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
신주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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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은 안전한 선택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안전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평범함은 허들이 되어, 인물들의 앞에 놓인다. 타인의 시선은 장애물이고, 그것은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개수도 많다.

살면서 장애물을 맞닥뜨렸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뛰어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 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세상에서 제시하는, 그러니까 '평범함'을 가장한 무언의 폭력을 허들로 앞에 두고 있다.

삶에는 돈이 들고, 생존은 그것보다 조금 싸고, 존재는 아주 비싼 이 삶에서 그들은 싸지 않은 생존기를 치르는 듯한 모습으로 허들을 맞닥뜨리고 있다.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에게 의구심이 든다. 책에 나오는 여타의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왜 그런 무모하고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거니, 왜 더 참고 살지 않고 이혼했니, 왜 미혼으로 아이를 낳았니, 고지를 눈앞에 두고 왜 갑자기 쥐약을 먹고 자살했니,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은 때마다 선택을 한다. 다만, 보편적이고 평범한 세상의 기준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다.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거기에 대해 큰 이유나 설명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의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과거 같은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 예컨대, 「휘발, 공원」처럼 당장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 귀찮아, 때마다 사랑하지 않는 연인에게 좋게 맞장구 쳐주며 선택을 조금 유보하는 행위 마저도 선택의 일종인 것이다.

때마다 그런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하여, 지금의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보았을 때, 우리는 정말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타인처럼 느껴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실은, 나는 나마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몇 몇 과거의 선택은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이었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으며,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택하지 않을 선택이다. 예술에 대한 무모한 신념으로 점철되어 자기 안위조차 돌보지 않는 일을 벌이는 햄과 같을 때도 있었고, 남자친구의 적당한 말이나 감언이설에 속아, 아이를 낳으면 그를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화자처럼 가늠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에 인생 전부를 걸고자 했던 때도 있었다. 나는 때마다 선택의 기로와 같은 허들 앞에 놓였다. 이들처럼.

삶에는 돈이 들고, 선택은 삶이 치르는 값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우리는 각자 모두 과거 선택에 대한 값을 치르고 있다. 그것이 자신이 영위하는 삶이고, 어쩌면 힘에 겨운 '겨우 생존'일지도 모르고, 존재와 가치와 의미를 얻고자 하는 비싼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내가 비록 과거의 나를 이제 와서 이해할 수 없을지 언정, 결국 그가 저지른 일들을 해내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허들 앞에 놓인 모두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곁에 서 주어야 한다. 서 있어야 한다. 위로와 격려처럼 거기 서 있어야 한다.

안전한 선택은 보편적이고 평범한 선택이고, 그것만이 세상의 비난과 타인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리고 안전한 선택이 정말 끝까지 안전을 보장해주나? 몹시 안전한 선택은, 정말 안전한가?

때마다 선택을 유보하고 조금 더 자신이 안전해 보이는 선택을 골라 살아왔다고 한들, 존재 가치를 풍만하게 느끼는 충족할 수 있는 삶인가? 타인의 눈초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뛰어 넘어야 할 허들이 낮기라도 한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모두 허들 앞에 서 있고, 그때마다 어떤 선택이든 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 선택이 옳았는지 그른 선택이었는지 알 수 있겠지. 단, 판단은 세상과 타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그때 어떤 선택이라도 해야 했고, 그래서 내가 지금 살아 견디고 있는 것이라면 옳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 마음으로.

안전한 선택 같은 것은 없다. 길 위에 아주 조금 튀어나와있는 돌뿌리 하나에도 걸려 넘어져 다치는 것처럼. 아주 낮고, 적은 수의 허들이라도 장애물은 위험하다. 안전히 땅에 발 붙이고 기어서, 걸어서 통과할 수 있는 허들은 없다. 무조건 뛰어야 한다. 뛰어 넘어야 그 다음이 나오는 것이다. 뛰는 것은 부상의 위험을 안고 있는 행위이다. 모두가 그 앞에 서 있을 때, 누군가는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페이스 메이커처럼 존재해 주어야 한다. 비록 뛰는 것은 자기 몫일지라도.

고작 손바닥만한 너비를 가진 하이힐로 위태롭게 지면을 밟아 걸으면서도 타인에게 했어야 했던 말처럼 살자.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꼭, 연락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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