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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
신주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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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은 안전한 선택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안전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평범함은 허들이 되어, 인물들의 앞에 놓인다. 타인의 시선은 장애물이고, 그것은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개수도 많다.

살면서 장애물을 맞닥뜨렸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뛰어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 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세상에서 제시하는, 그러니까 '평범함'을 가장한 무언의 폭력을 허들로 앞에 두고 있다.

삶에는 돈이 들고, 생존은 그것보다 조금 싸고, 존재는 아주 비싼 이 삶에서 그들은 싸지 않은 생존기를 치르는 듯한 모습으로 허들을 맞닥뜨리고 있다.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에게 의구심이 든다. 책에 나오는 여타의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왜 그런 무모하고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거니, 왜 더 참고 살지 않고 이혼했니, 왜 미혼으로 아이를 낳았니, 고지를 눈앞에 두고 왜 갑자기 쥐약을 먹고 자살했니,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은 때마다 선택을 한다. 다만, 보편적이고 평범한 세상의 기준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다.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거기에 대해 큰 이유나 설명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의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과거 같은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 예컨대, 「휘발, 공원」처럼 당장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 귀찮아, 때마다 사랑하지 않는 연인에게 좋게 맞장구 쳐주며 선택을 조금 유보하는 행위 마저도 선택의 일종인 것이다.

때마다 그런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하여, 지금의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보았을 때, 우리는 정말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타인처럼 느껴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실은, 나는 나마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몇 몇 과거의 선택은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이었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으며,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택하지 않을 선택이다. 예술에 대한 무모한 신념으로 점철되어 자기 안위조차 돌보지 않는 일을 벌이는 햄과 같을 때도 있었고, 남자친구의 적당한 말이나 감언이설에 속아, 아이를 낳으면 그를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화자처럼 가늠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에 인생 전부를 걸고자 했던 때도 있었다. 나는 때마다 선택의 기로와 같은 허들 앞에 놓였다. 이들처럼.

삶에는 돈이 들고, 선택은 삶이 치르는 값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우리는 각자 모두 과거 선택에 대한 값을 치르고 있다. 그것이 자신이 영위하는 삶이고, 어쩌면 힘에 겨운 '겨우 생존'일지도 모르고, 존재와 가치와 의미를 얻고자 하는 비싼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내가 비록 과거의 나를 이제 와서 이해할 수 없을지 언정, 결국 그가 저지른 일들을 해내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허들 앞에 놓인 모두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곁에 서 주어야 한다. 서 있어야 한다. 위로와 격려처럼 거기 서 있어야 한다.

안전한 선택은 보편적이고 평범한 선택이고, 그것만이 세상의 비난과 타인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리고 안전한 선택이 정말 끝까지 안전을 보장해주나? 몹시 안전한 선택은, 정말 안전한가?

때마다 선택을 유보하고 조금 더 자신이 안전해 보이는 선택을 골라 살아왔다고 한들, 존재 가치를 풍만하게 느끼는 충족할 수 있는 삶인가? 타인의 눈초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뛰어 넘어야 할 허들이 낮기라도 한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모두 허들 앞에 서 있고, 그때마다 어떤 선택이든 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 선택이 옳았는지 그른 선택이었는지 알 수 있겠지. 단, 판단은 세상과 타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그때 어떤 선택이라도 해야 했고, 그래서 내가 지금 살아 견디고 있는 것이라면 옳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 마음으로.

안전한 선택 같은 것은 없다. 길 위에 아주 조금 튀어나와있는 돌뿌리 하나에도 걸려 넘어져 다치는 것처럼. 아주 낮고, 적은 수의 허들이라도 장애물은 위험하다. 안전히 땅에 발 붙이고 기어서, 걸어서 통과할 수 있는 허들은 없다. 무조건 뛰어야 한다. 뛰어 넘어야 그 다음이 나오는 것이다. 뛰는 것은 부상의 위험을 안고 있는 행위이다. 모두가 그 앞에 서 있을 때, 누군가는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페이스 메이커처럼 존재해 주어야 한다. 비록 뛰는 것은 자기 몫일지라도.

