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수첩 - 보통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살을 향한 대담한 사유
가스가 다케히코 지음, 황세정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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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자살'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만으로 대충 40을 조금 넘게 살았는데 그중 30년을 맞이로 살아왔던 내가 2019년 이후로는 외동아들이 되었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지만 내 삶의 궤적이 동생의 그것보다 쉽고 평탄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삶을 끝낼 정도의 의지 차이가 날만한 궤적이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의 영역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과학 책들은 말한다.

DNA는 이기적이고 모든 생물은 자신의 DNA를 되도록 오래 남기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고.

하지만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OECD 최고 수준임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작은 한반도에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없다.

살고자 함은 DNA에 새겨진 본능인데 무엇이 그들의 본능을 거스르게 하는지, 그들의 심리는 과연 어떤 것인지.

정신과 의사가 쓴 이론서가 아닌 에세이라고 해서 현학적인 접근 대신 무언가 솔직한 날것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읽어보게 되었다.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 봐도 결국 자살은 불가해한 채로 우리를 비웃는다.

나는 이 책에서 조금이나마 자살에 관해 고찰해 보려고 한다.

무익한 시도가 되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살이 우리를 비웃고 농락하는 모습만 지켜보고 싶지 않다.

내가 자살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주겠다는 태도로 마주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작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pg 10)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환자와 자살을 다룬 여러 문학 작품들을 통해 자살의 원인을 아래와 같이 총 일곱 가지로 분류해 본다.

1. 미학, 철학에 따른 자살

2. 허무함 끝에 발생하는 자살

3. 동요나 충동에 이끌린 자살

4. 고뇌의 궁극으로서의 자살

5. 목숨과 맞바꾼 메시지로서의 자살

6. 완벽한 도망으로서의 자살

7. 정신질환이나 정신 상태 이상으로 인한 자살

(pg 115-116)

물론 논문용으로 철저하게 검증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느낌 대로 분류한 것이라서 자살에 이르는 원인이 딱 하나인 경우는 별로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각각의 원인별로 문학 작품이나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유명한 자살 사건들을 예로 들며 설명하고 있다.

다 읽고 나서 동생은 어떤 유형이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본다.

우울증이 심각했으니 7번은 당연히 포함될 것이고, 2번이나 4번 정도가 포함될 수 있지 않나 싶다.

책을 읽다가 녀석의 유서를 보관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득 아쉬워졌다.

물론 당시에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다 태워버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나 싶다.

그때는 경황이 없기도 했고 감정도 좋지 않았으니 당시에는 안 보였지만, 지금이라면 읽을 수 있는 행간의 의미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도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잠든 아이를 억지로 차에 태워 고향 집으로 향했던 그날, 평소와 달리 꼭두새벽에 도착한 나를 의아하게 생각하시던 할머니, 연고도 없는 곳에서 발견된지라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던 부모님, 예정보다 빨리 도착한 그 녀석의 시신을 굳이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던 행정 절차, 장례식 일정과 장소를 잡은 뒤 계단에 쭈그려 앉아 당시 직장 팀장님한테 전화했을 때의 목소리도...

자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저런 장면들이 떠오르는 내 입장에서 저자는 어떤 마음으로 자살이라는 소재를 공부해 보고 싶었는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다만 기대에 비해서 내용이 좀 표면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1장의 사례처럼 정신과 의사로서 본인이 경험한 사례를 조금 더 많이 다뤄줬다면 훨씬 현실감이 있었을 텐데, 결국 남이 써놓은 문장일 뿐인 문학 작품이나 과거의 유명한 사건 속 사례들을 주로 다루다 보니 아무래도 겉만 핥는 느낌이 없지 않다.

물론 이는 내가 자살이라는 소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 기인하므로 온전히 저자의 탓이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본래 자살이라는 개념이 다루기 어려운 주제라는 점에는 공감한다.

