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호메로스 지음, 김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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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향을 꿈꾸는 인간에 대하여, 『오뒷세이아』를 읽고

영미 문학을 좋아하다 보면 『오뒷세이아』는 피할 수 없이 자주 만나게 된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오디세이아』, 허먼 멜빌의 『모비 딕』처럼 수많은 작가들이『오뒷세이아』를 모티프로 삼거나 그 구조와 주제를 새롭게 해석해 자신의 작품에 불러왔다. 그래서 늘 이 책을 읽어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방대한 분량과 익숙하지 않은 문체의 흐름 때문에 완독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의 인기에 힘입어 서점에 『오뒷세이아』와 관련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보니 나도 도전할 마음이 다시생겼다. 많은 판본 중에 어떤 책을 선택할까 한참을 망설이다,『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로서 김헌 교수가 번역했다는 점 하나를 믿고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오뒷세이아』의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이 번역은 단순히 영화 개봉에 맞춰 나온 책이 아니고 2004년부터 시작해 무려 22년에 걸쳐 완성한 작업이라고 한다. 영화 개봉에 맞춰 급하게 번역한 것은 아닐까 했던 나의 걱정을 씻은 듯이 없애주었다. 더불어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한 이 번역본을 영화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나게 된 것도 반가운 일이다.

김헌 교수는 원문의 어순과 행수를 가능한 한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한국어로 읽으면 다소 낯선 도치와 표현이 곳곳에 등장한다. 사실 나는 원문의 구조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리듬에 맞게 과감하게 풀어낸 번역을 좋아하는 편이라 처음에는 이 방식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낯섦이 조금씩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문장이 매끈하게 흘러가기보다 한 행 한 행 걸음을 옮기는 듯했고, 그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눈앞에 장면이 하나씩 떠올랐다. 아마 이것이 고대의 구술 서사시가 가진 생생함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했던 것은 역시 ‘횡격막’이다. 지혜, 분별력, 정신, 헤아림 등으로 옮길 수도 있는 말을 굳이 해부학적 기관인 ‘횡격막’으로 번역했다. 처음에는 왜 이해하기 쉬운 의역을 포기하고 직역을 해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까 의아했다. 그런데 ‘총명한 횡격막’, ‘강력한 횡격막’, ‘잘 참는 횡격막’ 등의 표현을 만나다 보니 오히려 고대인이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선명하게 느껴져 읽기 편한 현대어로 바꾸었다면 놓쳤을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의 횡격막도 책을 읽는 내내 몇 번이나 들썩였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무려 3천 년 전이다. 오래전 한 영웅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지금도 읽히고, 수많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영감을 주고, 영화로까지 다시 태어나는 이유는 왜일까. 아마도 우리 역시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곳을 지나고, 원했던 길과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때로는 너무 멀리 돌아와 내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조차 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 남아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집일 수도 있고, 사랑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한때의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어떤 삶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뒷세이아』의 귀향은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오뒷세우스가 찾아가는 이타케는 그가 살아온 시간과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결국 돌아간다는 것은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지나고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향해 살아왔는지를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수천 년 전의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지고 삶의 모습이 달라져도,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잃고, 헤매고, 다시 찾으며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타케가 있고, 그곳을 향해 각자의 항해를 이어간다. 『오뒷세이아』를 읽으며 내가 생각한 것은 거창한 영웅의 모험이 아니라 결국 그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긴 시간을 돌아서라도 끝내 찾아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오뒷세이아 #김헌교수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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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산책 - 국경을 넘은 강아지와의 삶, 그리고 인연들
최수향 지음 / 흐름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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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먼 산책』, 최수향

유네스코에서 활동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던 저자는 2008년 짐바브웨에서 강아지 디디를 만난다. 짐바브웨에서 시작된 이 인연은 파리와 독일을 거쳐 서울에 닿고, 다시 디디의 고향 짐바브웨로 돌아가 마침표를 찍는다.

저자가 디디와 함께한 16년 6개월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숫자로 헤아릴 수 있는 세월이 아닐 것이다. 한 생명과 매일을 나누며 살아온 시간, 그 안에 쌓인 수많은 장면과 감정을 글로 다시 꺼내놓는 일이 저자에게 얼마나 기쁘고 또 아픈 일이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 행간에 담긴 추억과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위해 여러 번 심호흡을 해야 했다.

