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캐릭터 심리 사전 - 창작자를 위한 캐릭터 설정 가이드 문제적 심리 사전
한민.박성미.유지현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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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를 창작할 때는 대사를 먼저 떠올리고, 그 다음 걸맞는 외형을 그린다. 그러고나면 대충 성격이 보이는데 왜 그런 성격이 형성되었는지를 과거 서사로 주어준다. 순서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의 캐릭터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요즘은 이 "서사" 부분을 아예 배제 시키는 캐릭터도 있다. 범죄자 캐릭터에는 '서사'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윤리적인 이유를 제외하고서라도 그냥 서사를 주지 않거나 창작자가 귀찮아서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배제시켜 버리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전형적이고 빤하며, 예측된 행동을 보이며 극을 이끌게 되는데, 그것이 별로 흥행하진 못한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되는 것이다.

나는 심리학을 전문적으로도, 어깨 너머로도 배운 적은 없지만 즐겨 듣는 범죄 관련 팟캐스트에서 범죄 심리학자가 영화 및 드라마에 나오는 악인 캐릭터들을 범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분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성격에 따라 A군, B군, C군 등으로 크게 나뉘고, 그 안에서 편집증성, 히스테리성, 경계성(보더라인) 등으로 또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사람이 뚜렷하게 한 성격 특성만 가지고 있는 것이라 아니라 복합적으로, 보다 다양하게 여러 성격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여차하면 잘못 분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A군, B군, C군이라니.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성격이 나뉘는지, 그 '군' 안에는 어떤 개별적인 특성이 담긴 성격들이 한 집합으로 묶이는지의 기준이 정말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그 성격이라고 짐작하는 건지, 어떻게 그런 분석을 내릴 수 있는지도.

그 궁금증은 이후, 한참을 궁금함으로 계속 간직되어 오다가 이 책을 만난 후, 마법처럼 풀리게 되었다.

이 책은 심리학을 다루는 책 답게 성격 유형을 큰 집단과 작은 집단으로 나누어, 목차를 제시하고 이 성격적 특징을 보이는 영화 및 드라마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보다 쉽게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읽다가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와 영화 <조커>의 "조커"(호아킨 피닉스)가 각각 다른 성격으로 분류되었다는 것이다. 둘은 같은 캐릭터다. 완전히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태생이 같다. 조커는 DC코믹스에서 탄생된 캐릭터인데, 가히 인류 문명사 최고의 악인의 첫 번째로 꼽힐 만큼 악명도, 팬들의 애정도 넘치는 스타 캐릭터다.

빌런이 어떻게 매력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 적확한 답변을 제시하는 조커는, 두 영화에서 같지만 다른 특성을 보인다.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거짓말을 밥먹듯 한다. 그는 자기 입이 어떻게 찢어졌는지에 대해 영화 내내 몇 번이고 언급하지만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 거짓말을 밥먹듯 하면서도 그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그 거짓말로 상대를 낚아 채고 상대의 심리를 뒤흔드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인간성에 지극히 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일삼는다. 역시나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조커는 바보는 아니다. 어설픈 걸음걸이와 때때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내비치지만 이 역시 모두 그의 계산된 행동이며, 그는 쉽게 누군가에게 잡히지도 않는다. 모든 일은 그의 계획 하에서 완벽하게 이행되고 있으며, 그는 완벽해보이지 않는 건들건들한 모습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결과를 즐거이 감상한다.

