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소리 - 일본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서은혜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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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한 기회로 나쯔메 소세키의 '마음' 이란 책을 접한 이후로 그의 모두 읽으리라는 다짐을 했었다. 냉소적이면서도 위트있는 필체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그 이후로 '도련님' , '그 후'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을 읽었는데 역시나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요즘 인기있는 현대 일본문학도 좋지만 근대의 소설들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새로 나온 창비의 세계문학을 접하게 되었다. 일본 근대소설의 액기스만 뽑아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내가 좋아하는 나쯔메 소세키의 작품은 물론이고 이름만 들어본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도 많이 실려있었다.
 

 

 

 

  쿠니끼다 돗뽀의 '대나무 쪽문'은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로 인해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남편은 비정하게도 곧바로 새로운 여자를 들인다. 내가 가장 많은 기대를 했던 나쯔메 소세키의 '이상한 소리' 는 병원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밤마다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항상 잠을 뒤척인다. 정체불명 소리의 근원지를 찾던 중 옆방에서 나던 소리란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옆방 환자는 암에 걸린 사람이었는데 매일 주인공의 방으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한사람은 소리로 인해 남을 짜증나게 하며 죽었고 또 한사람은 남을 부럽게 하며 병이 나은 것이다. 정말 짧은 이야기이지만 나쯔메 소세키만의 작품색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냉철하면서도 곳곳에 배치된 위트감이 바로 그렇다. 이 책의 좋은점 중 하나는 각각의 작품 말미에 '더 읽을거리' 를 실어놓았다는 것이다. 나쯔메 소세키의 다른 좋은 작품들을 읽어볼 수 있게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놓았다. 이렇게 해 놓으니 다른 작가들의 책들도 찾아볼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시가 나오야의 '오오쯔 준끼찌' 는 부모님에게 반항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미야모또 유리꼬의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는 궁핍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진 자의 위치에서 자신보다 못 가진이에게 무엇인가 베풀 것이 없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비쳐진다. 오오오까 쇼헤이의 '모닥불' 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엄마가 죽어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아이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결국에는 자신의 엄마가 죽은 그대로 따라서 죽기로 결심하고 만다. 전쟁과 그로 인한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져가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 외에도 타니자끼 준이치로의 '이단자의 슬픔' , 시마자끼 토오손의 '클 준비' , 또한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인 가와바따 야스나리의 '망원경과 전화' , '삽화' , '산다화' 등의 작품들이 실려있다.  

 

 

 

 

 

  작품들 대부분이 조금은 냉혹하고 비정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시대가 그러해서 그런지 격동기의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잘 나타나있는 것 같았다. 시대적 분위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와 어딘지 닮은 듯 하면서 또 다른 일본의 모습에 애잔한 마음도 느꼈다. 현재 일본소설은 감각적이고 톡톡 튄다는 느낌이 많은데 근대소설은 그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으레 근대 소설들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 책은 단편으로 되어 있어 조금은 쉽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렇게 읽다가 마음에 드는 작가라도 있다면 '더 읽을거리' 를 통해 다른 작품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더불어 다른 나라의 문학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일본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제일 먼저 읽었지만 창비세계문학전집의 다른 책들도 살펴보니 재밌는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이번 기회에 한권 한권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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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작은 마을 - 앙증맞고 소소한 공간,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
서순정 지음 / 살림Life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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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간다고 하면 주변에선 다들 물어온다. '여행지는 도쿄? 아니면 오사카?' 이렇듯 우리나라의 서울과 부산처럼 일본의 대표적인 도시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와는 정반대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일본을 소개해 놓았다. 그야말로 일본의 주요도시는 모두 가보았고 어딘가 새로운 곳이 없을까 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다. 도쿄와 오사카와는 또 다른 일본만의 독특한 색채를 느낄 수 있는 곳이 가득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일본의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온 느낌이다.
 

