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이 말을 들으면서 여러분은 지금 부지런히 도덕의 잣대를 휘두르고 계시겠지요. 아마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버릇이니까요(...)기회만 닿으면 남의 부인이건 남의 귀한 외동딸이건 가리지 않고 성의 파트너로 삼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그 고귀한 기회균등의정신 앞에서 저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일 하나를 해치운 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저 대중 앞에서 웃음을 파는 한 남자를 잠시 독차지했을 뿐이고,

아무도 하지 않은 말, 아무나 할 수 없는 말, 나는 그런 미지의 언어를 원한다.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이 세상에 새로움이란 없다‘는 식의 단언이다. 나는 넓은 생각, 낡은 언어, 낡은 사랑을 혐오한다. 나의 출발점은 그 낡음을 뒤집은 자리에 있다. 장애물이 나와도 나는 그것을 뒤집어 버린다. 세상은 나의 운동장이다. 절대 그늘에 앉아 시간이나 갉아먹으며 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다.

영혼을 찍는 카메라가 있다면, 짓눌리고 억압받는 정신을 촬영하고 인화할 수 있는 과학이 있다면, 렌즈를 들이대고 분명히 찍어두어야 할 여성의 깊은 상흔은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찍어야 상처의 증거가 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은 교묘하고 복합적이다.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일상적으로 이해되고, 그리하여 일상의 하나로 무심히 잊히는 사회는 진정 옳지 않다.

하지만 성(性)의 대결이나 성의 우월을 가리기 위해 이 소설이 쓰인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말하자면 상처들로 무늬를 이룬 하나의 커다란 사진이다. 함께 들여다보면서, 서로 대립하지 않고, 각자 동등한 자리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데 유용하게 쓰여야 할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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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삶으로부터 충만한 감정을 얻고 싶다면 우리에게 당장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을 원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를테면 날씨 같은 것. 흘러가는 구름 같은 것 말이다. 어느날 나는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서 달빛에 투명하게 빛나는 기이한 구름들을 보았다. 내가 살아 있어서 이런 구름들을 다 보는구나 하고 시시한 생각에 한참을 잠겨 있었다. 한밤중의 다시없을 창문 밖의 광경은 내가 단지 살아 있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창문 밖을 보는 것만으로도 생동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좋아한다. 구름을 따라 움직이는 나의 마음을. 그러니 삶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타인을 향해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말할 수 없다. 때로는 삶에 대해 입을 다물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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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의 편지‘라는 내용이 있었다.
˝내 약속을 믿지 말아요. 나는 곤경을 모면하러 무엇이든 약속할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진심에서 한 약속이라도 냐가 걸린 질병 때문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겁니다. 내가 하는 말은 아무것도 믿지 마세요. 아마도 거짓말일 테니까요. 현실 부정은 내 질병의 증상입니다. 게다가 나는 속이기 쉬운 사람은 존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내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이용하거나 착취하게 두어선 안 됩니다. 정의의 차원 없이 사랑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처음 단체 상담을 할 때 상담사가 내게 여기 왜 있냐고 묻더라고요. 내 문제가 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마약과 알코올 중독이라고 말했더니 그 사람이 고개를 저었어요. 그건 내가 내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라고 했어요. 그는 내 문제가 뭐냐고, 왜 여기 있냐고 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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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세상의 기쁜 말 -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세탁 일을 하면서 그는 인간의 수많은 얼룩을 지워봤다. 김칫국물, 커피, 기름때, 과일즙, 사인펜, 물감, 땀, 피, 온갖 분비물. 그는 세탁소 주인으로서 필수 법칙 하나를 만들었다. 인간도 옷처럼 때때로 세탁소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택한 자신의 세탁소는 바다였다. 그는 인생에 한 점 바람도 불지 않는 답답한 날이면, 오토바이 뒤에 아내를 태우고 바닷가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너무 욕심이 많은 사람도, 바다에 쓰레기를 그대로 버리고 가는 사람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아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체로 넋을 잃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 친구들은 자신을 비울 줄 안다고 느꼈다. 그들 중에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인디언들은 카누를 만들고 열흘 동안 바다에 띄우지 않았다. 이유는 삼나무의 독성이 물고기들에게 좋지 않으니까. 나무를 다루는 일을 많이 하는 막노동꾼인 그는 그런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날은 마음의 얼룩이 지워지고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가 지고 있는 무게를 알아요. 제 아내와 저도 서로 상대방이 지고 있는 무게를 압니다. 저는 사람을 보면 항상 그 사람이 지고 있는 무게가 보여요. 제 생각에 사람 사이의 균형과 조화란 게 서로의 무게를 알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야 둘이 같이 가라앉지 않아요.

