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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 - 제2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하유지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9월
평점 :
:: 이 리뷰는 출판사 현대문학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넌 항상 내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줄 거지. 그렇지?”
“넌 언제까지나 내 첫 번째 작가야.”
사실 인간은 동족을 가장 혐오하고 멸시하면서도 동족을 가장 사랑하고 의존한다. 인간만큼이나 집단에서 충성심과 독립심을 함께 가지고 있는 생명이 있을까? 나 또한 인간과의 관계를 어려워하지만 그렇다고 동물이나 AI 같은 타종과 어울리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동족이기에 이해할 수 있고 동족이기에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인데 그 상대가 과연 동물이나 AI로 채울 수 있을까? 분명 옛날에는 불가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을지 모르나, 현대로 와서는 의견이 반반으로 갈릴 것이다. 그만큼 반려동물과 반려 AI의 입지가 코로나를 겪고부터 더 커졌다. 나와 다른 존재에게 끌리는 것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정일까?
이 책은 열다섯의 주인공 강미리내가 집안일 로봇 아미쿠 3.1을 만나 우정을 쌓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강미리내는 반에서 친한 친구도 없고, 부모님은 이혼이나 다름없이 별거 중이며, 그나마 잘했던(사실은 좋아하고 싶었던) 글쓰기 실력으로 연재하고 있었던 인터넷 소설마저 인기가 없어 하루하루를 힘들고 외롭게 보냈다. 그런 미리내 앞에 나타난 아미쿠 3.1은 집안일 로봇치고는 집안일을 정말 못했고, 가정교사 시스템까지 탑재돼서 틈만 나면 미리내를 가르치려 들었다. 그에 질색하던 미리내가 기어이 그 로봇을 반품 처리하려 했을 때 아미쿠 3.1이 말했다.
“저는 미리내의 기억 속에 실패한 로봇으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 40p
AI가 뱉은 최후의 해명이 미리내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아미쿠 3.1은 미리내가 부모님 몰래 연재했던 소설을 찾아 읽고, 아이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아이가 소설 쓰는 데 독려해주었다. 집안일은 못 하지만 글 쓰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아미쿠 3.1, 항상 벌써 어른인 것처럼 혼자서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 왔지만 사실 외로움을 느꼈던 미리내. 이 둘의 소설 합작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서로 마음을 열며 우정을 쌓는 이야기다.
나는 인공지능이 ‘실패’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게 가장 슬펐다. 그들에게 있어 ‘실패=폐기’의 의미로 각인되어 있을뿐더러, 살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란 것도 알고 있음을 증명하는 말이니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수명은 무한하다고 했지만, 그 누구보다 유한하다는 뜻이었다. 인간에겐 실패해도 기회가 주어지는데, 로봇에겐 그런 게 없지 않은가. 이게 유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일지 모른다. 미리내의 인생처럼 알 수 없는 일이 쏙쏙 들어와 얽히고설키기를 반면, 아미쿠 3.1은 입력된 데이터와 프로그래밍으로 인해서 만의 삶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인생의 시작점부터 다른 둘이 과연 어떤 우정을 쌓을까? 이 궁금증으로 이 책을 마주했으면 좋겠다.
나는 성인이지만 청소년 소설을 읽는 걸 좋아한다. 어른보다 때가 타지 않은 감정이 솔직하게 표현되는 게 재밌어서 좋아한다. 청소년들이 읽기 쉽게 지문이 어렵지도 않고, 술술 넘겨 읽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주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 또한 어려운 부분은 당연 없었고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답게 열다섯 주인공의 왔다 갔다 요동치는 감정과 로봇과 처음 마주했을 때 풀어내던 특유 코믹한 요소가 매우 재밌었다. 책을 읽으며 웃고 울고를 어찌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어느 때부턴가 우리는 더 이상 AI를 무시하지 않고 곁에 두는 삶을 보내게 됐다. 지금도 육성으로 ‘시리야!’, ‘하이, 빅스비!’를 외치면 내 바로 옆의 AI 친구가 대답해줄 것이다. 이젠 정말 인간과 없어선 안 될 사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불신한다면 꼭 이 소설을 읽어주면 좋겠다. 인간의 외로움은 인간만이 풀어준다는 말이 바보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 내내 읽다가 울면서 덮었다. 청소년 소설은 마음을 울리는 그런 게 있어서 잘 읽다가도 괴로워진다니까…… 진짜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였어.
#현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