고작 손바닥만한 너비를 가진 하이힐로 위태롭게 지면을 밟아 걸으면서도 타인에게 했어야 했던 말처럼 살자.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꼭, 연락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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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셔 크로싱 - 소녀들의 수상한 기숙학교
앤디 위어 지음, 사라 앤더슨 그림, 황석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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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과 프로젝트 헤일메리로 유명한 앤디 위어의 신작이 나왔다. 사실 쓰여진 건 한참 전이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들보다 먼저 쓰여졌는데, 작가가 출판을 목적으로 쓴 내용도 아니었는 데다가 그림이 더해진 '그래픽 노블' 장르였던지라 여태 묻혀있던 것을 몇 출판사들이 발표해보자고 하였고, 사라 샌더슨이 그림을 맡게 되면서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앤디 위어와 사라 샌더슨의 그래픽 노블이라는 것부터가 너무나 구미를 당기게 하였는데, 번역은 심지어 초월 번역으로 유명한 번역가 황석희 씨가 맡았다고 하니, 내용을 더욱 보고 싶은 마음이 배가 되지 않는가.

때마침 좋은 기회인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만나게 되어 신청하였고, 그렇게 '체셔 크로싱'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책은 짧고 압축적인데, 책을 빠르게 읽는 사람들이라면 30분도 안 되어 내용을 다 볼 법한 정도다. (나는 40분 정도 걸렸다.)

인쇄는 깔끔하게 되었고, 번역 또한 잘 되었다. 다만, 내용이 너무 압축적인 탓에 독자가 이해하기 어렵거나 따라가기 버거운 장면이 몇 있다.

더 확실히 내용을 즐기고 싶다면 원작이 되는 피터팬과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최대한 원작에 가까운 버전으로 읽어 본 후에 다시 본다면 더욱 잘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가장 흥미가 있던 지점은 초반 부분이다. 아이들이 한 데 모여서 주고 받는 내용에서 드러나는 아이들의 성격과 아이들이 진단 받았던 정신과적 병명 같은 것 말이다.

남들이 겪지 못한 일을 무시무시한 일을 겪고 죽을 힘을 다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왔는데, 믿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어른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미친 취급하며, 치료하고 교육하려고 애를 쓰기 바쁜 것이다. 사실상 아이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미쳐버린다. 이 세계에서는 자신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체념하고 냉소적으로 변해버린다.

그러나 같은 세계에서의 경험은 아니나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을 만나자, 아이들은 금세 쉽게 융화된다. 세상의 취급으로 까칠해져버린 성격은 여전하지만 상대의 경험을 함부로 가짜라고 몰지 않는다. 거짓말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내가 원더랜드에 있었듯, 너는 네버랜드에 있었구나. 내가 네버랜드를 겪었듯, 너는 오즈에 가봤었구나. 서로 다른 세계로 차원 이동을 했고, 서로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 수 없어도 아이들은 서로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들어준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차원 이동자로서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몇 년 전의 그 기억과 경험을 잃지 않고 여전히 그것을 바탕으로 싸우고 모험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원더랜드가, 네버랜드가, 오즈가 정말로 있다고 믿고, 의심하지 않고, 서로의 말에 귀 기울였기 때문에? 그러니 서로의 능력을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차원 이동을 했으니 말이다. 아이가 아닌 어른인 유모인 메리 포핀스도 아이들과 함께 차원 이동을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경험을 진정으로 믿는 마음. 거짓이 아니라고 믿는 마음 덕분에 그는 어린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네버랜드에도, 카드 모형이 사람으로 변해 돌아다니는 원더랜드에도, 사람의 심장을 갖고 싶어하는 양철 깡통이 말하고 돌아다니는 오즈에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메리 포핀스에 대해 보면 웃기고 짠한 지점이 또 몇 있는데, 아이들의 장난에 이골이 나서 장난스러운 아이들을 지옥의 요정 취급 하면서도 결국은 아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그 마음으로 서쪽 마녀와 싸운다는 것이다. 우산을 펼쳐, 사악한 마법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마법에 걸려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다가 다시 되살아나서도 아이들을 지키러 또 참전한다니. 이보다 더 대단한 유모가 있을까!

