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떻게 씁니까 - 글쓰기로 자기 세계를 만든 열두 작가들
강원국 지음 / 디플롯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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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쓰기에 대한 갈망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도 글쓰기에 관한 책은 새로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챙겨 읽는 편이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작가의 신간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제목을 보면서 잘 쓰는 비결을 알려주는 책일 거라 짐작했다. 작가들은 언제 글을 쓰고, 어디에서 영감을 얻고, 글이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나니 ‘어떻게 쓰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글을 잘 쓰기 위한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강원국은 소설가, 시인, 기자, 여행작가, PD 등 서로 다른 열두 명의 쓰는 사람을 만난다. 글을 쓰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고 지나온 길도 달랐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글보다 그들이 살아온 인생이 먼저 보였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 어떤 일을 겪고, 무엇을 오래 바라보고 고민했는지가 결국 그들이 쓰는 글로 이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조정래 작가의 이야기는 나에게 감동과 감탄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방대한 작품을 써낸 작가가 타고난 자질은 40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 60퍼센트는 노력으로 채웠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토록 긴 시간과 엄청난 분량을 감당해낸 작가가 자신의 글을 이야기하며 재능보다 노력에 대해 거듭 말하는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왔는지 되묻게 된다. 결국 그의 필력 뒤에는 오랜 시간 이어온 노력과 꾸준함이 있었다.

조정래 작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온 열두 명의 작가와 강원국 작가까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왔지만 자기 일을 대하는 태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 자기 일을 이어왔으며, 자신의 삶에도 성실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결국 그들이 쓰는 글에는 그 노력의 시간과 성실한 태도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인터뷰를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글쓰기가 귀찮을 때면 내가 작가도 아닌데 나 좋을 만큼만 ‘적당히’, ‘대충’ 쓰면 된다고 변명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태도가 꼭 글쓰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에서도 나는 힘든 일이나 하기 싫은 일을 ‘적당히’, ‘대충’ 넘기며 살아온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글을 쓰는 자세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이 남았다. 잘 쓰려고 애쓰기 전에 내 삶부터 조금 더 성실하게 살아보고 싶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언젠가는 내가 쓰는 글에도 자연스럽게 배어 나왔으면 좋겠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라는 질문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어떻게 쓰느냐’는 결국 ‘어떻게 살아가느냐’와 닿아 있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좋은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만이 아니라 좋은 삶을 살아내는 태도에 관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글을 잘 쓰려고 애쓰기보다, 내 삶을 ‘적당히’, ‘대충’ 살아내지 않고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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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어떻게씁니까 #강원국 #디플롯 #올해의책 #추천도서

(덧: 보통 3~4권의 책을 병렬 독서하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병렬 독서가 되지 않았다. 강원국 작가에게 흠뻑 빠져 있던 일주일이 너무나 행복했다. 아직 2026년이 좀 남아 있지만, 나는 이미 ‘올해의 책’을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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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고양이 같은 잠이 필요하다 - 김남희 잡문집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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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고양이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법

김남희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걷고 여행하며 만난 사람과 풍경을 기록해온 작가의 글에는 늘 자유롭지만 고독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는 힘이 있다. 이번 책 『우리에게도 고양이 같은 잠이 필요하다』에도 자신만의 보폭으로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무 해 넘게 써온 일기와 여행지에서의 기록,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 계절과 풍경, 산책길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 책을 읽다가 적어둔 단상까지 이야기는 일정한 방향 없이 자유롭게 흘러간다. 그런데 그 무질서함이 오히려 좋았다. 낮잠과 꿈의 경계에서 느릿하게 떠오르는 생각처럼, 문장들은 특별한 방향 없이 나른하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괜찮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그곳에서 잠시 머물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책 곳곳에 등장하는 고양이 사진이 글과 참 잘 어울린다. 작가가 세계 곳곳에서 직접 만난 고양이들은 태평하고,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런 고양이를 바라보며 작가는 애써 세워둔 계획과 목표를 잠시 내려놓는다. 꼭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되고, 조금 게을러도 되고,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도 괜찮다는 생각. 고양이 같은 잠이란 결국 그렇게 아무것도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지 않을까.

