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웬디 워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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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 제니는 파티장에서 술에 취한 채 숲속으로 뛰어들었다가 강간범에 의해 잔인하게 성폭행을 당한다.  이후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그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관련 기억을 지우는 망각요법을 실시하고, 강간의 기억을 잃은 제니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 싶으나, 알 수 없는 분노와 혼돈 속에서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을 기도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는데, 그 정확한 기억이 잊혀진 채 그저 알 수 없는 불안, 두려움, 혼란만 느끼는 범죄의 피해자들에게는 망각만이 다가 아니고, 오히려 그 기억에서 유발되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겪는 가운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무뎌지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 정신의학자 앨런의 도움으로 망각된 기억을 복원하기로 한다. 

 

소설은 앨런을 화자로 펼쳐진다.  초반부에는 정신의학적 설명이 좀 지루했는데, 중반 이후 사건의 관계자가 확대되고 사건의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는 분위기가 되면서 흥미로워졌다.  계속해서 반전에 반전을 이루고, 화자에 의해 사건의 앞뒤를 오가며 설명하고 드러내는 사건의 진실은 의외의 결말이었다.  그러나 앨런의 정신의학적 요법에 의해 자신의 진짜 기억 속에 교묘히 심어진 가짜 기억이 뒤섞이는 부분은 다소 기괴하고 불쾌했다.  고도로 훈련되고 능수능란한 정신의학자라면 기술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일 것 같아, 마치 그들에게 얼마든지 기억을 조정당하고 삽입된 기억을 사실로 믿고 반응할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함을 느꼈던 것이다.  단지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뿐 만 아니라 너의 기억을 심어줄게,도 된다니, 의도된 악의 속에 기억을 조종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만 해도 싫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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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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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읽어보는 아르헨티나 작가의 작품.

 

성공한 남자 테드는 뇌종양에 걸린 것을 알고 자살하기로 한다.  아내와 두 딸을 여행 보낸 뒤 홀로 집에 남아 서재에서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뜻하지 않는 방문객이 초인종을 울려대며 자살을 만류한다.  문 밖에 서있는 방문객은 테드의 계획을 알고 있다며 자신의 제안을 들어달라 한다.  방문객이 제안한 것은, 어차피 죽을 거, 인간 쓰레기인 범죄자를 죽이고 또다른 자살희망자를 죽여주면, 자신들의 조직에서 사람을 보내 테드를 죽여줄 것이라는 것.  자살보다는 피살되는 것이 남은 가족에게 상처가 덜 될 것이고, 죽기 전에 좋은일(?)을 하고 죽으라는 제안.  그 제안을 받아들인 테드는 두 번의 살인을 저지르고 끝맺으려는 순간, 뭔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후 벌어지는 그의 기억의 왜곡과 변주는 무엇이 사실이고 어디까지나 환각인 것인지를 알 수 없게 해버린다.  정신과 의사 로라 힐과 함께 찾아가는 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테드가 깨닫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지...

 

꽤나 난해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환상문학인지 정신병을 앓는 주인공의 환상을 옮겨놓은 건지, 우왕좌왕 알 수 없고 비논리적인 전개에 그만 읽을까 싶기도 했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조금씩 작품의 구조가 보이고 논리가 들어오고 가속이 붙기 시작하면서, 테드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전개에 빠져들게 된다.  그가 현재 겪는 기억의 왜곡이 그의 과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아내려 노력하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범죄가 무엇인지를 파악해나가는 게 색다르며 흥미로웠다.  결말 부분이 조금은 진부하다고 할 수도 있고 살짝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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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바빌론 호텔
아놀드 베넷 지음, 최윤영 옮김 / 초록달(오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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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혹시 무슨 연관이 있나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책.  그러나 전혀 관련 없고, 예상 외로 20세기 초 런던을 무대로 벌어지는 한편의 활극이었다...


