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세계사 - 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59가지 전쟁 이야기
김성남 지음, 진선규 그림 / 뜨인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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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를 논할 때 전쟁은 빠질 수 없는 하나의 축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전쟁 이야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전쟁에 대해서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아는 것이 없다. 역사 속에서 전쟁을 논할 때, 보통은, 전쟁이 벌어지게 된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그 의의에 대해 꼼꼼하게 풀어놓는 것에 비해 전쟁 속의 전투, 전투의 경과, 무기, 병사, 그런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생략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전쟁과 전투는 대개 숫자놀음이나 영웅의 행보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전쟁 세계사>는 세계 속의 전쟁사를 말하는 책이다. 전쟁의 모습을 크게 아울러 보려는 의도는 챕터 제목에 여실히 드러난다. 전쟁하는 사람들, 전쟁의 도구, 전쟁하는 법, 전쟁사 속의 졸병일기, 위대한 전쟁영웅 이야기, 전쟁사에 큰 획을 그은 전투, 그리고 전쟁의 새벽. 이 책을 읽자면 이전엔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 전쟁의 모습-병사의 훈련이라던가 전쟁하기 위한 이동경로라던가 보급문제, 무기의 활용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옛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모습은 상상해 본 적이 있었지만 그를 따라 머나먼 인도까지 출정을 간 졸병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전쟁 세계사>는 전쟁에서 자주 잊히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작은 조각들을 주워모아 보여주려 한다. 그와 동시에 <전쟁 세계사>는 유럽 일변도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까지 두루 다루려고 한다. 세계사라 하면 아무래도 유럽 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 이 책은 최대한 여러 곳을 다루려고 한 노력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줄루족의 검은 전사들과 쇠뿔진형을 다룬 부분을 보고 감탄했다).

  글을 써 보면 알겠지만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하지만 쉽게 쓰는 것은 어렵다.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쓰는 것은 더 어렵다. <전쟁 세계사>는 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책이다. 곳곳에 있는 삽화가 한 숨 돌리게 하고 눈을 쉬게 하며, 때로는 웃음짓게 하고, 가끔은 글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아쉬운 점은 삽화가 글의 이해를 돕는 측면보다는 말 그대로 '그림'에 머무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전쟁 세계사>를 읽으면 한 가지를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전쟁은 인간이 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최첨단 무기가 있어도 그것을 쓸 인간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전쟁은 아주 옛날부터 인간과 함께 했고, 그리고 지금도 우리 옆에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전쟁은 단순한 영웅담이나 숫자놀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부딪히는 과정이며 그럼으로써 양쪽 다 크든 적든 피해를 입는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 걸까? 저자는 말한다. 그런 건 모른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전쟁을 연구함으로써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적군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죽일 수 없다." 전쟁 상황에서는 인간의 물질화(쉽게 말하자면 인격을 가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 생각도 개념도 없는 고깃덩어리로 단순화하는 것)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고 말이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이코패스의 특징 중 하나도 인간의 물질화이다. <전쟁 세계사>를 보면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모두 인간이라는 게 보인다. 모두가 그것을 알게 된다면 전쟁이 사그라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낙관적인 생각을 해 본다.

 

2009.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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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그 후 - 환경과 세계 경제를 되살릴 그린에너지 혁명이 몰려온다
프레드 크럽.미리암 혼 지음, 김은영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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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지구, 그 후>를 끝맺는 말이다. 그린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결단'이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지구, 그 후>를 펼치면서 이 책 안에는 환경보호를 위한 어떤 막연한 비전이나 아이디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나에게 있어 그린에너지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그 무엇,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는 무엇, '지구를 위한 자원봉사' 개념으로 개발을 하고 있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에너지, 그 정도의 이미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린 에너지라는 것은 생소하다. 태양열발전, 풍력발전, 수력발전. 환경을 보호하는 깨끗한 에너지들. 그 개념 자체는 내가 글을 깨치기 시작할 무렵에도 있었다. 글짓기도 하고 포스터도 그렸다. 하지만 그것은 SF소설에나 나올 것처럼 먼 이야기였다. 그린에너지라는 다섯 글자만 보면, "그린에너지, 필요하지. 하지만 굳이 편한 화력발전을 놓고 그린에너지를 힘들여 개발할 사람이 있기는 할까."라는 심술궂은 생각이 불쑥불쑥 치솟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실질적 소득이 돌아오지 않는 일에 팔 걷어붙이고 나설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것이 바로 공공재의 비극 아니던가.

  그런데 <지구, 그 후>는 환경보호를 위해 그린에너지 개발을 주장하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냉정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다. <지구, 그 후>는 그린에너지를 환경보호의 측면이 아닌 경제성과 시장성의 측면에서 바라본다.