특히 좋았던 것은 삶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이다. 가난하고 외롭더라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감각,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도 결국 자기 삶의 보폭을 잃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 문장 곳곳에서 드러난다. 자유롭고 고독하지만 그 고독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을 섬세하게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단단하게 서 있는 사람. 내가 그동안 김남희 작가의 책에서 좋아했던 모습이 이번 책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밀도 높은 글을 따라가느라 지친 날에는 고양이 사진 한 장 보고, 문장 몇 개 읽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책장을 넘겨도 좋을 책.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속도도 책을 닮아 조금 느려진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나도 수첩 하나 챙겨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특별한 곳이 아니어도 좋다. 오늘의 햇살과 바람, 지나가는 사람,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쯤 적어두고 싶어진다. 그렇게 잠시 걸음을 늦추고 내 주변을 바라보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필요한 고양이 같은 잠일 것이다.

#우리에게도고양이같은잠이필요하다 #김남희 #수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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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년에게 - 노인이 되기 전에 미리 알아야 할 노년의 자세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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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리막길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소노 아야코의『나의 노년에게』를 읽기 전까지 나는 노후를 조금은 수동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누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보험을 준비하고 경제적인 여유를 마련하는 것도 결국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소노 아야코는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오히려 물음표를 던진다. 기대하지 말고, 의지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라고 말한다. 꽤 단호하고 때로는 매섭기까지 한 이야기인데, 이상하게도 그 말에서 노년을 대하는 다른 태도를 배우게 되었다.

특히 노년의 자립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노후 준비가 조금 낡은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나이가 들어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했는데, 이 책은 그보다 먼저 어떻게 하면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묻는다. 경제적인 자립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이고, 집안일도 가능한 한 직접 하고, 무언가 할 일을 찾아 생산적인 삶을 이어가는 것. 결국 자립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라기보다, 도움을 받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내는 태도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권리’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지금까지 누려온 것들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하기보다, 할 수 없는 것은 조금씩 내려놓고 내 형편에 맞게 사는 것. 예전의 나를 기준으로 지금의 나를 재단하지 않는 것.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언가를 잃어가는 일인 동시에, 불필요한 욕심을 덜어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부족하고 조금 불편해도 그것을 견딜 수 있다면 삶은 오히려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 역시 처음에는 다소 불편하게 들렸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여기서 말하는 일은 반드시 직업이나 돈벌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한다는 것, 하루의 어느 부분에서든 내 역할을 갖는다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남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반드시 편안한 삶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몸의 변화와 질병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 아픈 곳이 생기고, 예전에는 쉽게 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순간이 오면 무엇을 잃었는지부터 생각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을 조금 바꿔보게 되었다.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는 사실보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는 것. 좋은 일만 삶이라고 여기지 않고 질병과 상실, 불편함까지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나이 듦을 견디는 힘일 것이다.

인생은 어느 시점부터 내리막길이 된다고 생각했다. 올라갈 때는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지만, 내려갈 때는 하나씩 잃어가는 일만 남을 거라는 생각에 내려가는 시간이 조금 두려웠다. 그런데 『나의 노년에게』를 읽고 나니 속도를 늦추고,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 모자란 채로 살아가는 내리막길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을 거라는 깨달음이 왔다.

소노 아야코의『나의 노년에게』는 노년이 멀게 느껴지는 나에게도, 지금부터 어떤 사람으로 늙어갈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소노 아야코의 말은 다정한 위로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나의 노년으로 가는 길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을 품게 되었다.


#나의노년에게 #소노아야코 #책읽는고양이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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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
신도 후유키 지음, 장하나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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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어서인지, 반려견과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이야기는 아무래도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읽게 된다. 책 속 미나미노와 파스텔의 이야기가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언젠가 내가 마주하게 될 시간이기도 해서다.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는 존재와 하루를 나누는 일. 그리고 그 평범한 시간이 언젠가는 끝날 수 있다는 사실까지.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마음이 철렁했고, 눈물을 참아야 했다.

