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더스트 패밀리 안전가옥 오리지널 21
안세화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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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전가옥이 펴낸, 안세화의 스타더스트 패밀리.

2022년 올해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 더없이 유쾌한 가족 오락 액션 코미디를 접했다.

여기, 다섯 가족이 있다. 구성원은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딸, 아들이다.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이 가족 구성원들은 그 구성처럼 몹시도 평범하다. 할아버지는 정정하고 여느 노인들 답게 자주 툴툴대며, 어머니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수다스럽고 오지랖 넓은, 참견 많은 중년이며, 아버지는 자신이 '가장'임을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확연히 주장하나 그 위엄은 찾아볼 수 없으며, 딸과 아들은 서로 몹시 투닥대기 바쁜, 여느 집안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남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이토록 평범한 이들이 어쩌다 '정신병원'이라는 곳에 무려 '감금'씩이나 되었단 말인가.

영화 장화홍련에서 그러하듯, 이 가족의 이야기도 침착하고 인자한 병원장이 환자를 상담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출처럼 이 평범한 가족이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들의 과거를 짧게 설명해준다.

다소 허무맹랑하고 괴리감 넘치는 주장이지만 그들은 모두가 같은 과거와 기억을-의사의 입장에서는 병명과 증상을-공유하고 있었다. 의료인의 입장에서야 다섯 명이나 되는 가족 공동체가 똑같은 망상장애 증상을 보이니 다소 흥미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다섯 식구들 입장에서는 답답해 죽을 것 같은 반응이다. 어떻게 다섯이나 되는 사람들이 같은 망상 장애를, 그것도 말 한톨 다르지 않게 주장할 수 있냐고? 그거야 사실이니까!

히어로는 의외로 평범하다.

이 소설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처럼 평범한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그 가지를 뻗어나온다. 정신병원에 갇혀, 계속된 탈출 시도가 막혀 하루하루 지루하고 반복적인 나날을 보내면서 우리가 정말 다같이 망상장애를 앓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체념에 좀먹힐 무렵, 히로인과 엄청난 단서의 등장으로 인해 그들은 곧바로 힘을 얻고 서로 긴 회의 없이도 짠듯이 일을 처리한다. 과연 가족애가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서로 "아, 그럼 어떡해?! 뾰족한 수가 있어?!" 하고 서로 니탓내탓을 하다가도 놀랍도록 서로 나서지 않고 놀랍도록 도망치는 데에 만장일치를 보이는 이 사랑스럽고 허술한 가족을 보라.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지만 누구 하나 크게 놀라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미래에 머리를 부여잡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국가정보원이 가족의 인생에 끼어들고, 스파이 임무를 받아도 큰 고뇌와 역경 없이 신나게 능력과 재주를 발휘해 써먹고 돈을 벌고, 또 돈을 진탕 쓴다. 이 얼마나 유쾌하고 고민 없는 가족인가.

사건이 전개되면서 여러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이 사랑스럽고 허술하고 유쾌하고 고민 없는 가족은 <어차피 도망칠 수 없다>는 전제와도 같은 상황이 주어지자, 체념은커녕 마블의 어벤져스 뺨치는 K-어벤져스의 액션 넘치는 데뷔를 노린다. 마치 타노스의 괴력과 그가 가진 무시무시한 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떼샷으로 승부수를 던져보는 것처럼, 그들은 거침이 없다.

하지만 마블의 어벤져스와 그들이 진정 다른 것은 무엇인고 하면, 그들은 평범하다. 어릴 적부터 국가로부터 훈련 받은 정예 요원도 아니고, 정체불명의 파워 주사를 맞고 모든 것을 막아내는 금속 방패를 지니고 있지도 않으며, 엄청난 부와 명성이 따라붙는 천재 과학자도 아닌 것이 그들이 가진 것이다. 이 거대한  우주적 싸움에 지구에 사는 인간 몇 죽고, 도시가 조금 파괴된 정도는 뭐 쿨하게 넘어가는 그런 게 아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린 괴생명체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가진 것 중에서 먹을만한 걸 찾아 던져준 지극히도 평범한 회피와 모면의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탄생해버린 히어로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던 사람들을,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기 전의 삶도 넘치게 사랑해왔기에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향후 위험할 수도 있는 분자들은 반드시 제거"한다거나 "혁명이나 재건을 위한 조금의 희생 쯤이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그런 거창한 생각따위는 갖지 않는다. 무슨 지구를 지키는 지구용사도 아니고, 독수리 오형제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가족의 안위를 걸렸기에, 가족을 지키려고 싸움에 나선 것이며, 그렇기에 관계 없는 제3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뻑하면 폭탄을 등장시켜 건물과 사람들을 통째로 한꺼번에 날리려는 건 위험 요소 제거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발판일 수 없다. 위험 요소 제거라는 협의 없는 기막힌 작전과 실행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건 위험 요소가 아니라 그간 그들이 알고 지내온 살갑고 반가운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대의를 이야기하며 이야기가 무거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에게 위험한 상대와 싸우고자 한 것이지, 지구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싸우지 않는다. 또, 그래서 불필요한 희생을 최소화하려고 웃겨죽는 노동과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배 씨네 가족은 유쾌하다. 어느 상황에서나 그렇다. 죽다 살아났어도 그들은 약간의 농담과 함께 다시 일어선다. 마치 베고 또 베어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아주 강인한 히어로의 모습으로! 일어선다면 좋겠지만 그냥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큰일날 뻔했네, 하고 고비를 넘기는 식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이를테면 배 씨 가족의 전제 조건 같은 것이다. 무조건 평범하기.

비범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정신병원에 오게 되었고, 또 어떤 비범한 상황들을 마주하고  전개해 나가는지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언제 어느 상황에 펼치더라도 유쾌하고 재밌는 이야기니까. 이 정신병원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지, 정말로 미친 사람들만 입원한 병원인지, 떡밥은 끝까지 주어진다. 같이 달려보자.

이 서평을 올리기 위해, 알라딘에 왔는데 책이 추리/미스터리 장르에 있는 걸 보고 아연실색했다. 이만큼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웃겨 죽는 한국형 'K-어벤져스:병동워'가 또 어디에 있다고!

다 읽고 덮었을 때 이 이야기에 독자가 어떤 평을 내리고 점수를 매기든,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책은 정말로 페이지터너다.

사실, 요즘 발간되는 거의 모든 책의 추천사가 '책읽기를 멈출 수 없다', '엄청난 페이지터너', '결국 밤새서 다 읽었다', '책장을 덮을 수 없다' 등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 추천사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 나마저도 이 책에게는 순순히 '페이지터너'라는 칭호를 아낌없이 내린다. 다 읽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혹평을 주고 싶은 독자라도 이 문단에는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이 책은 정말로, 정말로 페이지터너다. 일단 첫 몇 장만 읽어보라. 그 다음부터는 술 없이도 취한 것처럼 아주 술술 읽힐 테니까!



*이 서평은 출판사 안전가옥에게 도서를 제공 받아 쓰여졌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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