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 - 14세기 프랑스 자크리 농민전쟁의 회고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431
마르셀 지음, 김용채 옮김, 자크 콜랭 드 플랑시 편역 / 나남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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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에서 자주 보이던 책이라 빌려 왔는데, 아무래도 가탁된 사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에서 봉건제도, 야만, 단두대, 초야권, 그리고 자유, 평등과 같은 근대 혹은 근대가 만들어 낸 개념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책은 그렇지만, 봉건제도에 대해 프랑스혁명기 지식인들이 어떤 태도를 지녔는지, 혹은 지니게 하고자 했는지를 추론할 수는 있을 것이다. 중세 판타지로서는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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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마지막 33년 -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정아은 지음 / 사이드웨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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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위한 변명은 아닌 변명. 그것은 해명 또는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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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마지막 33년 -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정아은 지음 / 사이드웨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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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했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전인권 선생(<행진> 그분 말고-_-)의 <박정희 평전>과 고나무 기자의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느낌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역시 그 분들이 많은 참고가 되었음을 저자도 밝히고 있다. 소설가가 쓴 평전이라, 언젠가부터 본인이나 믿을 만한 역사학자가 쓴 평전이 아니면 안 보고 있었건만, 문학이 가진 힘은 풍부한 비유에도 있음을 다시 느낀다. '어린 아이', '마트료시카'라는 비유는 더더욱 그렇다.

전두환을 위한 변명은 아닌 변명. 그것은 해명 또는 규명.

일부 문장을 옮겨 둔다.
"전두환은 우리가 지나온 한 세기를 보여주는 인물, 시층이 겨ㅂ겹이 쌓인 한반도의 20세기를 보여주는 절단면 같은 인물이다. 홉스처럼 자연 상태에 놓여 아비규환의 지옥을 살아내던 개개인이 다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돌연변이이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구성원 전체가 그 생물체의 파편을 지니고 가게 된 우리 사회의 대자아이기도 하다." p.363, <우리 사회의 대자아, 전두환을 읽어낸다는 것>

전우원이 나타난 것은 저자에게 얼마나 큰 울림이자, 한편으로는 행운이었을까. 언젠가 내가 글을 쓸 때도, 전우원의 등장과 같은 일이 찾아올까.

<저자를 위한 변명>
한편, 다음 문장은 생각해 볼만 하다.

"전두환이라는 뱃심 좋은 야심가가 등장했을 때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합의된 '선'을 지키는 데 충실했다면,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우리 역사에 11ㆍ12대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당시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수경사령관 장태완, 특전사령관 정병주는 쿠데타를 저지하려 노력했고, 그 일로 전두환과 신군부에게 치욕을 당하고 고초를 겪었다....하지만 이들에게 전두환과 신군부를 제압할 '권한'이 있었다는 사실에 방점을 두면 이들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p.356, <12.12 때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던 이가 있었는가?>

그랬을까. 내 생각과는 좀 달랐다.
먼저, 저자는 군 고위층-그러니깐 국방부장관, 육참, 수경사령관, 특전사령관이 전두환을 결국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이야기한다.
12.12 때 저항이 없었다는 말을 하려 한 것은 아니다.
단, 이는 너무나도 가혹한 평가가 아닐까.