 

 

 

  책에 나온 여행지들을 여행해 보는 것은 나의 꿈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의 소도시를 배낭하나 훌쩍 매고 이리저리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어디는 꼭 가봐야 하고 이 레스토랑에서는 꼭 무엇을 먹어야만 한다는 가이드북도 필요없이 그저 발길닿는 대로 걷기만 해도 좋다. 그렇게 걷다보면 내 눈을 끄는 장소가 나타날 것이고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풍겨나는 식당도 만날 것이다. 아직 도시화를 거치지 않은 일본의 전통적인 마을은 그곳만의 문화도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여행지에서 만나는 소소한 기쁨들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소도시 여행이 아닐까 싶다.

 

 

 

 

  책속에 소개된 대부분의 마을들은 내가 모르는 곳이었다. 하지만 얼마전 여행했던 에노시마와 가마쿠라를 본 순간 오래전 친구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만화 '슬램덩크'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일본영화 속에서 가끔 볼 수 있는 한량짜리 전차를 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 전차를 탔을때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책을 읽고 나니 가보고 싶은 곳들이 더욱 더 늘어났다. 교토와 에도를 잇는 한적한 우편마을 쓰마고와 마고메, 대이작도의 풀등을 보는 듯했던 아마노하시다테, 간사이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키노사키 온센, 또한 그동안 너무나도 가고 싶어했던 홋카이도의 하코다테, 후라노, 비에이까지...오키나와는 거리상 멀기도 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기에 꿈만 꿔오던 곳이었는데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그동안 많은 여행서들을 접해봤지만 이 책은 조금 색다른 느낌이었다. 소박하면서 일상적인 여행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유명 관광지를 며칠만에 돌고 마는 그런 여행이 아닌, 여유롭고 편안한 여행을 꿈꾸게 해 줄 것이다. 그 중에 몇명은 실제로 배낭을 메고 일본의 작은 마을로 떠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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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다운 생활문화 일본어
오쿠무라 유지.임단비 지음 / 사람in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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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 째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왠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다. 중급을 조금 웃도는 실력이라고는 하지만 일본인과 얘기할때 간혹 말이 막힐때가 있다. 말하려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거나 일본식 표현이 아닌 한국식 표현을 쓸 때도 있다. 그럴때면 '아, 일본어 공부란 끝이 없구나' 하는 걸 느끼곤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초급이 아닌 경우엔 회화나 듣기를 많이 연습해 언어능력을 빨리 키워야한다. 초급엔 문법을 확실히 다진 후 그 단계를 뛰어넘었을땐 바로 회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초급보다는 중급단계인 사람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책 속에는 여러가지 상황에서의 단어와 적절한 회화표현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집안거리, 먹을거리, 자랑거리, 느낄거리, 큰일거리, 일거리, 길거리, 하늘거리, 놀거리, 1년 놀거리 이렇게 10가지 테마로 나뉘어 있다. 그에 맞는 표현들을 익히고 부록으로 딸린 엠피쓰리로 발음 공부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또한 딱딱한 글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함께 나와 있어 공부하는 것이 재밌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회화책인 만큼 책에 실린 표현들을 실제로 소리내어 일본인과 대화하는 것처럼 공부하면 그 효과는 배로 늘어날 것 같다. 고등학교때 수없이 들어왔던 영어 선생님 말씀이 기억이 난다.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문장전체를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말이다. 이 책에는 집안거리라는 테마 아래 청소, 잠, 목욕등 여러가지 소주제들이 나와있고 또 그에 맞는 표현들이 나와있다. 청소에 관련된 단어를 다 외운 뒤 그에 맞는 생활표현들을 익힌다면 이 책을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딱히 차례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자신이 마음에 드는 챕터부터 공부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학습서를 하나 사게 되면 처음에는 무조건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지만 앞부분 몇장만 보고 마는 경우가 일쑤다. 그래서 책의 앞부분만 새까맣고 뒷부분은 하얀 책들이 책꽂이에 몇권씩 꽂히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관심있는 부분부터 보게 되면 그럴 염려가 줄어들 것이다.

