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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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정신이고 하나는 물질이다. 물질의 개념으로 보면 책은 잉크로 글자가 적힌 한 뭉치의 종이에 불과하다. 정신의 개념으로 보면, 책은 사람이 표지를 여는 순간 글자를 통해 무한히 영역을 확장하여 세계의 일부를 보여주는 특별한 과정이다.
 
  책의 신비로운 점은,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똑같은 책을 동시에 읽는다 해도 결코 진정한 ‘같은 책’을 읽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을 통해 재탄생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을 물질이라기보다는 정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대답들이 돌아온다. ‘잉크로 글자를 적어놓은 종이뭉치’라는 대답을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책에 대해서 적을 것이다. 내가 읽은 책들과 읽지 않은 책들과 숨어있는 책들과 사라진 책들과 존재하지 않는 책들과 소문의 책들과 잊어버린 책들과 드러난 책들과 미래에 나타날 책들과 미움받은 책들과 사랑받은 책들과 쫓기는 책들과 죽은 책들과 버려진 책들과 파괴된 책들과 망가진 책들과 부서진 책들과 불탄 책들과 젖은 책들과 파먹힌 책들과 도둑맞은 책들과 팔린 책들에 대해서 적을 것이다. (p.13)


  실제로는 책이 시작하고 약 10p 정도 지난 뒤에 나온 구절이지만, 나는 이 부분이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사람이 나오지만, 그들은 모두 책에 의해서 휘둘린다. 모든 사건은 책에 의해 일어나고, 책에 의해 진행되며, 책에 의해 마무리 된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의 독특한 점은, 이 과정에서 책의 신성함을 부정하고 철저히 물질적인 단계로 끌어내렸다는 점이다.
 
  이 책은 재미있게도, 책이 죽은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차 도서파동이 지나간 후, 책들은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고 사람들은 분서축제를 계획한다. 모든 출판물은 검열당하고 책들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책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세계, 그 세계에서 의미 있는 것은 고서들과 희귀본들이고, 그것들은 거액에 거래된다.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소유하는 책이다. 물질이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 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관심이 있는 것은 그 책을 소유할 수 있는가 혹은 아닌가이다. 또는, 그 책이 ‘무언가를 얻는 데’ 필요한가, 혹은 아닌가이다. 그들은 책의 저자, 판본, 내용, 역사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그 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 아니고 돈벌이의 수단이다.
 
  ‘소유하는 책’. 이 말에는 일견 거부감이 느껴진다.
 
  일단 나는, 사람이 읽어야만 책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나를 떠나면 다른 누군가에게 읽힐 기회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내 생각대로라면, 내가 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내가 읽은 책을 남에게 모두 건네주는 것이다. 그 책은 내 손을 떠나서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에게로 여행을 갈 테고, 아주 많은 의미를 가진 뒤에 어딘가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책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해도 그 책이 내 손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니 나는 책을 어느 정도 ‘소유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책을 끌어안고 있으면 책에 발이 묶이게 돼. 책은 읽으면 버려야 되는 거야. (p.168)


  반디의 친구인 제롬은 반디에게, 자신이 찾아다니고 결국 소유한 책들을 언젠가 다 처분할 거라고 말한다. 한 권도 남김없이. 그리고 그 뒤에 다시 모을 거라고 덧붙인다.
 
  반디는 책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이 책의 끝에서 반디는 자신의 모든 책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반디는 마지막에 누군지 모를 사람이 보낸, 타다 만 책(그동안 반디가 줄곧 찾아다녔던 <또다른 찰리 이야기>)을 손에 넣고, 자신이 언젠가 책 사냥꾼이 다시 된다면 두 권의 책(자신이 직접 쓴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와 방금 손에 넣은 <또다른 찰리 이야기>)을 시작으로 하겠다고 생각한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를 얼핏 보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어지럽게 널린 책들에 의해서 어지럽게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흐름을 짚어보면, 이 책은 ‘찾고- 소유하고- 잃어버리고- 찾는’ 도식을 가지고 있다.
 
