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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ㅣ 고블 씬 북 시리즈
곽유진 지음 / 고블 / 2025년 11월
평점 :
:: 이 리뷰는 출판사 들녘의 장르문학 브랜드 고블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것은,
회색 눈이 쉼 없이 내리는 세계 위로
썰매를 끌고 나아가는 소녀의 이야기.
그 썰매에 탄 노인이 들려준
먼 외계에 사는 또 한 명의 소녀 모투나의 이야기.
이들이 속한 세계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 모든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
짧고 가벼운 두께를 허투루 보았다가 곧바로 단숨에 읽게 된 매료의 정점. 고블 씬 북 시리즈는 강인한 흡입력으로 앞표지와 뒤표지 사이 동안 흐르는 시간을 망각하게 만든 마법의 서다. 여운 가득히 완벽한 끝을 찍고 고개를 들면 아직도 그 세계에 갇힌 시야로 머물고 있었다. 특히 이 ‘우리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은 우리가 지금껏 입맛대로 집요히 추격해 온 이야기들이 가진 맹점을 날카롭게 소재로 꺼내 온다. 우리가 자신의 것도 아닌 이야기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제 것인 양 집착하고 또 참견하는 과도기성. 그 몰입의 과도한 부작용이 이야기 끝에서도 쉽게 마침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독자층도 어느샌가 열린 마무리를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로 뒤덮여 있다. 시작에는 끝이 존재해야 하는 논리에 세뇌되고, 예상할 수 없는 미래는 더 이상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 또한 이야기의 끝은 좋은가 나쁜가로 확실히 하는 걸 선호했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끝을 알아내기 위해 책장이라는 썰매를 끌고 그들의 파동 속을 끈질기게 걷고, 또 넘었다.
그리고 나는 작가가 마치 내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건지 완벽히 놀아나서 마침표에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통속의 뇌 실험에 갇힌 기분이다. 내가 인식하고 사고하고 느꼈던 모든 퍼즐이 하나둘 어긋난 낌새를 보이며, 나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더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하지만 끝내 내게 떨어진 공허감이란 회색 눈은 처참히 내 시야를 가리고 말았다. 작가가 미친 게 틀림없어! 책을 덮고도 어지러운 기분에 몇 숨을 토해냈다가 조금씩 내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작가는 또 어떤 아이를 쓸 생각일까. 우리보다 한참이나 앞서가는 시간의 이야기는 아이같이 명랑하게 우리를 조롱했다 사라질,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 또 하나의 아포칼립스 최후를 과연 어떻게 보여줄까. 이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엘리베이터 양 벽면에 붙여진 거울을 보는 듯한 소름 끼치는 연출은 이 작가만이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언컨대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를 듣고 따라가듯 동화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