그런 마음으로 따라간 미나미노와 파스텔의 시간은, 한 사람의 일상이 어떻게 한 존재를 중심으로 조금씩 달라져 가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우연히 맡게 된 강아지였지만,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쌓이면서 파스텔은 어느새 미나미노의 하루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고, 기다리고, 돌보는 일이 특별한 결심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 변화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매일 반복되는 밥시간과 산책, 문을 열었을 때 반겨주는 모습, 소파 한쪽에 웅크리고 잠든 모습.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던 순간들이 어느 날 문득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파스텔이 떠난 뒤, 미나미노에게 이어지는 시간이 더 깊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사랑하는 존재가 떠난 순간보다 그다음 날부터 이어지는 삶이 더 길기 때문이다. 함께 걷던 길도 그대로이고, 집도 그대로이고, 하루의 시간도 똑같이 흘러가는데 그 안에 있어야 할 존재만 사라져 있다. 익숙했던 공간이 낯설어지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이유일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언젠가 혼자 남겨질 날까지 감당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보다 짧은 생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마음을 내어준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의 밥을 챙기고, 산책을 나가고, 이름을 부른다. 그래서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다.

파스텔이 떠난 뒤 미나미노에게 남은 것은 빈자리만은 아니다. 함께 보낸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그의 삶 어딘가에 남아 계속 그를 움직인다. 다시 웃을 수 있게 되는 것 역시 떠난 존재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을 품고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일 것이다.

읽는 동안에는 참 많이 울었는데, 책을 덮고 나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했다. 이별이 너무 슬퍼서 사랑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함께했던 시간은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곁에서 밥을 먹고 잠들고 나를 바라보는 존재를 오늘은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어진다. 별것 아닌 듯 흘려보내는 하루가 사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하루라는 것을, 우리는 대개 지나간 뒤에야 알게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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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다리를건넌강아지 #신도후유키 #문예춘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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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쓸모없다 - 사노 요코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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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는 쓸모없다. 그래서 좋다.

사노 요코는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자마자, 평소 갖고 싶었던 재규어를 구입한다. 이 고급 외제차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변의 말에 그녀는 “억울하면 너도 사면 되잖아. 빨리 죽으면 살 수 있다고!”라며 무심한 듯 시크하게 답한다. 그녀의 글에는 이런 까칠함과 쿨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 『친구는 쓸모없다』 역시 냉소적이고 까칠하지만, 사람을 끝내 미워하지 못하는 저자의 다정함이 무뚝뚝한 말투 뒤에 숨어 있다.

특히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를 떠올리는 방식이 사노 요코답다. 괴롭힘을 당한 일을 원망하기보다 그 아이가 그저 에너지가 넘쳤던 것 같다고 말하고, 전쟁이라는 힘든 시대를 함께 지나왔다는 사실까지 생각한다. 나라면 상처로 남았을 일을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정작 그 아이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마음이라니.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면만으로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까지도 그 사람의 한 부분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무뚝뚝하고 냉소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쉽게 미워하지 않는 넓은 마음이 있다. 내가 사노 요코의 글을 좋아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데 있을 것이다.

사노 요코와 다니카와 슌타로의 대화도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 두 사람은 친구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쪽은 친구가 꼭 필요하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친구가 많지 않아도 별 불편 없이 살아왔다고 한다. 서로의 말을 받아치다가도 어느 순간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가 샌다. 그런데 그 빗나간 대화가 오히려 좋았다. 친구와의 대화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다가 별것 아닌 이야기에 한참 웃고, 어제 먹은 음식이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건너뛰기도 한다. 목적 없이 이어지는 그 시간이야말로 친구와 나누는 시간의 본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이 『친구는 쓸모없다』인데도 나는 처음부터 ‘쓸모’라는 말을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제목이 말하는 묘한 역설을 알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정말 쓸모없는 것투성이였다. 별것 아닌 일에 웃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바로 그 시간들이 내 기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당시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와 놀이, 친구들과 나눈 취향과 농담이 조금씩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함께 보낸 시간은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꼭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야만 친구인 것도 아닐 것이다. 곁에서 함께 웃고 떠드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문득 떠올릴 때마다 은은하게 빛나는 친구도 있다. 서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런 존재로 남아 있다는 것 역시 우정의 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정말 쓸모없는 것이 있을까 싶다. 당장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어디에 쓰일지 알 수 없었던 시간들이 오히려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때의 쓸모없는 시간들이 사실은 하나도 쓸모없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나온 시간도, 그 시간 속의 사람들도 함부로 쓸모없다고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친구는 쓸모없다. 그래서 좋다.

아무런 목적 없이 함께 낭비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의 지난날이 이토록 풍성해졌으니 말이다. 어쩌면 삶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쓸모 있는 관계가 아니라, 쓸모없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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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쓸모없다 #사노요코 #rhk북클럽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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