유서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유족들 외에 공개되는 것도 드문 일이고, 뉴스를 통해 접하는 기사에는 죽은 자들의 표면적인 이유들만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인 저자의 책에 더 기대를 많이 가졌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이 정확한 동기를 짐작하지 못하는 자살도 마찬가지다.

그 죽음에서 엄청난 인생의 비밀을 알아차리는 사례는 드물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삶과 죽음에 깊은 의미가 숨어 있지 않으면 마치 모욕을 당한 기분에 빠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자살이란, 세상을 아무 미련 없이 놓아버리는 동시에

남겨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그런 극적인 효과의 다른 이름이니까.

(pg 192)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 역시 직접 언급한 '자살 체질'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 간혹 눈에 들어온다.

정신과 의사도 그만두려고 한다는데, 자살 유족의 한 명으로서 저자가 심연을 바라보다 자신도 심연에 빠지고 마는 불상사를 겪지 않기만을 바란다.

('자살 체질'이라는 단어는 마음에 들지 않으나 저자가 사용한 용어여서 차용했다.)

어이없게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유명 가수 한 명이 자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유명인의 자살은 평소 '자살 체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실행력을 높이는 일종의 트리거로 작용하기 쉽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르게 될지, 자살 유족의 입장에서 순수하게 걱정이 된다.

미래가 없으니 아이를 낳지 않고, 현실이 괴로우니 자살률이 높은 것이라는 자조는 과연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어찌 됐든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는 이제 나를 위해서라도 그만하려고 한다.

이번 책을 마지막으로 자살이라는 단어와는 당분간 작별을 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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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홀론 1~2 세트 - 전2권
제레미 오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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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정신과 전문의면서 SF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이력이 독특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작품은 가까운 미래, 갑자기 달 근처에 다크홀이라는 의문의 현상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블랙홀처럼 뭐든지 빨아들이는 것도 아니라 그냥 그 위치에 검게 존재할 뿐인 그 천체에 처음으로 사람을 보내게 되고, 오랜 경력을 지닌 우주비행사 '루크 쇼'가 우주선에 오른다.

놀랍게도 다크홀을 통과하면 원통형의 우주 도시 같은 것이 등장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지구들이 보인다.

'라마'라고 불리는 그곳에서 루크는 이곳이 진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다크홀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곳이라는 점과 우주에 떠 있는 수많은 지구에 각각 의식적인 존재는 단 한 명씩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그가 지금까지 그의 지구에서 알고 지낸 모든 사람은 다 그 사람들의 수많은 무의식중 하나라는 의미이며 때문에 전 세계 인구수만큼의 지구가 떠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꿈을 꾸게 되면 랜덤하게 무수한 무의식중 하나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루크는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자신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자 하지만, 의식적인 존재가 떠나고 나면 그 지구는 곧 사라지고 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여기까지가 1권의 절반 정도의 이야기고 그 이후에는 루크가 딸 엠마를 찾아 다른 지구들을 뒤집고 다니는 여정이 이어진다.

일단 세계관이 매우 독특하다.

프로이트의 의식과 무의식이 작품의 세계관을 단단하게 떠받히고 있다.

또한 한 지구에 의식적인 존재는 단 하나라는 설정도 참신했다.

결국 의심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의미가 없고, 자신이 유일한 의식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는 이야기다.

작품의 제목인 '홀론'이라는 단어는 정작 작품 속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 보는 단어라 검색을 해보니 '부분으로서 전체의 하나인 동시에 각각이 전체적인 통합을 이루는 단위'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즉 이 세계의 의식적, 무의식적 존재들은 모두 한 개인의 일부이지만 동시에 각각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기에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작품 후반으로 가면 자기 자신이 무의식중 하나라는 것을 자각하는 자들도 등장하면서 무엇이 진짜 현실인지 예상하기 어려운 전개를 보여준다.

루크는 모험을 거듭하며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라마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로 여겨지나, 그에게 라마는 그의 다른 무의식만큼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300페이지 후반의 두 권짜리 작품으로 꽤 분량이 긴 편인데, 배경도 참신하고 내용 전개도 예측 불가여서 굉장히 재미나게 읽었다.