앤디 위어는 이처럼 영리하게도 우리가 서양의 어린이 작품에서 만날 수 있었던 여성 캐릭터들을 한 데 모아 어벤져스를 결성시킨다. (주요 등장인물을 모두 여성들로 구성하고 그들끼리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는 설정까지도 마음에 든다. 디즈니의 공주 동화와 만화만 보고 자란 소녀들보다 이 모험기를 읽은 소녀들이 페미니즘과 여성연대적으로 훨씬 더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성격이 삐뚤빼뚤 모나고 여러 차례 자신의 말을 의심 받고, 미쳤다는 전제 하에 각종 실험을 받아, 아주 염세적으로 변해버린 애늙은이 같은 아이들이, 결국은 아이 같은 그 찬란한 동심과 의심하지 않고, 거짓이라 함부로 단언하지 않는 모습들로 함께 힘을 합쳐, 세상을 또 한 번 구해내는 것이다.

길지 않은 내용이었음에도 읽으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린 부분이 몇 있었는데, 사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웃픈' 지점에 가깝다. 어떤 장면이었냐면, 맨 처음 아이들이 막 만났을 때, 웬디는 머리를 자른 상태였다. 네버랜드에서의 기억이 남아있는 채로 조금 더 큰 모습의 웬디는 그때의 긴머리가 아니었다. 훨씬 더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모험가로서의 외형으로 만날 수 있게 된 웬디가 몹시 반가웠고, 아이들 중 가장 성숙한 모습을 보여 네버랜드에서의 "더이상 자라지 않는 아이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지점이 약간 씁쓸하고,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방에 갇히자마자 도망가려고 창문을 살피는 앨리스가 창문이 닫혀있는 것에 분통을 터뜨리는데, 앨리스는 원더랜드에서 몸이 커지고 작아지는 약을 잘못 먹는 바람에 좁은 집에 갇힌 기억이 있다. 때문에 폐쇄적인 공간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약간의 폐쇄 불안증처럼 보이는 앨리스와 반면, 웬디의 경우는 창문으로 피터와 요정들이 날아왔던 기억이 있어, 아무래도 창문은 열려있는 것보다 닫혀있는 것을 선호하는 것도 원작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심리 상태와 성격을 설정하여, 읽는 독자로 하여금 원작의 내용을, 그로 인해 아이들의 심리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영리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는 재미도 재미지만, 정말 탁월한 분석력이라고 앤디 위어의 칭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도로시까지 합세했을 때, 각자 어떻게 차원 이동을 했는지 차원 이동의 방법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가 있는데 웬디와 도로시는 자세하게 말한 반면, 앨리스는 "그딴 거지 같은 데 안 가." 하고 말하는 게 정말 웃기고 짠했다. 아마 일반적인 번역으로 했다면 '그런 기분 나쁜 곳은 안 가'라든가, '그따위 곳에 가기 싫어' 정도로 해석할 수 있었을 텐데, 황석희 번역가가 요즘 아이들 말투로 잘 번역한 대사라고 느꼈다. 그딴ㅋㅋ 거지 같은 데ㅋㅋㅋㅋ 안 가ㅋㅋㅋㅋㅋ

마지막으로 또 한참 웃었던 지점은 피터가 앨리스와 함께 보팔 검을 빌리러 갔을 때였다. 수수께끼를 맞춰야만 보팔 검을 내어주겠다는 말에 앨리스는 원더랜드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하는데, 피터는 앞뒤 안 재고 냅다 주먹을 꽂아 수문장을 재우고 보팔 검을 획득한다. 이 부분도 참 웃기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웃픈'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피터가 앞뒤 안 재고 폭력을 쓰는 부분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네버랜드는 정말 아이들이 있기 힘든 곳인 점이 엿보인다. 아이들이 폭력을 계속해서 쓸 수 밖에 없는 곳. 웬디가 호신용 칼을 갖고 다니는 것과 같은 이유다.

차원을 넘나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서쪽 마녀는 이제는 성이 아니라 차원 전체를 아우르려고 애를 쓰지만, 차원 이동 능력자가 셋이나 되는 상황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마법이 제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이쪽도 마법을 쓰는 메리 포핀스가 있는 데다가 애초에 쪽수로도 한참 밀리니 어쩔 수 밖에.

그리고 후크 선장의 외모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많지만... 그는.... 원작에 따르면 엄청난 미남이었어야 하는데 이 구리구리한 수염 기른 아저씨는 또 뭐고, 서쪽 마녀에게 왜 이렇게 기름지게 대하는 건지... 굉장히 불만스러웠다.