이 구절을 읽고 나니, 언젠가 끄적여 둔 내 글이 생각난다.
-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하기에 앞서, 국가는 스스로가 국민이 충성을 바칠 만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 현충일이지만 삶과 죽음, 충성과 반역의 갈림길을 달리한 이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분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숭고하게 죽어간 이들 대신 분하게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며.
[정병주(鄭炳宙)]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찍이 5.16 군사반란에 반대하여 경복궁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의 때에 특수전사령부를 이끌고 전두환에 맞섰으나, 휘하 여단장 대다수가 비겁하게도 그를 배신하고 반란군에 가담하였으므로 총격을 입고 사로잡혔다. 세상이 반란군의 차지가 되고 군에서 숙청되었고, 한때 그가 이끌던 특전사령부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서 시민들을 학살하였다. 와신상담하며 생을 보내던 중 행방불명, 분하게도 서울 야산에서 목매달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김오랑(金五郞)]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2.12 군사반란의 때에 정병주 장군의 비서실장이었으며, 반란군이 압도적인 군세를 거느리고 문 앞까지 쇄도하였음에도 굴복하지 않고 정 장군을 호위하였다. 김오랑은 필사적으로 반란군을 저지하였으나 마침내 적의 흉탄을 맞아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이 때 투병중이던 아내 백영옥은 완전히 실명하였다고 한다. 이후 백영옥은 김오랑 소령의 억울함을 풀고 역도들의 죄를 묻고자 하였으나 원한을 가득 품은 채로 추락사하였으며, 수사기관은 백영옥의 사인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정선엽(鄭善燁)]
조선대학교를 다니던 중 군에 입대, 국방부에서 초병으로 복무하였다. 12.12 군사반란의 때에 박희도가 1공수여단을 이끌고 국방부를 습격하자, 부대를 사수하고 침입자를 격퇴하기 위하여 분연히 응전하였으나 반란군의 총격을 받아 순국하였다. 기자 고나무, 김선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최규하 당시 대통령과 노재현 국방부 장관이 무력에 굴복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불법적인 체포를 승인했을 때, 사병은 진짜 군인으로 행동했다."
일찍이 그들이 있었다. 수괴들이 권좌에 올라 국민들을 탄압하던 때. 훗날 총탄에 쓰러질 국민들을 위하여, 국민들보다 먼저 죽어 간 이들이 있었다. 반란군은 두 번 일어나 두 번 승리하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고관으로 살다 죄인으로 죽을 자는 누구이며, 영원히 기림받을 자는 그 누구인가.

2016년 6월 6일 현충일, 제대 6일 후. 교사임용 준비 중에.


"전두환이라는 뱃심 좋은 야심가가 등장했을 때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합의된 ‘선‘을 지키는 데 충실했다면,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우리 역사에 11ㆍ12대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당시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수경사령관 장태완, 특전사령관 정병주는 쿠데타를 저지하려 노력했고, 그 일로 전두환과 신군부에게 치욕을 당하고 고초를 겪었다....하지만 이들에게 전두환과 신군부를 제압할 ‘권한‘이 있었다는 사실에 방점을 두면 이들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 P356

