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울프 1 - 베오울프와 괴물 그렌델
박경림 지음 / 해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고전의 대중화가 고전의 왜곡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영화 베오울프의 원작과의 차이를 말합니다 


고전의 대중화를 가져온 영화예술


오늘날 인간사회의 문화를 선도하는 예술장르는 무엇일까.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어느 모로 보나 영화야말로 대중을 향한 강력한 파급력(波及力)으로서 타 장르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하겠습니다.
특히나 영화의 힘을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은 일상을 소재로 한 잔잔한 실사극(實事劇) 영화보다도,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웅장한 장면을 보여주는 블록버스터에서입니다. 더군다나 그 장면이 인류가 수천년 동안 상상만 해왔던 신화나 영웅의 이야기라면 관객의 호기심은 극에 달합니다.
옛적에 한 두 명의 시인이 마치 저 혼자 보았듯이 사람들에게 읊어줌으로써 청중들로 하여금 마음속에 동경하게 하였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직접 관객 앞에 재현되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경이로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고전이 주는 교훈과 깨우침을 굳이 글이나 진지한 사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여건이 되었음은 진정 반가운 일입니다. 


영화제작을 위하여 변형된 내용으로 고전이 알려져


그런데 그러한 감격적인 변화도 마냥 좋게만 생각할 수는 없는 면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영화 트로이를 보면서 여러 주인공들의 행위와 관계가 원전(原典)과 다르게 임의로 바뀐 것을 보고 당혹한 바 있었습니다.
이럴 때 원전의 내용을 기대하며 찾아간 관객은 일단은 감독의 자의(恣意)를 탓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해진 시간 내의 상영을 위한 여러 장면의 축약, 관객이 원작을 알고 있는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흥행을 고려한 극적 긴장의 가공, 세트제작과 톱스타기용에 따른 제작비의 효율성 제고 등, 감독의 자의에 의한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영화제작에는 따랐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영화에서는 그러한 시도가 적었고 스토리전반의 균형적인 요약이 주류였지만, 근래 들어 원작의 과감한 변주(變奏)는 상례(常例)가 되었고 이번에 관람한 베오울프 또한 바로 그 범주(範疇)에 속합니다.
문제는 영화를 접하는 많은 대중이 원전을 거치지 않고 영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이것은 원작과는 무관하게 단지 흥미와 볼거리만을 위한 영화라고 밝히면서 관객에게 위락을 제공한다면 상관없겠으나 관객이 그 영화의 내용이 오랫동안 인류가 가치를 존숭(尊崇)했던 고전이라는 선입감을 가진 채 관람하였을 때는 그 역효과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베오울프의 이야기는 영어권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므로 영화에서의 변주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원전의 내용이 보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우리문화권에서 원전의 소화를 거치지 않고 변형된 이야기만을 두고 우리가 고전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어색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영화 베오울프와 원전과의 다른 점을 충분히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영화 베오울프가 원전과 다른 주요 내용들 


