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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의 원작소설이다. 으레 영화의 원작이라고 하면 절로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게다가 작가가 그 유명한 '위대한 개츠비' 를 쓴 피츠제럴드이니 더더욱 호기심이 생기는건 당연지사. 70세의 노인의 모습을 가지고 태어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모만 점점 어려져간다는 설정 또한 흥미롭다. 요즘의 sf나 환상문학을 쓰는 작가가 아닌 몇세기전의 작가가 그런 내용을 썼다는게 놀랍기만 하다. 흔히 고전들이라 하면 그것들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분위기에서 탈피되어 있는 듯 했다. 오히려 현대소설에서 볼 수 있는 톡톡 튀는 참신함과 개성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다. 책 한권이 온통 스콧 피츠제럴드만이 나타낼 수 있는 유머와 풍자로 가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의 원작소설이라고 해서 장편소설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아주 짧은 단편이었다. 이렇게 짧은 이야기로 두시간에 가까운 영화로 만들었다니 작가나 감독이나 상상력이 대단한 것 같다.
한번쯤 그런 생각들을 해봤을 것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때는 빨리 어른이 되어 자유를 누리고 싶었고 다 커버린 지금은 아무걱정없이 학교 다니던 그때가 그립다는 생각을... 그렇게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벤자민 버튼은 신생아임에도 불구하고 70세의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처음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부모님은 수치스러워했고 남들에게 숨기기에만 급급했다. 학교생활에도 많은 제약이 뒤따랐고 하고 싶은 일들도 뒤로 제쳐놓아야만 했다. 어느덧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고 가정도 이루게 되었다. 벤자민 버튼은 날이 갈수록 노쇠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점점 생기있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변해만 갔다. 그러고 보니 사랑하는 여인은 나이만 먹어가는 매력없는 여자로 보이게 되었다. 또한 나이와 맞지 않는 자신의 어린 외모로 인해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된다. 자식에게서도 골칫거리가 되고 어디서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기가 되고만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황당할 뿐이지만 그 속에 날카로운 뜻을 숨기고 있다. 시간은 흐르는 대로 맡겨두는 것이 좋으며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걸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단편소설이다.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 외에도 10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다. 그 중 제일 재밌었던 이야기는 '낙타 엉덩이' 였는데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대강의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가장무도회에 낙타변장을 하고 나타난 두 남자의 폭소만발 사건이라는 것. 그렇다고 절대 일반적인 상상은 하지 마시라. 생각지 못한 기발한 얘기로 웃게 만들테니까 말이다.
단편 하나하나를 읽는데 불현듯 일본의 호시신이치라는 작가가 생각났다. 환상문학의 대가인 그 역시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유명하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호시신이치, 어딘가 닮은데가 있는 듯하다. 유머와 풍자로 한바탕 웃게 만들지만 마지막은 섬뜩하게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들이 그렇다.
또 다른 단편 '젤리빈' 과 '메이데이' 는 작가의 또 다른 수작인 '위대한 개츠비' 를 떠올리게 했다. 자본주의로 인해 변해가는 미국사회의 모습과 작가의 현실적인 모습이 잘 나타나 있었다.
원작소설을 읽었으니 이젠 영화로 감상해 볼 차례이다. 짧은 이야기 한 편이 긴 분량의 영화로 어떻게 다시 만들어졌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브래드피트의 70세 노인역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