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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사실 출판사에서 원하는 리뷰는 아닐 텐데, 언급을 요청한 작품보다 내 취향은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나’의 이야기 <지금의 지금>, DNA를 통해 체외수정이 가능한 세상을 그린 <디어 브래들리 쿠퍼>와 자신의 기억을 담아 게임을 구현해 내는 <신입사원>,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이야기 <기억을 빚는 사람들>이었고, 이 작품들이 더 좋았다.
연애 평점이 도입된 사회를 그린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는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하는 ‘나’가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상상하게 했고, <버전들>의 대행 로봇들이 엉뚱한 대답이지만, 서로 소통하려고 애쓰고, 대답을 고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만남으로 인간들이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게 아이러니한데, 두 사람이 만났다고 한들 버전들처럼 소통을 위해 애썼을까 싶기도 하다.
<역노화>는 치매 걸린 노인을 새로운 발상으로 묘사한 게 아닌가 싶었다. 어떻게 보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생각나기도 한다. 아버지가 역노화로 점점 젊어지고, 끝내 죽음을 맞는 순간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이 <포털>에 등장하는 문장 중 하나이기도 해서, 아마 이 작품을 가장 중요하게 본 것 같다. 애도할 일이 많아질 만큼 많은 죽음이 발생하고, 슬픔은 단단한 응어리(P.249)가 되었다. 폭력적인 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포털이 나타난다. 그 포털 안에서 그리운 대상을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고, 포털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털 안의 알 수 없는 세계로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이 포털이 다른 차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구멍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포털’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슬픔일 수도, 미움일 수도, 분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기억’을 소재로 만든 단편 <신입사원>에 잘 담겨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P.312), "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P.312)." 대체로 조금 시점을 따라가기 벅차거나 그로테스크한 작품도 있어서 완전한 취향일 순 없었던 소설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