특히 우주선 내부 장면들은 하드 SF 느낌이 물씬 풍길 정도로 정교하고 상세해서 몰입감도 좋았다.

물론 환상을 만들어 낸다거나 무의식적인 존재들은 죽어도 피가 나지 않는 등의 설정은 다소 비현실적이긴 했으나, 세계관에 잘 녹아들었고 그런 허구성이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저자의 이력이 독특한 만큼 배경과 스토리도 긍정적인 의미로 매우 독특했다.

이미 책을 몇 권 낸 이력이 있는 작가여서 조만간 다른 작품을 더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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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독서평설(12개월 정기구독)
지학사(월간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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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해준 책이 바로 독서평설이다.

학부모가 된 후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학습만화에 치중된 아이의 독서 습관을 바꿔줄 수 있는 좋은 징검다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었다.

하지만 부모가 권하는 것을 아이가 모두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

보이는 곳에 갖다 놓기도 하고 내가 직접 읽으면서 '재밌네'라는 식으로 유도도 해봤으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아이가 겨울 방학을 보내면서 갑자기 독서평설 시리즈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도 부쩍 관심을 보이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이 책이 쫙 있는 모습을 보고 과월호를 빌려오기도 했다.

부모로서는 뿌듯하기 그지없는지라 정기 구독을 고민하던 차에 아이에게 3월호를 선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 3월호 역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의 글이 잔뜩 수록되어 있다.

표지에 보이듯 맛있는 팝콘에 숨겨진 과학 지식을 재미나게 전해주는 코너도 있고, 삼국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역사 코너도 있다.

활판인쇄박물관이라는 곳도 소개되어 있어서 부쩍 따뜻해진 날씨에 나들이 장소를 고민하는 부모들에게도 좋은 정보가 되었다.

그 밖에도 3월에 딱 맞는 속담인 '봄눈 녹듯 한다'라는 표현과 '우천시는 어디에 있는 시?'라며 재미있게 어려운 단어를 소개해 줌으로써 아이들의 문해력을 높여줄 수 있는 코너가 눈에 띈다.

150페이지 정도로 두께는 얇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서는 글씨가 다소 작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림책이나 학습 만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줄글로 넘어가기에 이 정도의 분량이 딱 적절하지 않나 싶다.

그림이나 사진 등 시각자료도 많아서 그런지 우리 아이 역시 한 페이지를 꽤나 오래 집중해서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로 잘 읽는다 싶으면 정기구독을 해도 본전 생각은 나지 않을 것 같다.

아이 학원 한 달 정도 다닐 비용으로 1년 동안 재미나게 독서를 이어갈 수 있으니 가성비도 좋은 것 같아 다음 달부터는 구독을 해볼까 싶다.

후미에 보면 독자들이 직접 인터뷰도 하고, 읽은 책을 추천해 주는 코너도 있는데 언젠가는 우리 아이도 자신의 글 하나쯤 게시하는 보람을 느껴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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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세대 -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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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소셜 미디어가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이제 기정사실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였었다.

소셜 미디어의 해악도, 이 문제의 해답은 근절 밖에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뻔한 소리의 연속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차를 뒤적이다 소셜 미디어가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더 해롭다는 부분이 있어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호기심을 참지 못해 읽게 되었다.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이지만 이 책의 핵심은 상당히 간단하다.

이 책에서 내가 주장하려는 핵심은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아동이 불안 세대가 된 주요 원인이 이 두 가지 추세

- 현실 세계의 과잉 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에 있다는 사실이다.