그렌델은 원래 털투성이 괴물로 알려졌지만 영화에서는 에이리언 등 기존의 우주괴기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끈적끈적한 괴물로 나옵니다. 이것부터 할리우드 제작진의 취향이 나타난다고 보겠습니다.
흐로스갈왕이 덴마크의 왕이고 베오울프가 외국 예이츠의 출신인 것은 맞지만 영화에서 베오울프가 흐로스갈왕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은 매우 비약적인 변형입니다.
베오울프는 덴마크에서 공을 세운 뒤 다시 자기의 나라로 돌아옵니다. 고국의 왕 히엘락(영화에는 언급되지 않습니다)은 베오울프의 외삼촌입니다. 후에 히엘락이 전쟁에서 죽고 그 아들이 이어받았지만 아들마저 스웨덴 군대에게 죽고 말아 베오울프가 왕이 됩니다. 그리고 베오울프는 히엘락의 왕비였던 히드와 결혼하는데(원전자체에 언급된 것은 아니고 배경자료입니다.) 영화에서는 흐로스갈의 왕비였던 웨알데아와 결혼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물론 원전에서도 웨알데아가 용감한 베오울프를 사모하는 분위기는 감지되지만 그것으로 그치고 베오울프는 상을 받고는 덴마크를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베오울프는 그렌델의 팔을 뽑은 후 나중에 확실히 죽인 증거로 목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원전에서도 그렌델의 어미를 확실히 죽인 증거는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렌델의 어미는 남자 해석가들로서는 죽이기 아까운 매력적인 캐릭터인 듯합니다.
영화에서는 놀랍게도 베오울프가 그녀의 유혹에 빠져 타협하고는 사람들에게는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그렇게 죽였다고 기록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물의 마녀’가, 자기를 잉태시켜주면 최고의 왕으로 세워주겠다고 하여 베오울프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는 것으로 설정되어있습니다.
실제로 원전에서는 베오울프가 고국 예이츠로 돌아간 후 우연치 않은 일이 계속 발생하여 결국 왕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50년을 가장 훌륭한 왕으로 있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후에 기독교 성직자가 된 운훠스에 딸린 하인이, 베오울프가 물의 마녀와 타협하며 준 증표인 黃金龍盞을 훔쳐와서, 그녀와의 협정이 깨지고 화룡이 나타나 베오울프의 왕국(영화에서는 덴마크지만 원전에서는 예이츠)을 습격하는데, 운훠스라는 인물이 초반에 베오울프를 질투하다가 자기의 보검을 빌려주는 것은 같지만 원전에서는 운훠스는 그 이후로는 나오지 앉습니다. 게다가 기독교 성직자는 전혀 無根이며 원전의 분위기는 기독교 신앙을 기정사실로 합니다. 다만 왕비의 아름다움을 칭찬할 때 여신과 같다는 비유를 하곤 하여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시대의 다신교 영향이 남아있습니다.
영화만을 알고 원전에 대한 분석이 없을 때에는 영화에 강조되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인간내부의 악마성 묘사에 경도된 나머지 원전은 마치 흑과 백의 단순한 선악구도로 나뉘었던 것으로 치부하려 할지모릅니다.
그러나 원전에서도 화룡이 나타난 것을 두고 베오울프는 자신이 무언가 오래된 진리를 거스른 것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자책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예이츠와 스웨덴의 갈등과 전쟁이 묘사되면서, 싸울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을 비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영화에서 베오울프가 만난 프리지아의 휜 왕은 원전에서는 궁중시인이 읊는 삽화이야기에 나오는데 원전의 배경시대보다 더 옛날의 인물이라 베오울프와는 만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전에서는 화룡의 습격은 한 백성이 우연히 용의 소굴에 들어가 보물을 훔친 사건으로 비롯됩니다.
쉽게 찾아지지 않으면서도 영화의 비약해석 중 백미인 것은 마지막의 장례식장면에 다시 나타나는 ‘물의 마녀’입니다. 영화만으로 보면 그저 속편의 여지를 남겨두려는 의도이거나 안젤리나졸리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게 해주는 서비스로 보면 그만입니다.
베오울프 원전에서는 머리를 땋은 예이츠의 노파가 베오울프의 장례식에 나타나 장송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 여인의 사연을 추정하자면 베오울프를 사모했던 여자 주술사(呪術師) 정도로 보면 평범한 상상이지만 영화에서는 그 머리 땋은 여인이 바로 ‘물의 마녀’ 즉 그렌델의 어미가 되는 것입니다.
실로 ‘끔찍한’ 비약적 해석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영화의 의도를 해석하는 필자의 비약일수도 있겠지만, 머리 땋은 여인의 캐릭터는 ‘물의 마녀’가 처음 나타날 때부터 강조되어, 길게 땋은 머리는 괴물짐승의 꼬리와 같은 묘한 분위를 자아내는 것입니다.
마지막의 장례식에서 원전은 베오울프의 장례식에 높은 화장대(火葬臺)를 쌓고 무덤을 세우는 방식이지만 영화에서는 배 위에 뉘어 물 위에 장사지내는 방식으로 나옵니다. 배 위에 장사지내는 것은 원전에도 나오는 것으로서 다만 전반부의 덴마크왕들에게 해당되며 화장은 하지 않고 멀리 물 밖으로 보내는 식입니다.