  찾고, 소유하고, 잃어버리고, 찾는다. 이 반복을 보고 있자면 마치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기분이 든다. 찰리도, 반디도, 제롬도, 윤선생도, 윤노인도 모두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밤하늘의 별들보다 많은 책들 사이에서.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는 책의 미로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속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미로를 헤매는 걸까? 세계의 책?
 
  저자는 이 책을 미로로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거짓들을 만들어낸다. 반디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모습 이면에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언급되는 책들은 실존하는 책과 환상 속의 책들이 뒤얽혀 있다. 배경이 한국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풍기는 느낌은 오히려 환상적인 책의 세상에 가깝다. 책의 미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찾고, 소유하고, 잃어버리고, 찾는 책들에 대해서 기록한 ‘안내서’를 남기는 것뿐이다.
 
  나도 한 때 책 사냥꾼이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찾는 책은 두 권이었는데, 절판된지 시간이 꽤 지나서 찾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 서점, 오프라인 서점, 출판사에서도 재고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중고책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온라인 중고책 시장은 매물이 거의 없었다. 헌책방에 가 보았지만 켜켜이 쌓여있는 책들의 산을 뒤질 용기가 나지 않아 물러났다. 다행히 찾던 책 중 한 권은 찾기 시작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어 재판이 되어 내 품에 안겼다. 다른 한 권은 아직도 구하지 못했지만.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정말로 책을 물질로 보고 있지 않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책을 물질로 보는 데에는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책이 정신이라면, 절판된 책을 굳이 찾아다니지는 않았을 거다. 그 책은 이미 내가 한 번 읽은 책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록 희귀한 책을 찾아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책 사냥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소유한 책 목록을 보니 그 생각이 한층 강해진다. 나에게는 읽어보고 싶은 책, 그리고 내 책장에 꽂아 넣고 싶은 책의 목록도 있다. 나는 책 사냥꾼인가? 다시 질문해보았다. 그렇다. 한때 그런 게 아니라 지금도 나는 책 사냥꾼이다. 나도 찾고-소유하고-잃어버리고-찾는, 책의 미로 속에 있다. 그렇다면 나도 세계의 책을 찾아야 이 미로에서 나갈 수 있는 걸까.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는 단호하게 말한다.


  네가 찾는 그런 책은 이제 세상에 없어. (p.206)


  내가 생각해도 세계의 책은 있음직하지 않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의 내용을 담고 있다니, 그것은 세계 자체이거나 혹은 신이라 불리는 존재일 것이다. 세계도 신도, 한낱 인간이 소유하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다. 게다가 실체도 없다. 다시 말하면 정신이다. 그런 것을 어떻게 물질로 치환하여 소유할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혹은 자신이 가진 모든 책을 포기할 결심이 설 때까지 책의 미로에서 헤매 다닐 수밖에.
 
  그러나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에서 책 사냥꾼들은 마지막 순간 ‘안내서’를 남긴다. 세계의 책을 포기하지 않고 말이다. ‘안내서’는 자신이 찾아다닌, 소유한, 잃어버린, 찾는 책들의 목록이다. 그것은 책 사냥꾼의 책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기도 하다. 책 사냥꾼의 안내서는 책의 미로를 헤매 다닌 결과물인 동시에 책의 미로로 다시 안내하는 안내서이다.
 
  책의 역사.
 
  이 단어를 곱씹다 나는 내 독서기록장을 떠올렸다.
 