런던에 위치한 그랜드 바빌론 호텔에는 타 호텔과는 다른 고유의 분위기와 멋, 평판이 있다.  왕족과 귀족들이 많이 찾는 그곳을, 어느날 미국의 대부호 테오도르 렉솔이 그의 딸 넬라와 함께 휴가차 묵었다가, 사소한 오기로 그 호텔을 사버리기까지 하게 된다.  이후 발생하는 의문의 사건과 인물들.  호텔 운영 경험이 없지만 타고난 경영 감각을 갖춘 렉솔은 호텔의 유명 지배인인 줄스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목격하고 그를 해고한다.  이후 접수를 맡던 여직원도 갑자기 사라지고, 넬라의 친구가 호텔로 찾아오고, 그는 유럽의 포센 왕국의 왕자를 모시고 있는 시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후 찾아온 알버트 왕자와 금융업자 레위 등을 통해 포센 왕가의 비밀을 알게 된 렉솔과 넬라 앞에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이 두 부녀는 제각기 사건과 범인을 쫓아 위험한 모험에 나선다.


이를 통해, 시기적으로 어수선한 유럽의 정세와 아직 남아있는 왕정제, 그리고 신흥 강대국 미국의 민주주의적 사고가 충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청소년용(!) 모험극을 읽는 느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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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사냥 나비사냥 1
박영광 지음 / 팬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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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팀 형사가 쓴 범죄추리소설.  현직형사가, 그것도 강력계를 거쳤던 형사가 현장의 생생한 경험과 정보를 토대로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분야의 내용을 소설로 풀어낸다는데 혹해서 읽게 된 작품이었다.  결과는... 일단 엄청난 하드고어이다...ㅠㅜ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  작품 소개에서 얼핏 그렇게 보여서 망설였었는데, 한국형 스릴러라는 홍보문구에 절대 공감하며 한국 범죄소설 중에서도 뛰어나다는 서평을 읽고 조심스레 읽어보기로 했다.  뭣보다 '하태석' 형사라는 캐릭터를 창조해내서 한국의 경찰관을 주인공으로 시리즈물을 엮어나간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과연 그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을지, 그로 인해 그가 나오는 시리즈물을 탐독하게 될 지가 궁금했다.  거기에, 형사의 글솜씨가 어떨지에 대한 호기심도 한 몫을 했다. 

 

감이 뛰어나고 끈기와 집념이 강한 우직한 형사 하태석.  늘 의욕과 행동이 앞서고 몸을 사리지 않고 돌진하는 스타일 탓에 남들보다 뛰어난 수사 실적을 거둠에도 불구하고 과잉수사, 경찰의 폭력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고향으로 좌천된다.  소송에 걸려 재산도 날리도 이혼도 당하고 명예도 잃은 채 영광으로 돌아온 그를, 주변 사람들은 피하고 냉대한다.  속을 끓이며 자신을 탓할 뿐 외로운 처지의 그를 동정하고 돕는 것은 동생 미숙과 친구 근식 뿐이다. 

 

아무런 사건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서울로 돌아가라는 동료 경찰들의 냉대와 조소 속에서, 몇 건의 실종신고를 접한 그는 이것이 한 남자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홀로 수사에 나선다.  그러나 동료들의 무시와 비협조 속에서, 자신이 유력 용의자로 잡았던 박창기는 유유히 빠져나가고 괴로움에 과음을 한 그날 밤, 동생 미숙이 실종된다.  이후 미친 듯이 동생을 찾아나서는 하태석은 박창기를 다시금 주목하게 되고, 필사적으로 그의 뒤를 쫓아 사투를 벌인다.