‘정본’ 베오울프 영화의 탄생을 소망하며


이와 같이 베오울프가 젊은 시절에 그렌델을 만나고 늙은 후에 화룡을 만나는, 1, 2부로 나뉜 이원적인 이야기를 단번의 스토리로 압축하는 중에, 영화 속의 한 인물이 원전의 두 인물을 겸하든가 하는 식으로 인물도 압축이 되었습니다.
화룡의 동작은 너무도 재빠른 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슷한 영상을 보여주는 공룡영화도 이미 예전의 공룡백만년의 느린 동작에서 주라기공원의 재빠른 동작으로 바뀐 후라서 그런 현상이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왜 베오울프 같은 좋은 소재가 이전의 시절에는 제작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번의 영화 이전에 베오울프가 영화로 제작된 것은 1999년 이후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영화 두 편이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정말로 베오울프가 영화 벤허와 쿼바디스의 시절에 만들어졌다면 그 당시 할리우드의 순수한 열정으로 지금보다 베오울프의 비장한 영웅담을 진지하고 멋지게 그려내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영화의 공중전은 박진감을 높이려는 것이었겠지만 비현실적입니다. 화룡이 한번 불을 뿜으면 지상의 한도시도 불에 타는데 많은 군사들이 출동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날고 있는 용과 싸울 수는 없으니 인간이 용의 소굴에 들어가 싸워야 합니다. 만약에 벤허와 쿼바디스의 시절에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베오울프가 화룡이 소굴에 들어가 쉴 때 굴속에서 격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왔을 것이며 그 스케일과 박진감은 덜했을지 몰라도 영웅적인 비장함은 한층 더 실감나게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현대의 영화예술은 어차피 수백년이 흐르고 나면 역시 하나하나 귀중한 문화재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면 손꼽히는 고전의 이야기 또한 가장 그 내용을 잘 표현한, 영화로서의 정본(正本)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의 베오울프는 아무리 봐도 정본은 아닙니다. 이미 한번 좋은 정본영화를 만들 시절은 놓쳤지만 그래도 영화예술적 열정이 있는 누군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순수한 영웅의 선악대결을 그리기에 이미 진력이 나서 어찌해서라도 구실을 찾아내 비틀려고 애쓰는 현재의 할리우드 분위기에 물들지 않은 제작진이 더욱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베오울프와 화룡의 이야기는 괴물의 봉준호 감독, 디워의 심형래 감독이 한번 시도해볼만한 소재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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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오울프...또 하나 기억되는 도전
    from 까칠맨의 버럭질! 2007-11-18 01:27 
    오늘도 어김없이...영화관으로...ㅋㅋ 주말에 별일 없으면 일산 윈스턴돔 CGV에서 영화를 본다. 마눌이 회사에서 지원을 다 해줘서 막 본다...헐헐... 베오울프를 봤다. 디지털3D로 상영되는 것을 과감하게 골라...네이뇬에서 어떤지 검색도 해보고 다른 블로거들의 의견도 들었고.... 일단 봐도 무방힐 듯 해서... 안젤리나 졸리의 누드 모습이 나온다고 하여 화제였고 난 도 슬쩍...흐흐흐 난 실사와 3D 애니가 결합된 영화인 줄 알았는데..완전..
 
 
까칠맨 2007-11-18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렇군요..저도 써핑하다가 원작이 그렇다는 것을 알았는데...쉽게 잘 이해했습니다 ^_^ 원작을 읽어봐야겠군요...트랙백 걸고 갑니다.꾸벅...

藝術人 2016-03-08 23:37   좋아요 0 | URL
지금 도서출판 미래지향 출판의 정본이 있습니다.

독서가 2007-11-18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 영화의줄거리를 그냥따라가면서 쓴소설은 읽을가치가없을것입니다. 원전에 바탕한 소설이라야 읽은 보람이 있습니다.

藝術人 2008-02-06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대 댓글이 잘안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