반려견과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국경을 네 번이나 넘으며 디디와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 것이다. 나라를 옮길 때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도 디디였고, 여행이나 외출, 약속 하나를 정하는 일에도 자연스럽게 디디가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의 일부를 다른 생명에게 내어주는 일이니까. 매일 산책을 해야 하고, 마음대로 오래 집을 비울 수도 없으며, 때로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생긴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고 유난을 떤다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반려견과 살면서 그런 순간을 숱하게 경험했다. 그럼에도 깊고 까만 눈동자와 촉촉한 코를 바라보며 얻게 되는 위안은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무엇이든 포기할 용기를 준다.

저자는 디디와 이별한 후 그 유골을 디디의 고향 짐바브웨로 가져가 묻어준다. 나라면 조금이라도 가까이 반려견의 흔적을 곁에 두고 싶을 텐데, 저자는 디디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래전 디디와 함께했던 인연을 다시 만나는 장면은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디디의 삶이 끝난 자리에서, 디디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는 해피엔딩.

저자는 디디를 고향에 묻어준 뒤 아기 코끼리를 돌보는 단체를 후원하기로 결심한다. 『반려인의 하루』라는 책에서 정우열 작가는 "자신의 개를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결국 불행해졌다. 이건 어딘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적었다. 정말로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한 후에 결국 불행해졌다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사랑의 끝에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한 존재에게 주었던 사랑을 다른 존재에게 다시 건네는 것. 그것이야말로 떠나간 존재에 대한 사랑을 슬픔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또 다른 생명을 향해 흘려보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디디는 흙이 되어 땅으로 돌아갔지만, 디디와 저자의 산책은 끝나지 않는다. 함께 걸었던 시간은 저자의 기억에 남고, 디디에게 주었던 사랑은 또 다른 생명을 향해 간다. 아주 먼 산책이란 한 생명과 함께 걸었던 시간이 끝난 뒤에도 그 사랑을 품고 다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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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먼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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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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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썸머 에디션)
이디스 워튼 지음, 민지현 옮김 / 머묾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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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부신 햇빛과 짙어진 초록, 아직 삶의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믿는 계절, 여름. 그러나 이디스 워튼의 『여름』에서 여름은 마냥 찬란한 계절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 소녀가 처음으로 욕망을 마주하고, 자신이 꿈꾸던 세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열여덟 살의 채리티 로열은 작은 마을 노스도머에서 살아간다. 어린 시절 ‘산’에서 내려와 변호사 로열의 집에 맡겨진 그녀는, 보호받는 존재이면서도 완전히 가족이라 할 수 없는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앞으로 어디로 갈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삶. 채리티가 답답해하는 것은 작은 마을의 단조로움만이 아니라, 그녀가 넘볼 수 없는 이미 정해진 계층과 성별의 경계이기도 하다.

그런 채리티 앞에 도시에서 온 젊은 건축가 루시어스 하니가 나타난다. 하니는 단순히 사랑의 대상만은 아니다. 그는 채리티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세계, 세련됨과 자유와 가능성의 세계를 비추는 창처럼 다가온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그가 열어 보인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 겹쳐 있다. 그래서 채리티의 사랑은 한 남자를 향한 감정인 동시에, 지금의 자신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워튼은 채리티를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피해자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자존심이 있고, 때로는 무례할 만큼 날카로운 마음도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성급하게 판단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채리티는 더 현실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지만, 정작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사회적 자원은 거의 없는 사람. 욕망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삶으로 만들 수는 없는 처지가 이 소설의 가장 아픈 지점이다.

여름은 끝난다. 그러나 어떤 여름은 끝난 뒤에도 한 사람 안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다. 『여름』은 첫사랑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한 번 다른 세계를 본 사람이 이전의 세계에 그대로 머물 수 없게 되는 이야기다. 찬란했던 계절이 남긴 것은 행복한 기억만이 아니라, 삶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 뒤의 아픔일지도 모른다.

채리티는 꿈꾸었던 삶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다른 세계를 바라본 사람은 이전과 같은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여름은 그녀에게 사랑의 기억으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삶을 원했고 어떤 현실을 감당해야 하는지 처음 깨닫게 한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처럼 여름이 한창인 때 읽으면 이 작품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뜨거운 햇빛 아래 채리티가 마주했던 욕망과 사랑, 그리고 그 여름을 지나온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지나온 여름과 앞으로 지나게 될 여름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여름_이디스워튼 #머묾 #여름에읽기좋은책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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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이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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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순간에 변한다. 평범한 순간에.

장강명 소설 『서성이다』를 읽고, 조앤 디디온의 『상실』속 이 두 문장이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던 하루가 한순간에 낯선 세계가 되어버리는 일.