 

흔한 영웅 캐릭터도 아니고 평범한 그러나 남보다 뛰어난 집념과 현장경험, 촉으로 무장된 열혈형사 하태석은 홀로 극악무도한 악마들에 맞서 싸운다.  그를 믿어주고 지원해주는 동료가 없는 탓에 나홀로 좌충우돌 동분서주할 수 밖에 없는 그는, 현실의 경찰이 겪는 한계와 실상도 그대로 보여준다.  아무리 지방소도시의 경찰들이라 해도 너무 나이브하고 태만해 보이는 건 그 자체로 사실일 수 있겠고, 작가가 그린 그 끔찍한 범행의 모습 또한 어디선가 존재하는 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지고 우울해지는 부정적인 요소도 있다.  실제로 작가는 이 작품을 지존파의 범행을 차용해서 집필했다고 한다.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엉뚱하게 화풀이하고 해소하려는 뒤틀린 범죄자의 심리가 비단 허구만은 아니라는 현실에 끔찍함이 배가되는 기분이다.  새삼 잔혹한 범죄에 희생됐던 모든 피해자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이 들었다.  나비를 증오하며 사냥에 나선 나방의 존재들을 긴박감 있게 그려낸 작가의 필력은 상당했지만, 너무나 하드고어함에 다음 작품을 읽을까 말까 싶긴 하다.  그치만 작품 자체만으로는 (솔직히 형사가 썼다고 생각하기엔) 꽤 재미있고 짜임새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재주있는 사람 참 많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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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맨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3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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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키는 인생이 잘 안 풀리자 동생 다케하루와 함께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게 되고, 조직의 배후에 있는 듯한 아와노를 알게 된다.  정체가 불분명한 그는 범죄를 설계해서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계획을 짜는 역할을 한다.  어느날 보이스피싱 사무실로 걸려온 그의 전화는 'rest in piece"라는 인삿말을 남긴 채 끊어지고, 곧이어 경찰이 들이닥친다.  그 와중에 용케 자리를 피했다가 경찰의 눈을 피해 탈출하게 된 도모키와 다케하루는 아와노로부터 새로운 범죄에 가담할 것을 권유받는다.  늘 정당한 사업을 할 꿈을 꾸나 자금이 없다는 이유로 좌절하는 도모키는 아와노의 정교한 계획을 들은 뒤, 그가 제안한 이른바 '유괴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중견기업의 젊은 사장과 그의 어린 아들을 각각 납치하여 며칠 후 사장만 풀어주고 그로부터 아들의 몸값을 받아낼 계획을 짜는 아와노 일당.  그리고 유괴 사건을 해결하고자 투입된 가나가와 현경의 마키시마 후미히코 경사와 경찰들.  그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젊은 사장.  이 세 축을 중심으로 사건은 숨가쁘게 흘러가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며 치열한 두뇌 및 심리 싸움을 벌인다.

 

결국 이 유괴 사건은 언제나 침착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치밀한 작전을 세우는 아와노의 계획대로 끝이 날 것인지, 아니면 특유의 직감과 성실함으로 범죄와 마주해온 마키시마가 그들의 계획을 간파하고 사건을 해결하게 될 지, 여기에 아들을 살리고픈 아버지로서의 자아와, 경찰을 따돌리고 범죄자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를 두고 갈등하는 젊은 사장의 수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그들 사이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아와노이다.  언제나 속을 알 수 없는 태도로 마치 범죄 자체를 즐기는 듯한 묘한 분위기의 그는, 누구도 믿지 않고 경찰에 절대 잡히지 않을 자신이 만만하고 혼자서 경찰의 검거를 피할 때면 '레스트인피스'를 차갑게 고하고 돌아서는 사람이다.  특별한 이유나 절박한 사정이 아니라, 단지 지루해서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그.  그에게는 그것이 인생이고 존재의 이유인 듯 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의 범죄를 응원하게 되고 (사람을 해치는 등의 범죄행위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그가 무사히 경찰의 수사로부터 빠져나가게 되길 바라게 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꾸미는 범죄 행각도 기발했고, 사건을 맛깔스럽게 전개시켜가는 문체나 구성 등도 다 좋았다.  작가의 이전 작품은 일본 특유의 그 오글거림과 약간의 지루함으로 그다지 재미나다는 인상은 받지 못해서, 이번 작품도 살짝 망설인 끝에 읽기 시작했는데, 완전 의외일 정도로 재미나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아와노가 언젠가 다시금 마키시마와 한판 승부를 펼쳐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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