사실, 러브라인도 있다고 서문에서 밝히기에 기대를 좀 해보았는데, 러브의 러 자도 시작하지 못하고 대충 썸만 탄 상황에서 (후크 선장이 죽을 때보면 서쪽 마녀는 그렇게 애틋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별 마음이 없었는지도...) 흐지부지된 관계라 이건 러브라인이라고 볼 수 없겠는데? 싶었다.

게다가 이 작품은 그래픽 노블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이야기 자체를 굉장히 압축해놓은 느낌이 든다. 전개가 한국의 아침드라마 저리가라 수준이다. 가령 메리가 액체로 변해버린 후에 아이들이 크게 슬퍼한다거나 꽃병을 챙겨서 메리(였던 것)를 잘 담아서 교장에게 가져다주는 장면 등은 다 생략되고 없다. 서쪽 마녀도 계속 후크 선장의 배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구경해볼 법도 한데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은 것도.

너무나 생략된 장면이 많다는 점이 확실히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전개가 너무 빨라서 눈이 팽팽 돌 지경이기도 했다.

앤디 위어가 프로젝트 헤일메리처럼 두꺼운 책으로 이 내용을 다뤘다면 아마 위에서 언급했던 이야기들에 이런저런 살도 많이 붙고 전개도 제 속도를 갖춰 조금 더 매끄러울 것 같다.

한 번쯤 읽어볼 만한 내용이었고 읽는 내내 만화책을 읽는 것처럼 즐거웠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아이들에게 접해도 무리 없는 (어쩌면 조금 유치하게 볼 수도 있겠다.) 내용이라 괜찮을 것 같다. (사람이 마법으로 액체가 되는 장면 빼고는..... 모 사이트 웹툰 성형수가 떠오르는 부분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읽으면서 재미있었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큰 압박과 결심 같은 거 없이도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는 가볍고 즐거운 책!

*이 서평은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RHK)에게 도서를 제공 받아 쓰여졌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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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트 패밀리 안전가옥 오리지널 21
안세화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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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전가옥이 펴낸, 안세화의 스타더스트 패밀리.

2022년 올해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 더없이 유쾌한 가족 오락 액션 코미디를 접했다.

여기, 다섯 가족이 있다. 구성원은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딸, 아들이다.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이 가족 구성원들은 그 구성처럼 몹시도 평범하다. 할아버지는 정정하고 여느 노인들 답게 자주 툴툴대며, 어머니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수다스럽고 오지랖 넓은, 참견 많은 중년이며, 아버지는 자신이 '가장'임을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확연히 주장하나 그 위엄은 찾아볼 수 없으며, 딸과 아들은 서로 몹시 투닥대기 바쁜, 여느 집안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남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이토록 평범한 이들이 어쩌다 '정신병원'이라는 곳에 무려 '감금'씩이나 되었단 말인가.

영화 장화홍련에서 그러하듯, 이 가족의 이야기도 침착하고 인자한 병원장이 환자를 상담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출처럼 이 평범한 가족이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들의 과거를 짧게 설명해준다.

다소 허무맹랑하고 괴리감 넘치는 주장이지만 그들은 모두가 같은 과거와 기억을-의사의 입장에서는 병명과 증상을-공유하고 있었다. 의료인의 입장에서야 다섯 명이나 되는 가족 공동체가 똑같은 망상장애 증상을 보이니 다소 흥미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다섯 식구들 입장에서는 답답해 죽을 것 같은 반응이다. 어떻게 다섯이나 되는 사람들이 같은 망상 장애를, 그것도 말 한톨 다르지 않게 주장할 수 있냐고? 그거야 사실이니까!

히어로는 의외로 평범하다.

이 소설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처럼 평범한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그 가지를 뻗어나온다. 정신병원에 갇혀, 계속된 탈출 시도가 막혀 하루하루 지루하고 반복적인 나날을 보내면서 우리가 정말 다같이 망상장애를 앓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체념에 좀먹힐 무렵, 히로인과 엄청난 단서의 등장으로 인해 그들은 곧바로 힘을 얻고 서로 긴 회의 없이도 짠듯이 일을 처리한다. 과연 가족애가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서로 "아, 그럼 어떡해?! 뾰족한 수가 있어?!" 하고 서로 니탓내탓을 하다가도 놀랍도록 서로 나서지 않고 놀랍도록 도망치는 데에 만장일치를 보이는 이 사랑스럽고 허술한 가족을 보라.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지만 누구 하나 크게 놀라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미래에 머리를 부여잡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국가정보원이 가족의 인생에 끼어들고, 스파이 임무를 받아도 큰 고뇌와 역경 없이 신나게 능력과 재주를 발휘해 써먹고 돈을 벌고, 또 돈을 진탕 쓴다. 이 얼마나 유쾌하고 고민 없는 가족인가.

