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몰퍼스 시-LIM 시인선 3
김해솔 지음 / 열림원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리뷰는 출판사 열림원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언어가 실패하고 무너져도

끝내 사랑을 발명하려는 목소리

 

제목부터 과학과 판타지 사이의 어느 경계에 걸친 듯한 느낌이 든다. 아몰퍼스(amorphous)는 원자 배열이 무질서한 상태의 비결정질 고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체는 일반적으로 원자 배열이 규칙적인 결정 상태인데 아몰퍼스는 특이하게 원자 배열이 무질서하다. 이 시집에서는 그 아몰퍼스의 형태를 가진 언어와, 그 언어를 향한 사랑을 시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항상 사랑을 언어로, 그것도 고체화시킨 언어로 형태화시키는 데 집착해 왔으니까. 언어에는 어떤 칼보다 날카롭고 꽃보다 아름다우니까.

 

시는 예전과 달리 정형화된 느낌보다 자유성을 더 갖추고 도형이나 삽화로 시각화시켜 흥미를 돋우게도 한다. 이 시집 또한 그런 재미가 있어 새롭기에, 나처럼 시집이 마냥 재미없는 문학이라고만 생각해 온 사람에게 매우 추천해주고 싶다. 특히 아몰퍼스는 단순 물체를 보며 일상을 은유하는 시가 아니라, 마치 또 하나의 이야기를 시로 전달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 것이다. 꼭 낭만으로 가득 찬 sf 소설을 시로 작성한 거와 같다.

 

시를 느린 템포로 읽고 나면 마지막에 1TRPG라는 또 새로운 문이 앞에 들어설 것이다. 시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면 이 TRPG만이라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인께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몸소 느껴보았으면 한다. 이 요소에는 앞에 나온 시들을 더 세밀하고 꼼꼼하게 설명하고 나열해 있다. 그렇기에 꼭 시만 읽고 덮지 말고, 이 부분까지 거쳐와야 이 시집의 본질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에서만 볼 수 있는 짧고 마음을 꿰뚫는 문장들이 이 시집에도 잘 농축해 있다. 이래서 시를 읽는가 보다. 무엇보다 문장의 배열이 독특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좌측에 몰려 있다가도 우측에 쏠려 있고, 어떤 문장엔 느낌표를 크게 띄워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표지만큼이나 흔하지 않은 개성이 꼭꼭 숨겨져 있으니 다들 제발 읽어달라.

 

오랜만에 읽은 시집인데 너무도 만족스럽다. 나에게도 언어와 사랑은 아몰퍼스 같은 존재였다. 완벽히 단단할 수 없어 어긋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균열이 났다가도 수복도 한다. 부드러우면서도 질기기도 하고, 거칠다 싶으면 내 착각이란 걸 깨닫게 만든다. 이 시집에서 보이는 과학자는 마치 그것을 발명한 어떤 개체로 대하며, 내가 도래하는 사랑은 또 발견 같기도 하다. 과연 우리의 사랑, 사랑에서 언어는 발명일까 발견일까. 우리는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신이 인간에게 특정 감정을 부여하며 발명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사랑은 어떤 대상에 의해 창조되어 발견된 것이라고도 보고 있다.

 

언어에 너무도 집착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꾸준히 언어로 표현할 길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그것 또한 사랑의 발명이리다.

도서관을 하나 상상한다.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