  2008년부터 나는 내가 읽는 책들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읽게 됐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어떤 점이 별로였는지, 뭐가 특이한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줬는지, 그리고 또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그 기록들은 두서가 없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어떤 책으로 시작해서 어떤 책으로 나아가는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다시 말해 독서기록장은 내가 책의 미로에서 헤맨 기록이고, 또한 내가 책의 미로에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를 읽으면서, 이 혼란스럽고 다소 장황한 이야기를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읽고 있을까, 왜 이 책 속의 세계가 이렇게 나를 끌어당길까 생각했다. 그건 이 책이 책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책 사냥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책 사냥꾼이고, 책을 미로를 헤매고 있고, 안내서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부디 내 책 사냥꾼으로써의 여정이 모든 책을 잃어버리면서 끝나지 않기를, 내가 나만의 세계의 책을 완성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내 ‘안내서’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반디가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책 사냥꾼이 되기를, 그래서 책의 미로를 헤매는 동료가 줄어들지 않기를 꿈꾼다. 그게 비록 책이 더이상 의미없고, 책 읽는 사람들이 희귀해진 세상 속이라 하더라도. 
   


201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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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의 밤 매그레 시리즈 6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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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그레 시리즈 NO.6.
  내가 읽은 매그레 시리즈 중에서는 세 번째.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표지의 비밀(?)을 알아냈다. 뒷권 표지의 그림이 앞권 표지에 살짝 등장한다는 것 말이다(지금까지 표지는 1-술병, 2-열쇠, 3-세로로 세워진 가방, 4-말, 5-등대, 6-자동차). 내 추리가 맞다면 다음 표지는 모자(중절모) 모양이다. 이런 위트 좋아한다.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보험업자인 에밀 미쇼네가 자신의 6기통 새 자동차 대신 이웃집의 고물차가 차고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웃집에 간 미쇼네는 이웃집 차고에서 자신의 차를 발견하고, 그 안에 총을 맞아 죽은 시체(다이아몬드 상인 골드베르그로 밝혀짐)가 있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집주인인 카를 안데르센을 범인으로 보고 17시간 동안 취조하지만, 자신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른다는 답변만 받고 카를을 풀어준다. 매그레는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사건이 일어난 장소, 세 과부 교차로에 가서 세 집(정비소, 보험업자 미쇼네, 카를 안데르센의 집)을 둘러본다. 카를이 없을 때는 집에 갇혀있다고 말하는 카를의 누이 엘세, 집안에서 몰래 주변을 감시하는 미쇼네, 하루 종일 자동차가 드나드는 정비소. 그리고 골드베르그 부인이 세 과부 교차로에 도착한 순간, 총에 맞아 사망한다. 카를은 급료를 받으러 파리에 갔다 실종되고, 엘세는 계속 말을 바꾸고, 누군가는 엘세를 살해하려 술에 독을 타고, 실종된 카를은 집에 돌아오다 정원에서 총을 맞는데......
 
  처음 사건도 간단해보이지 않는데 사건이 거듭되면서 얘기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 대체 이걸 해결할 수는 있나 싶다. 두 이웃의 차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골드베르그는 왜 세과부 교차로에 왔던 건지, 미쇼네는 왜 주변을 계속 훔쳐보는지, 카를과 엘세의 관계는 무엇인지..... 지금까지 읽은 세 이야기 중에 제일 복잡한 이야기다. 매그레도 자신의 입으로 말했지만, 엘세의 실수와 조조의 실수와 미쇼네의 실수가 없었다면 사건의 실체와 그 사건의 원흉이 된 거대한 범죄는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 집에 모두 범인이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난 정비소만은 믿었는데 거기가 악의 축이었고 ㅠㅠ 엘세가 카를과 남매가 아니라 부부라는 건 예상했고 미쇼네가 엘세를 좋아한다는 것도 짐작했지만 사건의 핵심이랄 부분은 하나도 눈치채지 못했다 lllorz
 
  <교차로의 밤>은 매그레가 읽어내는 인간 심리보다는 스릴러의 느낌이 더 강하다. 액션도 있고. <누런 개>보다는 <수상한 라트비아인> 쪽에 느낌이 더 가깝다. 끝까지 읽고 나면 "아 그랬군!"이라는 생각이 들고 깔끔하게 정리되지만, 아무래도 중간에 조조가 실수를 저지르고 정비소의 실체가 밝혀지는 부분은 좀 갑작스러운 느낌이 있다. 매그레와 엘세의 심리전에서는 어쩐지 셜록 홈즈와 아이린 애들러가 떠올랐다. 셜록<아이린이었던 것과 달리 여기서는 매그레>엘세이지만.
 