사건이 전개되면서 여러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이 사랑스럽고 허술하고 유쾌하고 고민 없는 가족은 <어차피 도망칠 수 없다>는 전제와도 같은 상황이 주어지자, 체념은커녕 마블의 어벤져스 뺨치는 K-어벤져스의 액션 넘치는 데뷔를 노린다. 마치 타노스의 괴력과 그가 가진 무시무시한 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떼샷으로 승부수를 던져보는 것처럼, 그들은 거침이 없다.

하지만 마블의 어벤져스와 그들이 진정 다른 것은 무엇인고 하면, 그들은 평범하다. 어릴 적부터 국가로부터 훈련 받은 정예 요원도 아니고, 정체불명의 파워 주사를 맞고 모든 것을 막아내는 금속 방패를 지니고 있지도 않으며, 엄청난 부와 명성이 따라붙는 천재 과학자도 아닌 것이 그들이 가진 것이다. 이 거대한  우주적 싸움에 지구에 사는 인간 몇 죽고, 도시가 조금 파괴된 정도는 뭐 쿨하게 넘어가는 그런 게 아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린 괴생명체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가진 것 중에서 먹을만한 걸 찾아 던져준 지극히도 평범한 회피와 모면의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탄생해버린 히어로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던 사람들을,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기 전의 삶도 넘치게 사랑해왔기에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향후 위험할 수도 있는 분자들은 반드시 제거"한다거나 "혁명이나 재건을 위한 조금의 희생 쯤이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그런 거창한 생각따위는 갖지 않는다. 무슨 지구를 지키는 지구용사도 아니고, 독수리 오형제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가족의 안위를 걸렸기에, 가족을 지키려고 싸움에 나선 것이며, 그렇기에 관계 없는 제3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뻑하면 폭탄을 등장시켜 건물과 사람들을 통째로 한꺼번에 날리려는 건 위험 요소 제거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발판일 수 없다. 위험 요소 제거라는 협의 없는 기막힌 작전과 실행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건 위험 요소가 아니라 그간 그들이 알고 지내온 살갑고 반가운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대의를 이야기하며 이야기가 무거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에게 위험한 상대와 싸우고자 한 것이지, 지구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싸우지 않는다. 또, 그래서 불필요한 희생을 최소화하려고 웃겨죽는 노동과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배 씨네 가족은 유쾌하다. 어느 상황에서나 그렇다. 죽다 살아났어도 그들은 약간의 농담과 함께 다시 일어선다. 마치 베고 또 베어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아주 강인한 히어로의 모습으로! 일어선다면 좋겠지만 그냥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큰일날 뻔했네, 하고 고비를 넘기는 식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이를테면 배 씨 가족의 전제 조건 같은 것이다. 무조건 평범하기.

비범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정신병원에 오게 되었고, 또 어떤 비범한 상황들을 마주하고  전개해 나가는지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언제 어느 상황에 펼치더라도 유쾌하고 재밌는 이야기니까. 이 정신병원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지, 정말로 미친 사람들만 입원한 병원인지, 떡밥은 끝까지 주어진다. 같이 달려보자.

이 서평을 올리기 위해, 알라딘에 왔는데 책이 추리/미스터리 장르에 있는 걸 보고 아연실색했다. 이만큼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웃겨 죽는 한국형 'K-어벤져스:병동워'가 또 어디에 있다고!

다 읽고 덮었을 때 이 이야기에 독자가 어떤 평을 내리고 점수를 매기든,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책은 정말로 페이지터너다.

사실, 요즘 발간되는 거의 모든 책의 추천사가 '책읽기를 멈출 수 없다', '엄청난 페이지터너', '결국 밤새서 다 읽었다', '책장을 덮을 수 없다' 등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 추천사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 나마저도 이 책에게는 순순히 '페이지터너'라는 칭호를 아낌없이 내린다. 다 읽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혹평을 주고 싶은 독자라도 이 문단에는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이 책은 정말로, 정말로 페이지터너다. 일단 첫 몇 장만 읽어보라. 그 다음부터는 술 없이도 취한 것처럼 아주 술술 읽힐 테니까!



