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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잘 읽히고 적당한 무게감이 달콤하니 즐거웠으나, 끝무렵에서부턴 식상한 공식의 느낌이 너무 컸기에 다소 실망스러운 책. 그럼에도 더 알고 싶게 되는 작가다.
레나는 온전한 레나였으며, 우리는 온전한 우리였다. 그런 시간은이모가 시장에서 떨이로 사온 무른 산딸기나 살구로 만들어주던잼처럼 은은하고 달콤해서, 나는 너무 큰 행복은 옅은 슬픔과 닮았다는 걸 배웠다. - P40
어떤 기억은 짐작도 할수 없는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불시에 일격을 가한다. 하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 잊어버렸던 그 기억을 한낮의 공원 한복판에서 대체 왜 떠올리고 있는지, 나를 이토록 참담하게 만드는 감정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P117
카페에서 선자 이모의 일기를 읽을 때 나는 대체로 밖이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한번은 "이렇게는 계속 살 수가 없다. 이 괴로움 속에서도 나는 내 삶을 근사하게 살아내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나의 임무니까"라는 문장이 적힌 1977년 2월1일자의 일기를 읽다가 고개를 들고 밖을 보는데 너무나도 빠르게 돌아가는 창밖 풍경이 생경하게 느껴져 현기증이 일었다. 사원증을 목에 건 채 서둘러 걷는 사람들 손마다 테이크아웃 컵이 들려 있는 사람들. 뜨거운 햇살 때문에 행인들이 눈을 찡그린 채 걷고 있었다. 나무에 달린 잎들의 초록색이 어느 때보다 선명한 계절이었다. - P165
늘 동경했던 시인이 되지도 못했고, 뼈아픈 시행착오를수도 없이 겪었어. 하지만 내 삶을 돌아보며 더이상 후회하지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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