연대 /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로 알게 된 모든 것을 당신께 알려드릴게요.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도울게요. 당신은 나보다 덜 슬프도록요.

하쿠나마타타. 이 말을 한 사람이 딸의 뼈를 만진 손으로 찬란한 해바라기를 수놓았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을 줄 알았다. 나는 그토록 깊게 슬퍼한 사람이 타인의 행복을 바란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놀란다. 슬픔과 아픔이 경이롭게 변한 말, 하쿠나마타타. 생의 경이가 아니라 생의 경시가 가득한 이 사회에서 조건이 하나 붙으면 이 말은 백 퍼센트 진실에 가까워진다. ‘당신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찾아낸 해결책이 좋은 것이면, 그것이 올바른 것이었음이 밝혀질 날을 기다린다. 그렇게 종이 위에 쓴 것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아빠는 아무리 무미건조한 사람도 잘 자란 은행나무를 바라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는 은행의 노란색이 어두운 마음도 환하게 밝혀주는 착한 색이라고 생각했다.

‘꽃이 폈다’도 설레지만 꽃이 만발하다‘는 특별히 아름답다. 문장 자체가 신비롭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하면 전화기 너머, 만발한 꽃그늘 아래 엄마가 손을 흔들며 서 있는 것만같다. 하여간 꽃은 우리의 말 습관, 우리 사이의 대화마저 바꿔버렸다. 하긴 이렇게 좋은 말을 참아야 하는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아직도 달을 보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걸고 싶다.

그때 잠시 땀을 닦으면서 당신을 당신으로 만든 이야기를 들려달라. 당신이 멈추지 않기 위해 필요로 했던 이야기도 들려달라. 두꺼운 고독을 뚫고 나오게 했던 존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달라. 당신의 고유한 기쁨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나는 살아 있는 자의 귀로 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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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라는 말은 참 편리하지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 대단한 게 툭하고 튀어나오는 것 같잖아요? 하지만 결국 고민의 시간이 차이를 만드는 거랍니다.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하는지, 하지 않는지. 결국 그 차이죠. 손님은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했을 뿐이에요."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 꿈에서는 걷고 뛰고 날수도 있는 저는, 꿈에서 깨어나면 그러지 못합니다. 바다를 누비는 범고래는 땅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바다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정도와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생명은 제한된 자유를 누립니다."

"왜?" 가족들은 금세 레오 주위에 둘러앉았다.
레오는 방석 위에 벌러덩 누워서 짧은 다리를 천장 쪽으로 쭉 뻗고, 꼭 달리기하는 것처럼 박자를 맞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꿈에서 뛰어놀고 있나 봐. 이건 진짜 치명적인 귀여움이다." 아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다리 아파서 많이 뛰지도 못하면서. 이 조그만 것이 얼마나 뛰고 싶었으면, 꿈을 다 꾸고…."
아빠는 갑자기 울컥한 것 같았다.
"당신은 레오 키우더니 감수성이 풍부해졌어. 얘네 키울 때는 안그러더니."
엄마가 괜히 핀잔을 줬다.
"그러지 말고 우리 지금이라도 산책하러 갈까? 오랜만에 다 같이 동네 한 바퀴 돌고 오자."
조금 전까지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레오는 ‘산책‘ 한 마디에 번쩍 눈을 떴다. 레오는 자고 일어났더니 네 사람 모두 돌아와 있자, 누구한테 먼저 반갑다고 인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제자리에서 주춤주춤 돌며 털이 반쯤 빠진 꼬리를 열심히 흔들었다.

집 안에는 올해로 12살이 된 노견, 레오가 홀로 곤히 잠들어있었다.
레오는 낮 동안 베란다에 가만히 엎드려서 가족들을 기다렸고, 오래된 인형을 물고 방마다 돌아다니며 오늘의 산책을 대신했다. 해가 지고 사방이 캄캄해지자 자동 센서가 탑재된 미등이 켜지긴했지만, 여전히 적막한 집에서 레오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자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나이가 들수록 졸음은 잘도 쏟아졌다. 레오는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고, 마침 애니모라 반쵸의 꿈을 꾸는 참이었다. 반쵸가 ‘산책하는 꿈‘을 준 덕분에 레오는 꿈속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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