*이 서평은 출판사 안전가옥에게 도서를 제공 받아 쓰여졌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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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의 공식 - 첫눈에 독자를 홀리는 역대급 주인공 만들기 어차피 작품은 캐릭터다 2
사샤 블랙 지음, 정지현 옮김 / 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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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의 공식은 말그대로 '히어로' 캐릭터가 갖는 모든 것을 공식화한 것이다. 히어로라면 마땅히 어떤 요소들을 갖춰야 하고, 어떤 매력을 지녀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가령, 히어로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면의 상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작품의 큰 주제는 결국 보편적인 인류 문화적 가치에 따른다. 그러니까 사회가, 삶이 비관적이라고 심하게 비뚤어져서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닥치는대로 죽이고 살인하는 것을 이야기의 교훈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주제는 보편적으로 "정의", "사랑", "모험과 용기, 우정" 등을 테마로 하고 히어로는 주인공으로서 이 이야기의 교훈에 걸맞는 캐릭터 아크를 지녀 작품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완벽한 캐릭터는 사랑받기 어려운 데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해서 뭐든 문제 없이 처리하는 캐릭터가 나온다면 애초에 이야기 자체가 구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히어로는 매우 지극히 인간적이며, 독자들과 비슷한,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나와 동일시할 수 있거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과몰입'을 위한 설정을 가져야만 한다는 말이다. 어릴 적 따돌림을 심하게 당했다든가, 소중한 가족을 잃은 상처가 있다든가 하는 내면의 상처와 상실을 지녀야 한다. 이는 우리의 히어로가 성장을 위한 발판을 갖는 것이다.

예컨대 히어로 캐릭터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뭘 해도 구박 받기 일쑤고, 주변에 친구 하나 없는 조용하고 사회성이 부족한 캐릭터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 나서지도 못하고 수업 시간에 발표 하나 어떻게 할 줄 몰라 쩔쩔 매거나 그로 인해 놀림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히어로는 그 조용하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혼자 하는 일들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러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조립, 코딩을 취미로 삼게 되고, 그 방면에서는 가히 천재적인 기술과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히어로 캐릭터의 마을 전산 시스템에 불분명한 외부의 해킹이 시도된다. 마트 전산이며 회계는 전부 엉망이 되어버리고, 학교는 전기 공급이 어려워지며, 병원에서는 아픈 환자들의 목숨까지 위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이 위기를 해결할 사람은 오직 컴퓨터 기술자나 화이트 해커 뿐인데, 히어로가 사는 마을은 작은 시골 마을이라 그런 기술자를 찾기 역부족이다.

그런데 이때, 이 위기를 알게 된 히어로 캐릭터가 여기서 나타난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짠 하고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는 이렇게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까지 계속해서 내몰림이나 등떠밀림이나 내적 갈등을 겪는다. '어떡하지? 내가 할 수 있다고 나서도 될까? 하지만 그러다 내가 실수해서 모든 걸 다 망치기라도 하면? 하지만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이웃집 할머니가 병원에서 지금 숨이 넘어갈 위기라는데 그건 절대 안 되지! 하지만 모두 앞에 나서는 건 정말 무섭고 두려워. 오줌이라도 지릴 것만 같아. 어쩌면 좋지?' 계속해서 이런 답보 상태의 갈등을 겪다가 결국 모든 게 무너지기 전, 그는 악착같은 힘을 짜내 자기 자신과 맞서 사건을 정면돌파 하는 것이다.

모두 앞에 나서기 끔찍하게 두렵고 무섭고, 숨이 턱 막히고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지만 그래도 보편적인 가치인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두 눈 질끈 감고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때 내면의 트라우마가 발동되어 히어로 캐릭터는 굉장히 불안하고 위기를 겪는 상태이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자신있는 프로그래밍을 시도하고, 결국 이를 멋지게 성공으로 이끌어 내어 그가 살고 있는 마을과 이웃 사람들 모두를 구하게 된다. 그 멋진 경험으로 인해, 그는 드디어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트라우마를 이겨내며, 주변 이웃들과 친구들의 인정과 신뢰를 받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보통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 책은 이런 것을 계속해서 말해주고 있다. 공식으로 제시되는 히어로가 갖춰야 할 요소 하나를 던져주고 그 요소를 잘 쓴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을 예시로 적어 독자에게 알려주는 식이다. 이런 공식이 있고, 이 공식을 잘 적용시킨 건 이런 게 있어. 너도 이 요소를 이렇게 쓰면 되는 거야! 하고 말이다.

