본 당시 시대상으로 잘 녹여놓은 단편들이었다. 미시마 유키오라는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데, 펼치기 전 뒤표지를 먼저 살펴보았을 때 소개란에서 내 시선을 곧바로 빼앗을 만큼 강렬한 단어가 있었다. ‘탐미주의 문학’. 아마 이 단어를 발견한 때야말로 내가 미시마 유키오라는 철조망에 몸을 밀어 넣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유명한 작품인 우국한여름의 죽음’, 데뷔작인 꽃이 한창인 숲까지. 외에도 수많은 그의 단편들이 있었고, 나는 그 유명작부터 읽어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차례로 첫 단편부터 펼쳐 읽었었다.

 

이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아름다움은 뭐였던 걸까? 파멸? 죽음? 욕망?

하나하나 문체가 서늘한 눈발에서 뜨겁게 비릿한 향이 담겨 있었다. 죽음을 부르는 판 위로 사랑을 꾸며냈고,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그 어떤 지옥도 여실히 애정하게 만드는 이야기. 미시마 유키오는 휴화산과 활화산 사이의 찌릿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이야기 끝에 차갑게 마침표로 독자의 가슴을 찢고 지나갔다. 특히 작품 우국은 그 죽음에 가까워지는 묘사에 완벽히 내가 갖고 놀아졌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그 가녀린 실로 내 목을 죄며 천천히 끝에 다다르는 느낌이 하여금 작별과 또 다른 탄생과 희망을 기꺼이 받들도록 하였다. 그러나 나는 단언한다. 그들 몸에 흘러나온 피는 앞으로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뜨거울 것이다.

 

아름다움을 왜 멀리서 찾나.

이 책이야말로 탐미하는 아름다움인데.

 

사랑은 생의 과정과 같다. 설렘에 잉태되어 어린아이같이 유치해졌다가 점차 상대의 감정까지 인정하는 성숙을 지나, 함께 아름다운 마감을 하거나 괴로운 죽음을 보게 된다. 미시마 유키오에게서 사랑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지. 나는 몇 밤을 이 책을 끌어안아 철조망 가르며 피어난 그 붉은 꽃의 형태를 매만져볼 생각이다. 그것이 내가 그를 찬미하고 또 탐미하는 행위이다.


그녀는 숲의 꽃이 한창일 때 죽어갔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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