  밤이 불러내는 미묘한 느낌과 신비한 여인, 엿보는 사람들, 숨어있는 적 등, 전체적으로 숨죽이고 보게 되는 글이다.
  그런데 결국 엘세가 카를에게 가진 감정, 카를이 엘세에게 가진 감정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참 묘한 두 사람이다. 
  
   


2011.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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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고뇌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5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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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세 개 하고 반 정도. 네 개라고 하기에는 조금 못 미친다.
 
  <탐정 갈릴레오>를 보고 범인보다는 범행수법에 초점을 맞춘 것이 꽤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갈릴레오 시리즈를 다 읽어볼까 생각했다. 중간의 세 권(예지몽, 용의자 X의 헌신, 성녀의 구제)는 모두 장편이라서 <갈릴레오의 고뇌> 쪽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나는 시리즈물을 아주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시리즈는 뒤로 갈수록 어쩔 수 없이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갈릴레오의 고뇌>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갈릴레오의 고뇌>는 <탐정 갈릴레오>와 맥락을 같이한다. 범인보다도 범행수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은 신선함이 상당히 무뎌졌다. 다섯 편의 단편에서 기이한 범행수법이 등장한 것은 두 편 정도. 나머지 두 편은 별로 신비스럽고 이상한 일이라는 느낌이 안 드는 설정이었고, 한 편은 아예 과학적 증명이 나오지 않았다.
 
 
* 떨어지다
- 한 여성이 자택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서 사망한다. 그러나 자살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정황증거들이 보인다. 여형사 가오루는 여성이 타살되었으며 그 용의자가 아파트 아래에서 여성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범행은 가능할까?
: 유가와가 '나는 이제 경찰에 협조 안 해.'라고 말해서 어리둥절해졌던 편. 이전의 3개 장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가오루는 살인사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다지 타살의 냄새가 풍기지 않아서 과학 실험에도 별 흥미를 못 느꼈던 건이다. 결말은 괜찮았다.
 
 
* 조준하다
- 유가와의 은사가 학생들을 초대한 밤. 은사의 아들이 별관에서 칼에 찔린 뒤 불에 타 숨진다. 한 눈에 보기에도 타살임이 분명하지만 흉기로 추정되는 일본도를 가진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유가와는 사건 정황에서 석연찮음을 느끼고 어떤 실험을 해보는데.......
: 범인이 저 사람 같은데, 저 사람이 어떻게 그 범죄를 저질렀지? 하는 의문에 후딱후딱 읽어버린 단편. <갈릴레오의 고뇌>에 실린 다섯 편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더불어 유가와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드러나는 단편인 듯 하다. 확실히 유가와에게는 유가와의 정의가 있다. 범행수법도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싶어서 좋았다.
 
 
* 잠그다
- 친구의 요청으로 친구의 펜션에 초대받은 유가와. 친구는 저번에 계곡에서 자살한 손님을 찾아 방에 들어갔을 때, 빈 방이 밀실이 되어있는 걸 목격했다. 친구는 밀실의 수수께끼를 풀어달라고 유가와에게 요청하지만, 유가와의 질문에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데.......
: 밀실에서 시체가 발견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밀실에 집착할까? 싶었던 단편. 사용한 수법은 재미있었지만, 별로 임팩트가 있진 않았다. 애초에 수수께끼 자체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 가리키다
- 노부인의 집에서 금괴가 도난당하고 개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용의자로 지목받은 40대 여성의 딸은 다우징으로 개의 사체를 찾아낸다. 다우징으로 무언가를 찾는다는 게 가능할까?
: 과학적 실험이라기보다는 유도심문의 승리. 개가 불쌍했다.
 