  <지구, 그 후>가 제일 먼저 짚고 넘어가는 것은 '탄소배출량거래제'이다. 탁월한 아이디어가 담긴 이 법안 하나로 말미암아 그린에너지 연구에 탄력이 붙었다. 이유는? 돈이 되니까. 그린에너지는 지구를 위해 개발해야 하는(그러나 실제로 돈은 안 되는)  이상의 영역에서 단번에 현실적인 영역,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쓸수록 돈이 벌린다는 현실의 영역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현재, 지금 이 시점의 그린에너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린에너지를 만드는 여러 기술이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 연구하는 업체는 어떤 업체인지, 이 기술에 경제성은 있는 것인지, 효율은 어느 정도인지리 조목조목 따져본다. 말하자면, "현재 그린에너지는 어느 정도 와 있는가"를 재단해보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태양에너지, 바이오연료, 해양에너지,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 책을 한 장 넘길 수록 '완전히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곧 다가올' 그린에너지가 떠오른다. "이건 가능성이 있다!"라고 확 현실감이 오는 것이다.

  <지구, 그 후>의 매력은 바로 현실성에 있지만, 책을 읽는 나에게는 그 현실성이 조금 버거웠다. 슬프게도 나에겐 화학기호와 이름과 기술이 끝도 없이 나오는 이 책을 슬렁슬렁 읽고 이해할 기반이 없다. 아무리 설명을 꼼꼼히 해 주었다고 해도,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과 생판 낯선 사람의 이해력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힘든'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책에서 손을 놓지는 않은 것이 신기하다. 다시 한 번 읽으면 이 책의 내용을 두루뭉실하게가 아닌,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동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동기를 미국에서는 <탄소배출량 거래제>로 만들어냈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 이런 법안이 없다고 알고 있다. 당연히 그린에너지 쪽의 개발은 더딜 것이다(동기가 주어져야 일에 탄력이 붙는 법이니까). 우리나라는 아직 개발도상국으로 분류가 되어 있어서 교토의정서와 같은 국제환경협약의 제한을 심하게 받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변이 없는 한 십 몇년 이내로 개발도상국 딱지를 뗄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그린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 때, 시장을 선점한다면 엄청난 경제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생각해 볼 때, 우리 나라도 슬슬 그린에너지에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지구, 그 후>를 끝맺는 이 문장이 무척 마음에 들고 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2009.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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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박철현 옮김 / 이제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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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동그라미 하나와 긴 작대기에 작은 작대기 하나 붙였을 뿐인데 넙치가 납치가 되고 밤이 범이 된다. 사소한 차이로 뜻이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언어만이 아닌 듯 하다. 고대 기독교의 다양성을 알려주는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을 읽다보니 같은 재료로 얼마나 다양한 요리가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가 아는 기독교는 사도신경을 읊고 주기도문을 읊고 삼위일체설을 믿고 정경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기독교다. 그 외의 다른 기독교는 사실,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때로 궁금하긴 했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7%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던 고대에도 문맹률이 그렇게 적었을까? 다시 말하자면 사도들은 모두 글자를 알고 있는 지식인들이었을까? 바울의 경우에는 그 시대의 내노라 하는 엘리트였으니 이해가 가지만, 어부와 같은 생업을 가지고 있던 사도들이 복음을 글로 적어서 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신약 성경을 사도들이 직접 쓴 게 맞을까, 하는 작은 의문같은 것 말이다. 게다가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당시의 풍경을 각각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소한 차이는 때로 성경책을 들춘 나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궁금증은 잠시 솟아올랐다가 곧 잠잠해졌고 내가 아는 것 이외의 다른 형태의 기독교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머리가 굳어서 그 쪽으로는 돌아가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 정도로 다양한 고대 기독교 형태와 그들 사이에 일어난 치열한 교리전쟁, 그리고 다양한 위서(외경)와 정경화 작업에 대해서 늘어놓는다. 어떻게 해서 기독교가 지금의 형태가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혹시 다른 기독교가 되었다면 현재 세계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도저히 같은 기독교라고 믿기 힘든 교리도 있고 이런 식으로 상상할 수도 있구나 신기한 교리도 있고, 여하튼 교리의 도가니탕을 보자면 고대 세계에 기독교를 둘러싸고 그 당시의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다 '기독교 인'이었고 각자 이해한 방식으로 기독교를 믿었다.

  하나를 둘러싼 여러가지 생각이 존재하면 혼란만이 가중될 뿐이니, 교리 싸움은 필요했을 것이다. 어느 것이 기독교인가? 라고 말했을 때 10명이면 10명이 다 다른 기독교를 얘기한다면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일어난 싸움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읽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으로 번진다. 가장 순수한 폭력은 믿음에서 나온다고 누가 했던가.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 위서를 만들고, 자신의 생각을 경서에 첨가하거나 삭제하고, 상대를 비난하고-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옛날도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 안에 씁쓸함을 남겼다. 가장 종교적인 것을 두고 벌인 전쟁이 가장 세속적인 방법을 떠올리게 하다니 아이러니다. 이긴 자는 처음부터 이긴 자의 생각만이 존재했다는 듯 진 자를 철저하게 땅에 묻었다. 고대에 존재했던 다양한 기독교 형태의 윤곽이나마 알게 된 것은 최근에 들어서다. 예기치 않은 문서의 발견과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으로 고대 기독교의 다양한 모습과 그들의 교리가 드러난 것이다.

