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 브리짓 존스의 일기, 브리짓 존스의 애인
*이 글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대한 리뷰인척하지만 사실은 보다 본질적으로 책이 추구한 가치, 목적,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려하는 리뷰입니다.
-> 콜린 퍼스 이야기를 할 거란 소립니다.
나름 스포일러방지(책은 나온지 20년에 더 가깝고 콜린 퍼스가 쩐다는건 다 아는 건데 굳이 필요한가싶지만)
1. 브리짓존스의 일기는 감히 현대판 오만과 편견이라고 하겠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만과 편견에 대한 싱글족의 현대판 오마쥬일지도 모릅니다. 스노비즘에 찌든 교양예찬론자들 가운데서 우아하고 똑똑한 엘리자베스 베넷은 더이상 특이하게 매력적이지않고 현대판 노처녀 브리짓은 훠어어어얼씬 덜떨어지고 무식하고 뚱뚱하고 정리정돈도 못하고 남자에 목숨걸고 언제나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여자가 생각하기에 공감이 가는, 친구가 될수있는 여자입니다. 그런 브리짓이 연애에 실패하고 노골적으로 연애를 울부짖다가 오만하고 편견으로 꽉 차서 무시했던 마크 다아시와 맺어지는 코미컬한 스토리는 오만과 편견의 플롯을 그대로 가져왔고 훨씬 가볍고 현대적이고 웃음이 터지게 바꾸었을 뿐입니다.
2. 1번 안 읽으셔도 돼요 어쨌든 중요한 건 콜린 퍼스니까.
3. 콜린 퍼스니까. 중요하니 두번 말합니다.
세번도 말할게요. 콜린 퍼스니까.
4. 이 가공할 헛소리를 이해하시려면 당장 달려가서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보고와야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십중팔구 영국식 억양을 쓰며 수트를 빼입고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라는 대사를 치는 남자한테 빠질텐데 그게 핵심이에요. 콜린 퍼스라는 소리입니다.
5. 킹스맨으로 세간에 상사병자들과 거대한 팬덤을 만들어낸 배우 콜린 퍼스는 약 이십년 전에도 비슷한 짓을 했었는데 BBC판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 미스터 다아시로 출현했고 동시에 영국 여성들의 영원한 왕자님으로 등극했습니다. 작중 오리지널인 호수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신은 조각으로 만들어졌더던가요. 이후 2005년판 오만과 편견 영화에서 키이라 나이틀리는 우아한 베넷양을 보여주었지만 절대다수는 <미스터 다아시가 콜린 퍼스에 못미쳐(왜 콜린 퍼스가 아닌거야?)>라고 평했다던가뭐라던가.
그 드라마 저도 봤는데 그 유명한 호수신을 본 감상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으아 물 더러워보여 부옇고... 저기 들어가야하나 우아...(들어감) 아...어... 뭐지 물이 좀 뿌옇다고 대수야 콜린 퍼스가 들어갔는데... 와..우아.. 맑아보이네... 아니다 샤이닝한데...와.. 콜린.. 콜린퍼스... 와....콜린 퍼스...>
6. 말했잖아요 중요한건 콜린 퍼스라고. 비비씨 오만과 편견 꼭 보세요 지금의 나이스 미들이 그냥 퍼팩트 맨입니다 그냥 아주 와..와...
7. 아니 이게 아니라.
8. 그리하여 영국 문학사에 남기는 족적만큼이나 거대하게 90년대 영국여성들의 심장을 쏘는 살인무기가 된 오만과 편견(이라고 쓰고 콜린 퍼스라고 읽는다)이 당시 여성들을 어떻게 휩쓸었는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는 정확하게 묘사되어있습니다.
9. 당장 브리짓은 마크 다아시가 붙임성없는 모습을 보고 <이름이 다아시라고 자기가 미스터 다아시라도 되는 줄알아>라며 모두까기를 시전하고 오만과 편견 이야기가 나오고 우울하고 슬퍼진 브리짓을 위로하기 위해 게드와 샤론은 엄청난 양의 단 것과 오만과 편견 비디오 테이프를 가져와 브리짓을 위해 ˝콜린 퍼스가 젖은 셔츠를 입고 걸어나오는 호수신˝을 찾아 끊임없이 틀어줍니다(...)
아예 작중에는 대놓고 콜린 퍼스를 언급하며 후속작인 <브리짓 존스의 애인>에서는 콜린 퍼스가 실제로 나오기까지해요. 브리짓은 그를 인터뷰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오 맙소서 미스터 콜린 당신 진짜 미스터 다아시랑 똑같이 생겼어요!> 되시겠습니다.
10. 아 까먹었다. 이 소설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누가 (작가의 열화같은 요청으로) 마크 다아시를 맡았게요?
당연히 너무도 명백하고 확고하게 The man입니다.
콜린 퍼스라고요 ㅇㅇ
11. 이런 당시 영국을 휩쓸었던 오만과 편견에 대한 인기를 이해하고 나서 책장을 들여다보면 이 깨는 언니의 연애소설은 겁나 재미있어집니다. 여주인공 브리짓은 어렵고 잘난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브리짓의 일기를 읽으면 어려운 말이나 잘난척하는 묘사없이 그냥 그 시대가 보입니다. 그 순간, 거기 살았던, 스트레스 쌓이면 초콜릿 퍼먹고 매일매일 칼로리 계산하고 회사에 지각도 하는, 하지만 솔직하고 미워할 수 없는 여자의 시각으로 본 90년대 영국이 눈에 들어오는 거에요.콜린 퍼스라던가. 콜린 퍼스같은.
12.후속편에서는 세기의 사건이었던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죽음도 묘사되면서 그 현실감은 더 생생해집니다. 다이애나의 죽음은 한국사람에게도 낯선 일이 아니니까요. 꽃대신 담배와 초콜릿과 복권을 가지고 버킹엄궁 앞을 찾는 브리짓을 통해 대중을 휩쓸었던 시대상이 전해져왔습니다. 다이애나. 스 시대의 여성들이 사랑한 프린세스. 물론 프린스도 있습니다. 찰스 말고 콜린 퍼스요.
13. 사실 콜린 퍼스를 빼고도 이 책의 브리짓이 멍청하지만 사랑스러운 괴짜이며 마크가 그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브리짓의 바보같은 실수들이 얼마나 공감가고 귀여운지 구녀 앞에서 잘난척하던 전형적으로 이기적인 멍청이 다니엘이 얼마나 얄팍한 인간인지 길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시초처럼 된 이 이야기가 어떤 영향을 받았고 끼쳤는지 오만과 편견과 이 책의 플롯이 어떻게 닮았으며 다른 부분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아마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지 않겠습니다.
14. 어떤 의미를 부여해도 브리짓은 미워할 수 없는 철딱서니고 그녀가 행복해지는 것에 기뻐지는 주인공이니까요. 그냥 그대로 웃으며 읽는게 좋아요.
15. 물론 콜린 퍼스도 중요하고.
자매작품: 킹스맨 오만과편견 드라마 브리짓 존스의 일기 영화판. (+그리고 아카데미 수상식중에서 `철의 여인` 수상소감을 말하는 메릴스트립 클립)
왜 추천목록이 이지경인지 궁금하면 위로 가서 3번 항목 다시 읽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ㅇ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