내면의 상처, 보편적인 가치, 캐릭터의 희생과 성장… 정말이지, 히어로 캐릭터 창작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공식의 요소들을 하나씩 정리해서 내가 창작하고자 하는 히어로 캐릭터에 하나씩 붙여나가면 작가 자신 뿐만 아니라, 독자, 시청자, 관객으로 하여금 과몰입하게 만드는 사랑스럽고도 멋진 "히어로" 캐릭터를 완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 윌북에게 도서를 제공 받아 쓰여졌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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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캐릭터 심리 사전 - 창작자를 위한 캐릭터 설정 가이드 문제적 심리 사전
한민.박성미.유지현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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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를 창작할 때는 대사를 먼저 떠올리고, 그 다음 걸맞는 외형을 그린다. 그러고나면 대충 성격이 보이는데 왜 그런 성격이 형성되었는지를 과거 서사로 주어준다. 순서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의 캐릭터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요즘은 이 "서사" 부분을 아예 배제 시키는 캐릭터도 있다. 범죄자 캐릭터에는 '서사'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윤리적인 이유를 제외하고서라도 그냥 서사를 주지 않거나 창작자가 귀찮아서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배제시켜 버리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전형적이고 빤하며, 예측된 행동을 보이며 극을 이끌게 되는데, 그것이 별로 흥행하진 못한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되는 것이다.

나는 심리학을 전문적으로도, 어깨 너머로도 배운 적은 없지만 즐겨 듣는 범죄 관련 팟캐스트에서 범죄 심리학자가 영화 및 드라마에 나오는 악인 캐릭터들을 범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분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성격에 따라 A군, B군, C군 등으로 크게 나뉘고, 그 안에서 편집증성, 히스테리성, 경계성(보더라인) 등으로 또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사람이 뚜렷하게 한 성격 특성만 가지고 있는 것이라 아니라 복합적으로, 보다 다양하게 여러 성격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여차하면 잘못 분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A군, B군, C군이라니.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성격이 나뉘는지, 그 '군' 안에는 어떤 개별적인 특성이 담긴 성격들이 한 집합으로 묶이는지의 기준이 정말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그 성격이라고 짐작하는 건지, 어떻게 그런 분석을 내릴 수 있는지도.

그 궁금증은 이후, 한참을 궁금함으로 계속 간직되어 오다가 이 책을 만난 후, 마법처럼 풀리게 되었다.

이 책은 심리학을 다루는 책 답게 성격 유형을 큰 집단과 작은 집단으로 나누어, 목차를 제시하고 이 성격적 특징을 보이는 영화 및 드라마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보다 쉽게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읽다가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와 영화 <조커>의 "조커"(호아킨 피닉스)가 각각 다른 성격으로 분류되었다는 것이다. 둘은 같은 캐릭터다. 완전히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태생이 같다. 조커는 DC코믹스에서 탄생된 캐릭터인데, 가히 인류 문명사 최고의 악인의 첫 번째로 꼽힐 만큼 악명도, 팬들의 애정도 넘치는 스타 캐릭터다.

빌런이 어떻게 매력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 적확한 답변을 제시하는 조커는, 두 영화에서 같지만 다른 특성을 보인다.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거짓말을 밥먹듯 한다. 그는 자기 입이 어떻게 찢어졌는지에 대해 영화 내내 몇 번이고 언급하지만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 거짓말을 밥먹듯 하면서도 그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그 거짓말로 상대를 낚아 채고 상대의 심리를 뒤흔드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인간성에 지극히 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일삼는다. 역시나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조커는 바보는 아니다. 어설픈 걸음걸이와 때때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내비치지만 이 역시 모두 그의 계산된 행동이며, 그는 쉽게 누군가에게 잡히지도 않는다. 모든 일은 그의 계획 하에서 완벽하게 이행되고 있으며, 그는 완벽해보이지 않는 건들건들한 모습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결과를 즐거이 감상한다.