  편협한 종교라고 알려진 기독교의 초기 모습, 그 어마어마한 다양함을 보고 머리가 멍했다. 도저히 같은 기독교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생소한, 그러나 논거를 가만 들어보면 왜 그들이 그 교리를 믿었는지 납득이 가는, 그런 다양한 형태가 고대에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다니. 지금의 기독교만 보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알고 있던 것이 낯설어지는 것은 재미있는 감각이다.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을 읽으면서 그러한 재미를 느꼈다. 이제는 잊혀진 기독교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읽고 보면서, 뻣뻣한 시각이 조금쯤 말랑해졌다고 할까. 믿고 있던 것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그것을 바라보니 머리 속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진 것 같다. 패배당하여 억압되었던 옛 기독교 형태도, 그렇게 억눌렀음에도 어느 정도는 지금의 기독교의 형태에 스며들어 기독교에 일조한 것처럼, 관용의 정신이 필요한 시대에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관용이란, 받아들임이란, 융화란 무엇인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2009.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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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임신할 수 있을까?
빌 손즈.리치 손즈 지음, 이경아 옮김 / 한승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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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먹다가, 길 가다가, 영화 보다가, 문득문득 드는 궁금증이 있다. 궁금하긴한데 참 쓸데가 없어서 물어보기도 뭣하고, 사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도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질문들을 모아서 답을 한 책이다. 제목부터 엉뚱하다. <남자도 임신할 수 있을까>.

  남자도 임신할 수 있을까? 남자가 수정란을 10개월간 뱃속에 가지고 있을 수 있냐는 의미라면 '그렇다, 임신할 수 있다'.

  흡혈귀는 실제로 존재할까? 흡혈귀 전설은 광견병에 걸린 사람을 모델로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 책이 광범위하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담뿍 담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질문 당 답변은 한 페이지 정도이고 짧을 때는 한 문단일 때도 있다. 게다가 아주 평이한 문장으로 질문에 대해 답한다. 읽을 때 막히는 곳 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명쾌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명확한 답이 나올 때도 있지만, 다소 모호하게 넘어가는 질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재치가 넘치는 말재간은 모든 것을 커버한다. 이상한 질문에 과학적 답을 알려주는데 몹시 진지하면서도 재치가 넘친다. 저자의 유쾌한 말솜씨는 독자를 책에 푹 빠져들게 한다.

  질문들을 보고 있자면 "뭐 이런 걸 묻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질문의 답을 읽다보면 사람 뒤통수를 딱 때린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답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자도 임신할 수 있을까'처럼. 

  책을 읽고 나서 건진 건 뭐가 있을까? 

  일단, 세상이 상당히 신기해 보인다. 그리고, 사람이 꽤 엉뚱해진다. 사소한 것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마음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유쾌하다.

2009.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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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하루 - 46인의 렌즈, 5색 테마, 그리고 셀 수 없는 이야기
이철승 글, 사진을 찍는 46인 사진 / 쿠오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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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의 하루>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소소한 사진들의 모음이다. 평소에 볼 수 있는 풍경을 담은 사진, 멋을 부린 대상을 담지도 않았고 찍을 때 멋과 기교를 가득 써서 현란하지 않은, 그냥 우리가 찍어서 손에 넣을 수 있을 듯한 그런 사진. 신기한 장면도, 아름다운 장면도, 추한 장면도, 끔찍한 장면도 아닌 담담한 일상의 풍경- 보는 순간 눈을 절대적으로 사로잡지 않는 사진을 책 속에서 보는 것은 생소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풍경일지라도, 그 풍경을 찍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진기는 우리의 눈과는 달라서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그 풍경을 자신의 속에 담지 않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책에 선별해 실을 정도면 두 말할 나위 없다. 보는 이가 못 보고 지나갈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가지고 싶었던 찍는 사람의 감성이 궁금해진다. 책을 덮기까지 내내, 사진을 꼼꼼히 훑으며 찍은 이의 마음을 추리하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진도 있지만, 결국 사진에 대해 알아내지 못하고 싱거운 웃음을 지으며 페이지를 넘기기도 했다.

  어쩌면, 보는 사람이 '이게 뭐야?'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는 사진이기에, 책의 제목이 <사진의 하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일상'이라는 틀에 꿰어 움직인다. 그 일상은 단조로울만큼 담백하다. 마치, <사진의 하루>에 있는 대부분의 사진들처럼.

  아쉬운 점은 사진 옆에 곁들여진 글귀이다. 어깨에 힘을 빡 주고 너무나도 멋을 부린 글들. 있어보이게끔 서너 겹씩 치장하고 감싼 구절구절이 사진과 무척이나 동떨어지게 느껴졌다. 더구나 몇 개의 글은 사진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보며 머리 속을 차지했던 담백한 기분은 글귀를 보는 순간 더부룩한 거부감으로 남았다.

 

2009.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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