 

 

 

 

  책을 통해 일본어 학습뿐만 아니라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한국과 닮은 듯 다른 그곳의 생활문화와 놀거리문화 먹거리 문화를 간접경험한 느낌이랄까. 또한 얼마동안 손놓고 있던 일본어공부에 대한 불씨를 되살려주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문법과 회화가 어느 정도 되어 있다고 알게 모르게 자만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을 보니 내가 모르는 표현들은 물론이고 단어들도 꽤 많았다. 그래서 당장 노트를 옆에 펴들고 단어를 하나하나 써가며 외우기 시작했다. 책을 본 이상 한번 보고 흘려버리면 시간이 아까운 것이 학습서이니까 말이다. 책속의 많은 표현들을 빨리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하나하나 외우다보면 어느샌가 익숙해지고 일본인과 직접 대화할때 그 표현을 활용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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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박수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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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엔 스웨덴하면 조금 생소한 느낌이 들었었다. 북유럽에 위치한 나라이고 수도가 스톡홀름이란 걸 아는 정도? 그런데 몇년 전 외국에서 생활을 하던 중 스웨덴 친구를 알게 됐었다. 그 친구 덕분에 그곳의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보게 되고 이야기도 듣곤 했다. 그래서 멀게만 느껴졌었던 스웨덴이란 나라가 아주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었다. 언제 한번 자신의 나라에 놀러오라는 얘기에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긴 했지만 사정상 그러진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친구가 많이 그리워진다. 또 언젠간 언젠간 하고 미뤄두기만 했던 스웨덴 여행을 꼭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소설가 박수영이 2년이 넘는 시간을 스웨덴의 웁살라에 머물면서 써내려간 기록이다. 그녀는 그곳 웁살라 대학에서 국적도 외모도 모든 것이 다른 이들을 만나 서로의 생각과 진한 우정을 나눈다. 또한 스웨덴의 뛰어난 교육과 복지 시스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글쓴이가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역사 이야기가 간간이 나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따분하게 생각해서인지 조금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단번에 날려버릴 만한 것이 있었다. 바로 글과 함께 실린 그곳의 사진들이었다.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스웨덴의 모습들이 자꾸만 나를 부르는 듯 했다.

 이렇듯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관광명소를 한번씩 찍고 도는 여행기가 아닌 그곳의 문화를 얘기하고 몸소 체험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다른 여행기와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요즘 유행인건지 짤막짤막한 글들과 사진들로 꾸며진 천편일률적인 여행기가 아니라서 색다른 느낌이었다.

 

 

 

 

 

 

  책에 소개된 스웨덴의 그야말로 국민을 위한 제도들이 나를 놀랍게 했다. 우리나라는 해가 바뀔때마다 변하는 교육문제 때문에 시끌시끌한데 그와는 반대로 잘 갖춰진 스웨덴이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초등학교부터 심지어 대학 수업료까지 모두 무료라고 하니 부러울 수밖에... 하지만 그만큼 세금을 많이 걷어들인다고 하니 그나라 국민들에겐 좋은만큼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다. 유럽여행 중 가봤던 스위스도 대표적인 사회보장제도국가인데 물가가 엄청 셌던 기억이 난다.

 또한 옴부즈맨이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지 못하도록 해주는 기관이 있다고 한다. 차별이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나라란 것이 현실세계에서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외국인은 타국생활을 하면 으레 느끼는 차별문제로 고생할 때가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문제를 2년동안 단 한번도 느낀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과는 다른 이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스웨덴의 국가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읽다보니 백야현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게 됐다. 오후 두시가 되면 밤이 시작된다는 북유럽의 백야현상.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어서 그저 신비롭고 오묘하다는 생각만 든다. 낮이 짧고 밤이 길어 밝음보다는 어둠이 더욱 익숙한 나라, 그래서인지 어딘지 차갑고 쓸쓸해보이는 나라 스웨덴. 그런 생각이 드니 실제로 더욱 더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보고 싶은 친구도 오랜만에 만나고 스웨덴의 이곳저곳을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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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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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이는 왜 하필 먼 곳으로 떠나버린 것일까. 14살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선택한 비극적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책의 내용은 약간의 추리소설같은 형식을 띠고 있다. 자연스레 동생 천지의 죽음을 밝히려는 언니 만지의 모습을 따라가게 된다. 결국 숨겨진 진실이 하나둘 풀리면서 가슴아픈 상황과 맞닥뜨려진다. 어찌보면 요즘같은 세상에 진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하지만 이 책은 어느 신문기사나 뉴스에나 나올법한 일을 탄탄한 짜임새로  풀어나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강한 메세지도 안겨다준다.