 
* 교란하다
- 경찰청에 익명의 편지가 도착한다. 자칭 '악마의 손'이라는 그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것이며 경찰은 그것을 사고사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도발하며, 필요하다면 유가와에게 비밀을 풀라고 요청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악마의 손'이라는 자의 말대로 사고로 보이지만, '악마의 손'이 미리 예고해놓았던 범죄가 두 건 일어난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는데.......
: <탐정 갈릴레오>에 나왔던 '폭발하다'와 느낌이 비슷했다. 남탓 쩌는 사람은 정말 싫다. 그와는 별개로 수법이 뭘까 궁금했다. 숙련공을 빌딩창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차를 갑자기 지그재그로 움직이게 만든 수법은??
 
 
  전체적으로 <탐정 갈릴레오>보다 스토리도 사람도 많이 유해진 느낌이다. 이걸 알기 위해서는 중간 시리즈를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아예 시리즈 순서대로 읽을 걸 그랬다고 약간 후회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글을 못 쓰는 건 아니다. 잘 쓴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자면 어딘가 불편해진다. 이번 소설에서도 그랬다. 같은 말을 해도 미묘하게, 정말 미묘하게 느낌이 이상하다. 예를 들어 이번에 가장 나를 찜찜하게 만들었던 건, 여형사 가오루 씨의 똑부러진 말이었다.
  "가까이 있으면 더 자주 전화를 하게 되는 법이죠. 여자란 그런 동물이거든요."
  딱히 틀린 말이 아닌데, 가오루씨의 대사는 미묘하게 불쾌하다. 몇 번이고 뚫어져라 보다가 이 부분이 단순한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떠한 가치판단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단정적인, 예외가 없는, 어떤 닫힌 사고방식 말이다.
  한마디로 '잘난척쟁이'라고 하면 될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재미는 있는데, 확실히 나와는 맞지 않는다. 
   


 
2011.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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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개 매그레 시리즈 5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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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그레 시리즈 다섯 번 째.
 
  <수상한 라트비아인> 다음으로 읽은 매그레 시리즈이다. 제목만 보면 '대체 이건 무슨 얘기지?' 싶다. 누런 개.......
 
  사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콩카르노 시에서 모스타구엔 씨가 빈집의 열쇠구멍 사이로 저격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마침 렌의 기동수사대에 파견와 있던 매그레는 콩카르노 시장의 요청으로, 신참 형사 르루아와 함께 콩카르노 시에 온다. 그리고 모스타구엔과 함께 라미랄 호텔의 단골인 세르비에르, 닥터 미슈, 르포므레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모스타구엔을 다치게 한 범인이 잡히지도 않았는데,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콩카르노 시는 공포에 휩싸인다. 사건마다 모습을 드러낸 누런 개, 그 누런 개의 흔적을 쫓아간 곳에서 매그레가 발견한 거대한 발자국... 범인은 누구일까?
 
  사건에 사건이 쌓이고 또 사건이 쌓이면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구조다. 매그레 시리즈는 용의자 1, 용의자 2, 용의자 3, 이렇게 용의자들을 늘어놓는 일 없이 사건 중심으로 흘러간다. 매그레 반장으로 말하자면 무뚝뚝해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머릿 속으로 뭔가를 세워두고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일이 왜 이렇게 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끝도 좀 애매모호하게 끝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끝에서는 한 번의 반전과 함께 그 동안의 의문을 정리하면서 사건이 명확하게 정리된다. 그 깔끔한 솜씨가, 왜 <누런 개>가 그렇게 유명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스펙타클한 전개는 아니지만, 사건이 계속 일어나면서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눈을 떼기 힘들어진다.
 
  <누런 개>에서 중요한 것은 "범행이 가능한 사람은?"이다. 이것만 잘 정리해도 대충 윤곽이 드러난다.
  동기에 집중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동기는 나중에서야 밝혀지기 때문에 앞부분만 보고는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사건을 쫑쫑 따라가면서 느낀 것은 군중의 힘, 공포의 전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신문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도. 콩카르노 시장이 "아무나 체포해!"라고 말하는 부분은 오싹했다. 사건 자체도 재미있지만 사건을 둘러싼 어떤 힘, 영향력 같은 것들을 보고 있자면 소름이 끼친다. 그래서 매그레가 "제가 어떤 수사를 책임지고 있을 때는, 무엇보다도 절 좀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고맙겠어요!!!(157p. 무려 느낌표가 세 개다!!!)"라고 말했을 때 그 압력을 버텨야 했을 매그레가 가엾었고 그러는 한편으로 속이 시원했다.
 