그러나 <조커>의 조커는 다르다. 그는 입이 찢어지지도 않았고 무법천지의 도시에 살고 있지도 않다. 후에 자신이 무법천지로 만들어버리긴 하지만. 그는 가난하고 힘들지만 어떻게든 이 사회 안에서 살아보려 노력하는 한 노동자다.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터지는 병을 앓는 바람에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나 오해를 받기 일쑤지만, 그는 언젠가 멋진 코미디언이 되어 모두를 웃게 만들고 싶은 꿈이 있는 소소한 시민이었던 것이다. 그런 조커는 병든 노모와 시간이 지나도 자신에게 친절해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사회의 바닥을 계속해서 맛보며 비뚤어지게 되는데, 끝내는 자신의 태생을 알게 되고 (혹은 그렇게 착각하고) 완전히 엇나가버린다.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기 힘들었던 조커. 누구의 공감도 살 수 없던 조커는 아무의 공감도 살 수 없는 자신 혼자만의 웃음을 찾는다. 사람을 죽이면서 웃는 것이다. 사람을 괴롭히며 웃고, 타인의 불행에 폭소를 터뜨린다. 그렇게 미쳐버린 조커는 그렇게 우리가 아는 '조커'가 된다.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인 고담 시티에서 악을 자행하는 가장 무서운 빌런, 조커.

이렇게 두 조커가 비슷하지만 각각 다른 서사로 만들어졌는데, 이 책에서는 성격 또한 다르게 분류하고 있다. 다른 서사를 가졌으므로 당연한 일이지만.

편집증적인 사이코패스 면모를 보이는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망상장애를 앓고 있는 조현형 성격의 <조커>의 <조커>는 분명 다르다.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범죄를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한다. 그가 악을 좇는 동기는 찾을 수 없으며, 그런 동기를 중요시 여기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그저 악에서 태어난 것만 같은 캐릭터로 안티테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러나 <조커>의 조커, 아서 플렉은 영화 시작부터 이미 정신증 증세와 스트레스를 보여주고 있었고 망상 장애를 동반하다가 끝내 미쳐버리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환시와 환청이 들리고, 망상을 경험하는 일은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부분이 바로, 같은 캐릭터가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잘 아는 영화와 드라마, 또는 소설 등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유형적으로 묶어 분류하고, 분석하며 창작의 모범 답안으로 제시해준다. 이런 성격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히어로가 된다면, 또는 빌런이 된다면, 아니면 히어로를 돕는 히로인이나 조연이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어떤 모습으로 극을 이끌어가게 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이야기를 잘 매듭지을 수 있는지까지 친절하게 제시해주니 창작자의 입장에는 답안지에 가까운 책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 책에서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일 뿐,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나가서 인물이 파멸하는지, 또는 성장하는지, 이야기가 결국은 어떻게 끝맺어지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창작자 자신이다. 참고는 하되, 이 클리셰와 뻔한 방향을 어떻게 바꾸어 새롭고도 의미있는 결말에 도착할지 정하는 게 관건이겠다.

다만 여전히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심리학 전체를 통틀어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사람을 각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되는 일종의 "편견"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보여지지만 어떻게 해서 이런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를 보통 과거-가정사에서 찾는 일이 많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그 이유를 찾곤 하는데 양육을 주로 '어머니'가 맡는 일이 많다보니 부모와의 관계보다도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해당 유형의 성격이 발생하는 이유를 찾고 있다. 심리학 자체가 그런 건지, 아니면 이 책의 집필을 그렇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정말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만을 원인으로 그런 성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인지, 아버지와 자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편부모(한 부모) 가정에서도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그런 성격이 기인하는지 말이다.

여하튼 이 책 덕분에 앞으로 내 캐릭터 창작에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성격과 성격적 결함과 그런 성격이 기인하게 된 이유와 서사까지 잘 정리해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내 캐릭터에게 맞는 MBTI와 내 캐릭터가 갖고 있는 생각과 행동, 그 심리는 어느 성격군 유형에 부합하는지, 또는 여러 복합적인 성격증을 가지고 있는지까지도.

요즘의 콘텐츠는 '잘 만든 캐릭터 하나'가 전부라고, 그 캐릭터 하나가 극을 다 이끌어간다고 한다. 이런 캐릭터 전성시대에 이 책은 창작자들에게 굉장히 유용할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 시크릿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쓰여졌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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