"전두환은 우리가 지나온 한 세기를 보여주는 인물, 시층이 겨ㅂ겹이 쌓인 한반도의 20세기를 보여주는 절단면 같은 인물이다. 홉스처럼 자연 상태에 놓여 아비규환의 지옥을 살아내던 개개인이 다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돌연변이이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구성원 전체가 그 생물체의 파편을 지니고 가게 된 우리 사회의 대자아이기도 하다."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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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 선생(<행진> 그분 말고-_-)의 <박정희 평전>과 고나무 기자의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느낌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역시 그 분들이 많은 참고가 되었음을 저자도 밝히고 있다. 소설가가 쓴 평전이라, 언젠가부터 본인이나 믿을 만한 역사학자가 쓴 평전이 아니면 안 보고 있었건만, 문학이 가진 힘은 풍부한 비유에도 있음을 다시 느낀다. '어린 아이', '마트료시카'라는 비유는 더더욱 그렇다.
전두환을 위한 변명은 아닌 변명. 그것은 해명 또는 규명.
일부 문장을 옮겨 둔다.
"전두환은 우리가 지나온 한 세기를 보여주는 인물, 시층이 겨ㅂ겹이 쌓인 한반도의 20세기를 보여주는 절단면 같은 인물이다. 홉스처럼 자연 상태에 놓여 아비규환의 지옥을 살아내던 개개인이 다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돌연변이이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구성원 전체가 그 생물체의 파편을 지니고 가게 된 우리 사회의 대자아이기도 하다." p.363, <우리 사회의 대자아, 전두환을 읽어낸다는 것>
전우원이 나타난 것은 저자에게 얼마나 큰 울림이자, 한편으로는 행운이었을까. 언젠가 내가 글을 쓸 때도, 전우원의 등장과 같은 일이 찾아올까.
<저자를 위한 변명>
한편, 다음 문장은 생각해 볼만 하다.
"전두환이라는 뱃심 좋은 야심가가 등장했을 때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합의된 '선'을 지키는 데 충실했다면,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우리 역사에 11ㆍ12대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당시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수경사령관 장태완, 특전사령관 정병주는 쿠데타를 저지하려 노력했고, 그 일로 전두환과 신군부에게 치욕을 당하고 고초를 겪었다....하지만 이들에게 전두환과 신군부를 제압할 '권한'이 있었다는 사실에 방점을 두면 이들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p.356, <12.12 때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던 이가 있었는가?>
그랬을까. 내 생각과는 좀 달랐다.
먼저, 저자는 군 고위층-그러니깐 국방부장관, 육참, 수경사령관, 특전사령관이 전두환을 결국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이야기한다.
12.12 때 저항이 없었다는 말을 하려 한 것은 아니다.
단, 이는 너무나도 가혹한 평가가 아닐까.
이 구절을 읽고 나니, 언젠가 끄적여 둔 내 글이 생각난다.
-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하기에 앞서, 국가는 스스로가 국민이 충성을 바칠 만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 현충일이지만 삶과 죽음, 충성과 반역의 갈림길을 달리한 이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분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숭고하게 죽어간 이들 대신 분하게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며.
[정병주(鄭炳宙)]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찍이 5.16 군사반란에 반대하여 경복궁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의 때에 특수전사령부를 이끌고 전두환에 맞섰으나, 휘하 여단장 대다수가 비겁하게도 그를 배신하고 반란군에 가담하였으므로 총격을 입고 사로잡혔다. 세상이 반란군의 차지가 되고 군에서 숙청되었고, 한때 그가 이끌던 특전사령부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서 시민들을 학살하였다. 와신상담하며 생을 보내던 중 행방불명, 분하게도 서울 야산에서 목매달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김오랑(金五郞)]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2.12 군사반란의 때에 정병주 장군의 비서실장이었으며, 반란군이 압도적인 군세를 거느리고 문 앞까지 쇄도하였음에도 굴복하지 않고 정 장군을 호위하였다. 김오랑은 필사적으로 반란군을 저지하였으나 마침내 적의 흉탄을 맞아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이 때 투병중이던 아내 백영옥은 완전히 실명하였다고 한다. 이후 백영옥은 김오랑 소령의 억울함을 풀고 역도들의 죄를 묻고자 하였으나 원한을 가득 품은 채로 추락사하였으며, 수사기관은 백영옥의 사인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정선엽(鄭善燁)]
조선대학교를 다니던 중 군에 입대, 국방부에서 초병으로 복무하였다. 12.12 군사반란의 때에 박희도가 1공수여단을 이끌고 국방부를 습격하자, 부대를 사수하고 침입자를 격퇴하기 위하여 분연히 응전하였으나 반란군의 총격을 받아 순국하였다. 기자 고나무, 김선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최규하 당시 대통령과 노재현 국방부 장관이 무력에 굴복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불법적인 체포를 승인했을 때, 사병은 진짜 군인으로 행동했다."
일찍이 그들이 있었다. 수괴들이 권좌에 올라 국민들을 탄압하던 때. 훗날 총탄에 쓰러질 국민들을 위하여, 국민들보다 먼저 죽어 간 이들이 있었다. 반란군은 두 번 일어나 두 번 승리하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고관으로 살다 죄인으로 죽을 자는 누구이며, 영원히 기림받을 자는 그 누구인가.
2016년 6월 6일 현충일, 제대 6일 후. 교사임용 준비 중에.




전두환이라는 뱃심 좋은 야심가가 등장했을 때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합의된 ‘선‘을 지키는 데 충실했다면,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우리 역사에 11ㆍ12대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당시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수경사령관 장태완, 특전사령관 정병주는 쿠데타를 저지하려 노력했고, 그 일로 전두환과 신군부에게 치욕을 당하고 고초를 겪었다....하지만 이들에게 전두환과 신군부를 제압할 ‘권한‘이 있었다는 사실에 방점을 두면 이들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 P356

전두환은 우리가 지나온 한 세기를 보여주는 인물, 시층이 겨ㅂ겹이 쌓인 한반도의 20세기를 보여주는 절단면 같은 인물이다. 홉스처럼 자연 상태에 놓여 아비규환의 지옥을 살아내던 개개인이 다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돌연변이이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구성원 전체가 그 생물체의 파편을 지니고 가게 된 우리 사회의 대자아이기도 하다.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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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전선종군기 - 일본 육사 출신의 역사학자가 전쟁을 되돌아보다
후지와라 아키라 지음, 이재우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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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출신 청년장교는 어떻게 역사학자가 되었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속 저자의 삶의 궤적을 통해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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