  <누런 개>는 시종일관 심각한 얘기 같지만, 의외로 웃음나는 부분이 곳곳에 있었다. 지문감식 해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르루아의 모습이나, 르루아에게 일감을 던져주고 "너 이게 좋아하지?"라는 양 "이제 자네 일감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45p)"라고 말하는 부분, 일단 누구든 체포하라는 시장의 압력에 닥터 미슈를 체포하는 부분, 그리고 기자들에게 "어이, 기자 양반들, 거의 다 끝나 갑니다! 오늘 저녁이면 모두들 파리로 돌아가실 수 있을 거요.(p.178)"라고 말하는 부분 등. 매그레는 시종일관 심각하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누런 개>는 <수상한 라트비아인>보다 한층 풍부해진 느낌이다. 매그레 반장의 인간미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하지만 XX의 범행을 슬쩍 자기 몫으로 돌린 부분은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매그레는 괜찮을까?;;;), 사건은 해결되고, 악당은 검거됐다. 그 악당이 보통 악당이 아니라서 앞으로의 이야기가 좀 걱정되기는 하지만, 사적처벌이 아니라 법적처벌을 하는 이상에야 그런 불안함은 항상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악당 검거한 게 어디냐.
 
  <수상한 라트비아인>보다 더 재미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남아있지만 더 자세한 리뷰를 남기자면 소설 내용을 다 까놓고 범인까지 까놓게 되기 때문에 아쉽다. 이런 점 때문에 추리소설은 리뷰 쓸 때 가끔 아쉬운 맛이 있다. 하지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소개에서 "범인이 XX라 충격을 몰고왔던 고전!" 운운하는 소개를 본 이후, 범인 누설은 피하기로 결심했다. 추리소설을 범인부터 알고 시작한다는 건 정말 마음 아픈 일이다. 
  
  
 

2011.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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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대 2 - 가을.겨울
로버트 매캐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검은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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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분권이 된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한번에 쭉 읽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한 번 호흡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정상 1권만 있거나 2권만 있게 되면 서글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년시대> 2권을 받았다. 1권을 구한 다음에 읽기 시작할까 하다가 그냥 2권 먼저 보기로 했다. 6월에 이미 책을 많이 사서 책의 구입은 빨라봤자 7월이 될 것 같기도 했고, 2권만 먼저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개인적으로 궁금했기 때문이다(드라마에서야 뒷이야기만 보면 앞 이야기 짐작이 가능하지만 소설에서도 그럴까?).
 
  앞부분을 뚝 떼어먹고 중간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처음에는 좀 시큰둥했다. 2권 처음에는 스워프 읍장님과 코리가 만나는 장면이 거의 곧바로 펼쳐진다. 초록 깃털이 뭔지, 코리가 왜 숨 넘어가도록 놀라는지, 내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_@?? <- 이런 느낌으로  글을 읽었고 몇 십 페이지가 지나서야 대충 사건의 윤곽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소년시대>의 큰 줄기는 '1960년대 앨러배마 주의 제퍼 마을에 있는 색슨 호수에서 발견된 시체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 살인범은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처음엔 막연히 지금과 비슷한 때가 아닐까 하다가 백인과 흑인의 구별이라던가 KKK단, 나치, 우유배달원 이런 이야기를 보면서 이게 좀 더 과거의 이야기구나 알 수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도 시간대가 달라지만 일종의 마법같이 느껴지는 법이다. 그러나 열두 살 코리의 눈으로 보는 1960년대의 제퍼 마을은 단순히 시간대가 달라서 '마법같이 보이는' 것이 아닌, 사소하지만 중요한 마법들이 현실의 논리와 공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총탄이 뱀으로 변한다던가, 자전거가 사람을 물어뜯는다던가, 유령이 자동차를 몰고 범죄자를 추격한다거나.
 