『서성이다』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일상이 무너진 남자, 안시찬의 사흘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우스운 일이 생기면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웃던 아내는 평균 생존 기간이 12~14개월에 불과하다는, 가장 악성도가 높은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는다. 고작 사흘이라는 시간이지만 그에게는 병원과 집, 현실과 두려움 사이를 오가는 길고 막막한 시간이다.

처음에는 이 책을 그저 소설로 읽었다. 장강명 작가의 글을 챙겨 읽기는 하지만 그의 SNS까지 찾아보지는 않았기에, 아내의 실제 투병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작가의 말을 읽는 순간 한동안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소설이라는 허구의 틀 안에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밀어 넣고, 다시 그것을 안시찬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빚어냈다는 사실이 뒤늦게 다가왔다. 내가 읽는 내내 느꼈던 무기력함, 실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공포와 불안이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공감은 단순히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이 감당했던 시간을 마주하는 경험으로 바뀌었다.

이 이야기가 단지 안시찬의 사흘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 나의 모습 그대로를 옮겨 적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세 번 새벽 수영을 할 정도로 건강만큼은 자신 있던 어머니가 봄 기운 가득한 4월에 객혈을 하며 응급실로 향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암 진단을 받는다. 그때의 나는 안시찬처럼 현재에도 미래에도 발을 들이지 못한 채 과거를 서성거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잔기침이 오래가는 것을 그저 감기라고 넘긴 시간 때문일까. 건강검진만 믿으며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마음 때문일까. 가족력이 없으니 암은 우리를 비켜갈 거라고 생각했던 오만함 때문일까.'

돌이켜보면 우리는 언제나 뒤늦게 질문을 던진다. 그때 조금만 달랐더라면, 조금만 빨리 알았더라면.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결국 남겨진 사람은 답을 찾기보다, 답을 알 수 없는 순간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들을 진정으로 묶어주는 것은 고통이다.”

장강명 작가가 책에 남긴 문장이다. 고통은 사람을 한없이 외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고통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고 연결된다. 서로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곁에 머물러 함께 서성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인지도 모르겠다.


#서성이다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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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pin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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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들짐승처럼 살기로 했다 - 불안과 비교에 휘둘리지 않는 삶의 태도
한그루(뉴욕털게) 지음 / 더퀘스트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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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성공을 향해 달리고 특별한 인생을 꿈꾸는 시대에 잠깐 멈춰보라고,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인생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깨달은 들짐승처럼 살기로 했다』의 저자 한그루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조금 여유를 가지고 느슨해져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이 책은 무턱대고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왜 그렇게 애쓰며 살아왔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매달리고 있는지를 집요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위로를 받으면서도 몇 번이나 멈춰 서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괜찮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나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편안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조금 의외였다.

특히 ‘보통의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평범함을 얼마나 쉽게 ‘부족함’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남들만큼, 남들처럼”이라는 기준은 생각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더 많은 돈, 더 나은 모습. 끊임없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기준 속에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조차 실패처럼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아도 자기 몫의 삶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사람의 하루가 어찌 하찮을 수 있을까. 보통의 삶을 무조건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지 않은 존재도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그동안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무언가를 조금 걷어내는 듯했다.

‘최적이라는 환상’에 관한 이야기는 더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선택의 순간마다 무엇이 더 나은 길인지, 어떤 선택이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를 오래 고민해왔다. 그런데 A를 선택할지 B를 선택할지 그렇게까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어느 쪽도 압도적으로 옳은 답이 아니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고, 선택하기 전에는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알 수 없는 정답을 찾아 헤매느라 정작 내가 선택한 길을 살아가는 데 써야 할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했다. 최선의 선택을 찾는 것보다, 이미 선택한 길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 앞에서 한동안 생각이 많아졌다. 돌고 돌아 제자리인 것 같았던 이유가 어쩌면 완벽한 답을 찾으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이야기가 유난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던 것은, 저자 역시 그 길을 직접 헤매어본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소위 먹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책상 앞에서 삶을 분석해 내린 글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에 담아 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성공과 성취를 향해 달리던 사람이 오히려 그 욕망 때문에 멈춰버린 시간을 지나, 그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오래 들여다보고 건져 올린 소중한 이야기들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당신도 그랬구나.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나고 나니 이런 길도 보이는구나.” 그런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결국 이 책은 ‘문제가 사라지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가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도 어떻게 괜찮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관한 책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특별하지 않아도 되고,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할 필요도 없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삶을 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 책을 덮으며 그 단순한 사실을 너무 어렵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는 조금 덜 애쓰고, 조금 덜 비교하며, 내 삶의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짊어져 보려 한다.


#깨달은들짐승처럼살기로했다 #뉴욕털게 #더퀘스트 #책리뷰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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