 

 

 

 

  비록 아버지는 안 계셨지만 두 딸과 엄마는 단란한 가정이라 자부하며 살아왔다. 엄마에게 만지와 천지는 누구에게도 내어줄 수 없는 보물이었다. 그런 보물같은 아이를 어느 날 잃게 되었다. 평소와 달리 mp3를 사달라며 조르는 천지의 모습이 낯설다 생각했었다. 집안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러는 딸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럴 아이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유서한장 남겨놓지 않고 홀연히 떠나버린 아이의 죽음에 엄마는 괜스레 강한척을 한다. 평소와 똑같이 씩씩하고 강한 엄마의 모습을 만지에게 보여준다. 그런데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슬퍼보이는 것은 왜일까. 뒤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된다.

 말은 별로 없었지만 착한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이 떠나가버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동생이 죽은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화연과 미란, 미라 자매, 오대오 아저씨 등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천지의 발자취를 더듬어나간다. 그런데 자신이 느꼈던 천지의 모습과 그저 이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오대오 아저씨가 전해줬던 천지의 모습은 정 반대였다. 또한 천지가 자주 다녔던 도서관에서 대출목록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모두 우울증에 관한 도서를 빌려 읽었던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서도 동생의 아픔을 몰랐던 자신이 한심해지면서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도저히 우울증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이인데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미란과 미라의 얘기를 듣고는 화연을 주시하게 되었다.  

 

 

 

 

  책에서 가장 큰 틀을 차지하고 있는 건 천지와 화연과의 관계이다. 화연은 천지를 힘들게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 인물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그 죽음엔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화연의 존재가 가장 컸다. 언젠가부터 자장면이 싫어지고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은 다 화연때문이었다. 물론 압력을 가하는 쪽에서는 몰랐겠지만 말이다. 화연은 천지의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모든일을 떠올리며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천지가 야속하기도 했다. 자신은 절대 그녀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고, 그저 혼자 있는게 안쓰러워 같이 다녀줬는데 결국 돌아오는 것은 남들의 따가운 시선뿐. 하지만 그것은 가해자의 변명일 뿐이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아무렇지 않은 말 한마디라도 비수에 꽂혔을 테니까 말이다. 만약 화연이 천지의 마음을 조금만 알아줬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천지 아버지의 죽음을 마치 재미있다는 듯이 다른이들에게 떠벌리고, 마치 하녀부리듯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 또한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천지는 죽고 그녀가 전하는 다섯개의 메세지는 남겨졌다. 각자에게 돌아갈 붉은 털실 속 실패에 담겨진 글은 어떤 내용일까. 하나는 엄마에게, 다른 하나는 언니 만지에게, 또 미라, 화연,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하나는?  

 

 

 

 

 

  천지와 미소, 또 천지가 죽고 난 후 화연을 향한 학급 내 따돌림의 모습들은 눈살이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어느 한명을 약자로 몰아야지만 자신이 강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했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어이없는 죽음으로 만들어졌고... 소설 속 이야기는 실화도 있지만 대부분 상상의 세계라 다행일 때가 있다. 이런 이야기도 제발 허구일 뿐이었음 좋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한 글이라고 하니 더욱 씁쓸하다. 그러고보니 천지가 결코 남얘기인 것만은 아닌 것 같아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지금도 천지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테니 말이다. 간혹 뉴스나 신문기사에서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사건들이 종종 나온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어린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할까 하는 생각에 항상 마음이 아팠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소설로 읽게 되니 그 슬픔이 배가 되어 다가오는 것 같다. 이럴때면 좋은 소설 한권을 만나 기쁘기도 하지만 아픈 현실을 직시하게 되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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