  코리가 봄부터 겨울까지 겪은 사건은 크게는 '살인범 찾기'이지만, 이야기는 살인범에만 매달려 있지 않고 일상생활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코리의 삶은 다양하고 거기에 조금 모양이 다른 조각 하나가 끼어든 것이지, 그 조각이 코리의 삶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두서없는 여러 사건을 보자면 정신이 산만해질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다. 나는 코리를 따라 여기에도 가고 저기에도 가고, 하면서 코리의 삶의 풍경이 어떤지, 제퍼 마을이 어떤지 엿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끔은 "그래, 살인범이 있었지."하는 생각을 떠올리긴 했다. 그건 책 안에서 코리가 살인범을 추적하고 있을 때였지만.
 
  아이였을 적 세상을 볼 때 썼던 안경을 다시 쓴 것처럼, <소년시대> 속 세상은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나 해피 엔딩이 약속된 동화가 아니라 현실처럼 때로는 비정하고 때로는 불합리한 세계다. 그래서 더 신비로울지도 모르겠다. 코리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여러 사건-살인범 추적, 브랜린 형제와의 싸움, 아버지의 실직, 레벨의 죽음, 데이비 레이의 사고, 블레이록 일당과의 총싸움, 크리스마스에 떨어진 미사일 등-을 겪으면서 여러 감정을 맛보고 한 단계 자란다. 처음에 왜 이 소설이 "성장기"일까 궁금했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2권 처음의 코리와 2권 끝의 코리는 같은 코리가 아니니까(단순히 어른이 됐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빠가 오른편에 다가와 섰다. 엄마는 왼편에 섰다. 우리는 정말로 손발이 잘 맞는 팀이다.
  "이제 됐어요."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내 괴물들과 마법의 상자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소년시대> 2권 中 451p 발췌, 4장 '겨울의 차가운 진실' 마지막 문장)
 
  <- 이 부분이 아주 좋았다.
 
  그 후에 덧붙은 에필로그, '제퍼 그 후'에서 코리는 어른이 되었고 다시 돌아온 제퍼 마을은 열두 살 코리가 살았던 제퍼마을과는 다르다. 코리의 제퍼 마을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코리는 아직도 소년이고, 제퍼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다른 모습으로 제퍼 마을 혹은 다른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 그 중에는 아직 제퍼 마을을 마법의 세계로 보고 있는 조그만 꼬맹이들도 있다. 그걸 보며 2011년 한국에 사는 꼬마들도 1960년대 미국의 코리처럼 마법의 세계를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근처에 사는 꼬맹이들을 보면 학원을 몇 개씩 다니느라 그럴 정신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또 어찌 생각하면 그들도 나름대로 신비가 곳곳에 숨어있는 마법의 세계를 살고 있을 것 같다.
 
  마법이 살아 숨 쉬는 한 그들은 언제나 저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법의 심장은 아주 튼튼해서 여간해서는 멎지 않는다.
(<소년시대> 2권 中 479p 발췌, '제퍼 그 후' 마지막 문장)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어린시절을 곰곰히 생각해 봤다. 지금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들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즐거웠다. 내 어린시절에도 마법이 있었던 건 틀림없다. 하기야 신비란 보려고 하면 어디에도 있다. 나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떡볶이를 만들어 줄 때 그걸 보며 마법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뭘 넣고 조금 끓였을 뿐인데 맛있는 간식이 나왔으니까. 한 동안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지냈다. 코리를 보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한참 기억 속에 묻어두고 지금을 살기 바빴을 거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있는데, 기억으로 묻어버리지 않고 지내는 건 참 힘든 일 같다.
 
 
  <소년시대> 2권을 읽고 알게된 것. 반토막만 읽어도 재밌는 책은 재밌다. 그러니 한 토막을 다 읽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조만간 1권을 읽어봐야겠다.^^ 
  
   


201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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