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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평점 :
<나를 찾아줘> 소설판.
1. 책과 영화를 굳이 비교할 생각은 없지만 뭔가 보면서 영화 <초콜릿>과 책 <초콜릿>이 떠올랐다. 원작가는 조니뎁이 사랑스러운 히피 집시 남주인공을 연기한 영화(아마 프랑스영화였던가 프랑스 더빙이었던가)를 마음에 들어했지만 다음과 같이 평했다. ˝영화는 더 달콤한 초콜릿이에요. 책은 좀더 쓰죠. 비터 초콜릿과 밀크 초콜릿의 차이라고 할까요.˝
2. 영화 초콜릿에서 여주인공은 남주인공과 함께 마을에 정착해서 아름다운 삶을 산다. 책에서는? 남주인공에게 두번째 딸을 얻은 여주인공은, 다만 바람의 딸인 것처럼 살았던 주인공은 가끔씩 마을 모퉁이, 풍향계 위에 머무는 바람을 보면서 숨을 들이킨다. 이 충동이 오지 않게, 다시 떠나고 싶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지만, 하지만 그래 언젠가는. 내 어머니처럼.
3. 주제도 내용도 전혀 다르지만 그런 점에서는 이 gone girl도 영화보다는 책이 더 썼다. 뭐 영화고 책이고 그렇게 달달한 이야기는 아니긴하다만. 영화는 같은 상황을 좀더 시각적으로, 극적으로 압축시키는데 여러 주안점을 둔다. 이를테면 에이미의 팔에서 흘러나온 피가 칼에 의한 것이었는지 주사에 의한 것이었는지. 많은 문학적인 설명들은 생략된다. 부동액, 피공포증같은 것들. `어메이징 에이미`가 망해가고 있다는 듯한 부가적인 설명들. 이를테면 에이미는 어메이징 에이미의 형편없는 결혼식 이야기편에서 인터뷰를 당한 후에 닉을 만나지만 영화에서는 훌륭한 캐릭터에게 압도당하는 인터뷰장에서 닉이 그녀를 구해주는 식이다. 응, 나쁘지 않지.
4. 그렇게 영화는 책의 내용을 갈무리한 것처럼 보다 극적이고 쉽고 아름답게 (포도주와 CCTV는 강렬했지! 물론 문간 너머가 아닌 마당에서 벌어진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만남-그리고 닉의 속삭임도) 만들었는데, 엔딩이 달랐다. 아니 거의 같았는데, 응, 달랐다니까.
5. 책의 에이미는 영화의 에이미보다 더 연극적이고, 드라마퀸이고 뒤틀려있다. 영화의 에이미는 망설임없이 닉에게 돌아왔고 휴전을 제안하고 닉은 그에 응하지만 책은 좀 더 다르다. 영화에서는 깜빡 잊어버리는데 책에서는, 그렇게 닉도 작가였다. 에이미의 자서전에 대비해 자기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는 작가. 수백만개의 단어로 아내가 얼마나 미친사람이고 얼마나 돌아버린 거짓말을 늘어놨는지 고발할 수 있는. 애초부터 `작가로 만난 두 사람`이었으니까 이 장치는 훌륭하게 맞아떨어져 돌아가고, 응당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책 속의 닉과 에이미는 더 차갑고 무심한 관계로 남는다. 영화에서 닉이 책을 쓰지 않은 부분은 `작가` 닉에게는 아쉬운 부분이겠지만 영화의 엔딩으로서는 훨씬 더 온건한 결과가 되었다. 영화 속 닉에게는 에이미를 향해 드러낸 이빨도 손톱도 없잖아. 그런데 책 속의 닉에게는 그게 있었던 거다.
6. 시작부터 끝까지 다투듯이 서로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던 두 개의 이야기는 그렇게 여전히 두 개의 목소리인채, 그리고 시작과 끝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에이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끝맺는다. 영화보다 훨씬 쓴 맛을 느낀 건, 영화에서는 한겨같이 닉을 이상의 남자로 길들이고 키우려했던 에이미의 의도가 애정으로 보였던 것에 반해 책 속의 에이미에게 닉은 최고의 엑세서리 혹은 반쯤 길들여진 호적수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호적수가 자신에게 연민을 보였다는 것에 다시금 새로운 분노를 품고 있었다는 부분이 특히 더 그랬다. 영화 속 두 사람은 3년만 지나면 서로 어깨를 나란히한 훌륭한 괴물이 될 것같았는데, 책속의 두 사람은 3년후에는 어느 한쪽의 숨통을 끊어놓을 맹수 두마리 같았다고 할까...
7. 아 영화에서 걱정했던 두 명의 이방인-돈털이범-에 대해 책 속의 에이미는 깔끔한 답을준비해놓고 있었다. 데시가 납치해서 방갈로에 데려갔다 어쩌구하는 시나리오를 준비해놓고 있었더라구. 영화를 보면서 아 저 두 연놈은(...) 디졌구나(....) 하고 생각했던 게 딱 들어맞은 게 책 속의 에이미는 트럭운전사가 위협운전을 하자 다음 4개월에 걸쳐 그 트럭의 소속회사에 아이를 태우고 달리다 위협운전을 당한 어머니를 비롯한 여러 피해자로 분장해서 항의전화를 걸었고 결국 트럭운전사 목을 잘리게 만들었다. 위협운전이 그정도였는데 만달러 탈취범은 어떻겠어? 어느 쪽이든 사람이 할 짓은 아니지만, 이 에이미는 충격적이니까. 어메이징하니까. 가능할 법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