그러나 <조커>의 조커는 다르다. 그는 입이 찢어지지도 않았고 무법천지의 도시에 살고 있지도 않다. 후에 자신이 무법천지로 만들어버리긴 하지만. 그는 가난하고 힘들지만 어떻게든 이 사회 안에서 살아보려 노력하는 한 노동자다.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터지는 병을 앓는 바람에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나 오해를 받기 일쑤지만, 그는 언젠가 멋진 코미디언이 되어 모두를 웃게 만들고 싶은 꿈이 있는 소소한 시민이었던 것이다. 그런 조커는 병든 노모와 시간이 지나도 자신에게 친절해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사회의 바닥을 계속해서 맛보며 비뚤어지게 되는데, 끝내는 자신의 태생을 알게 되고 (혹은 그렇게 착각하고) 완전히 엇나가버린다.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기 힘들었던 조커. 누구의 공감도 살 수 없던 조커는 아무의 공감도 살 수 없는 자신 혼자만의 웃음을 찾는다. 사람을 죽이면서 웃는 것이다. 사람을 괴롭히며 웃고, 타인의 불행에 폭소를 터뜨린다. 그렇게 미쳐버린 조커는 그렇게 우리가 아는 '조커'가 된다.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인 고담 시티에서 악을 자행하는 가장 무서운 빌런, 조커.

이렇게 두 조커가 비슷하지만 각각 다른 서사로 만들어졌는데, 이 책에서는 성격 또한 다르게 분류하고 있다. 다른 서사를 가졌으므로 당연한 일이지만.

편집증적인 사이코패스 면모를 보이는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망상장애를 앓고 있는 조현형 성격의 <조커>의 <조커>는 분명 다르다.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범죄를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한다. 그가 악을 좇는 동기는 찾을 수 없으며, 그런 동기를 중요시 여기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그저 악에서 태어난 것만 같은 캐릭터로 안티테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러나 <조커>의 조커, 아서 플렉은 영화 시작부터 이미 정신증 증세와 스트레스를 보여주고 있었고 망상 장애를 동반하다가 끝내 미쳐버리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환시와 환청이 들리고, 망상을 경험하는 일은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부분이 바로, 같은 캐릭터가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잘 아는 영화와 드라마, 또는 소설 등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유형적으로 묶어 분류하고, 분석하며 창작의 모범 답안으로 제시해준다. 이런 성격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히어로가 된다면, 또는 빌런이 된다면, 아니면 히어로를 돕는 히로인이나 조연이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어떤 모습으로 극을 이끌어가게 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이야기를 잘 매듭지을 수 있는지까지 친절하게 제시해주니 창작자의 입장에는 답안지에 가까운 책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 책에서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일 뿐,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나가서 인물이 파멸하는지, 또는 성장하는지, 이야기가 결국은 어떻게 끝맺어지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창작자 자신이다. 참고는 하되, 이 클리셰와 뻔한 방향을 어떻게 바꾸어 새롭고도 의미있는 결말에 도착할지 정하는 게 관건이겠다.

다만 여전히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심리학 전체를 통틀어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사람을 각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되는 일종의 "편견"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보여지지만 어떻게 해서 이런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를 보통 과거-가정사에서 찾는 일이 많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그 이유를 찾곤 하는데 양육을 주로 '어머니'가 맡는 일이 많다보니 부모와의 관계보다도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해당 유형의 성격이 발생하는 이유를 찾고 있다. 심리학 자체가 그런 건지, 아니면 이 책의 집필을 그렇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정말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만을 원인으로 그런 성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인지, 아버지와 자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편부모(한 부모) 가정에서도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그런 성격이 기인하는지 말이다.

여하튼 이 책 덕분에 앞으로 내 캐릭터 창작에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성격과 성격적 결함과 그런 성격이 기인하게 된 이유와 서사까지 잘 정리해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내 캐릭터에게 맞는 MBTI와 내 캐릭터가 갖고 있는 생각과 행동, 그 심리는 어느 성격군 유형에 부합하는지, 또는 여러 복합적인 성격증을 가지고 있는지까지도.

요즘의 콘텐츠는 '잘 만든 캐릭터 하나'가 전부라고, 그 캐릭터 하나가 극을 다 이끌어간다고 한다. 이런 캐릭터 전성시대에 이 책은 창작자들에게 굉장히 유용할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 시크릿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쓰여졌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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