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냉소적이고 과감한 문체로 회사 생활의 치졸함을 비꼬는 <영생불사연구소>, 조금은 서늘한 주제였던 <여행의 끝>, <아주 보통의 결혼>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면, 나머지 작품은 흥미 위주의 서사에서 그치지 않고 애도라는 주제를 담아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고장난 진단 설문용 로봇을 애도하는 자율주행 로봇이 등장하는 <너의 유토피아>, 5305호에 사는 노인을 위한 마음을 담은 엘리베이터의 이야기 <One More Kiss, Dear>,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Maria, Gratia Plena>는 상실에 대한 애도라는 공통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타인의 아픔을 공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타인의 행복만을 바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그녀를 만나다>는 저자 자신을 이야기 속에 투영한 것처럼 보였다. 다루고 있는 소재도 그렇지만, 작가의 말에도 쓰여 있다시피 그는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서 투쟁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고 느껴졌는데 바로 마지막에 배치된 <씨앗>이라는 작품 때문이었다. 결말에 이른 문장에 담긴 메시지가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건 저자가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와 닿아 있는 듯했다. 작품 속 나무 인간들이 타인을 위한 씨앗을 계속 땅에 심는 것처럼, 우리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저자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 아닐까. 그 씨앗 중 하나는 살아남아서 새로운 시작을 열어주리라 믿는 것 아닐까 싶은, 그런 세상이 곧 도래하리라는 것을 기다리는 작가의 마음이 이 작품 속에 투영된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너와, 나의 유토피아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