(pg 26)

따라서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강조한 문장을 반대로 하면 된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은 후반부에 등장하고, 초중반에는 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결합이 이토록 파괴적인 결말을 낳았는지를 구체적인 데이터들로 증명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2010년을 기점으로 이 시기 이전과 이후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정신 건강 정도가 통계적으로 분명한 차이가 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시기가 바로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보급과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가 결합되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즉 데이터로 볼 때 범인은 소셜 미디어라는 점이 거의 확실하고, 이 소셜 미디어에 24시간 접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 스마트폰의 보급이 아이들의 정신을 갉아먹었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원인은 같은데 왜 여자아이에게 더 큰 악영향을 가져다준다는 걸까.

저자가 여러 이유를 제시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는 여자아이들의 경우 소셜 미디어가 계속해서 보여주는 너무도 이상적인 '모델'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매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게시물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의 정신을 앱 안에 가둬놓는다.

이에 반해 남자아이들의 경우 소셜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이상적인 '모델'에 자신을 대조하기보다는 비디오게임이나 포르노에 중독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 밖에도 여자아이들의 폭력성이 상대의 사회적 지위를 낮추는 방향(무리에서 따돌린다던가,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등)으로 나타난다는 점, 우울의 감정이 남자아이들에 비해 더 쉽게 전염된다는 점 등의 이유들이 있다.

여하간 이러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와 스마트폰에 접근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해결책 중 독특하면서도 훌륭한 통찰이라고 생각했던 방법이 바로 아이들에게 현실에서 놀이를 통해 위험을 무릅쓸 기회를 충분히 주라는 충고였다.

요즘은 놀이터에서도 과도한 안전제일주의 때문에 아이들이 넘치는 모험심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고, 이는 아이들이 쉬운 (신체적은 물론이고 심리적인) 허들을 넘으면서 더 큰 허들에 대비하는 훈련을 충분히 하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어른들에게 통제받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몸을 부딪히며 서로를 배려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박탈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놀이 대신 스마트폰을 든 채 무방비로 가상 세계에 빨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휴대폰을 금지하고 놀이가 넘쳐나는 학교는 예방에 투자를 하는 셈이다.

그 결과로 현실 세계에서의 과잉보호를 줄일 수 있는데,

이것은 아이들이 안티 프레질리티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와 동시에 가상 세계의 지배력을 느슨하게 함으로써

현실 세계에서 더 나은 학습과 관계를 촉진한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하지 않는 학교는 높은 수준의 학생 불안과

씨름해야 할 가능성이 높으며, 점점 증가하는 학생의 고통에 대처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써야 할 것이다.

(pg 374)

물론 다른 학생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쓰는 마당에 우리 아이만 마냥 못쓰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놀이터를 모험이 가능한 곳으로 만드는 것도 쉽지 않기에 저자 역시 학교 차원, 지역사회 차원, 국가 차원의 방안도 열거하고 있다.

하지만 차원이 커질수록 현실 가능성은 낮아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폐해를 널리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아니라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세대라면 마땅히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쉽게 읽히면서도 의미 있는 책이었다.

특히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스마트폰 구입 시기는 아내와 함께 늘 고민하던 주제였는데 이 고민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듯이 여럿이 함께 할수록 효과가 큰 방안들이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공론화가 되어 사회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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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메이슨 코일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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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무심코 책상에 올려두고 잠들었다가 밤에 보면 화들짝 놀랄 것 같은 표지를 자랑하는 SF 공포 스릴러 소설이다.

앞에 수식어가 많은데 그만큼 여러 설정들이 합쳐져 상당한 재미를 준 작품이다.

작품의 주요 인물은 AI까지 포함하면 총 5인이며 공간적인 배경도 한 부부의 2층 저택으로 한정된다.

이 저택은 혼자서 '윌리엄'이라는 AI를 만들어낸 '헨리'와 그의 임신한 아내 '릴리'의 집이다.

두 사람 모두 엔지니어여서 집의 모든 기능을 음성으로 작동되는 자동화 시설로 갖추었음은 물론이고 유리창도 방탄으로 꾸미는 등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최고급 안전 사양을 두른 집이다.

헨리는 밖에 나가면 곧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극심한 신경 장애를 앓고 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릴리가 자신의 옛 동료들인 두 남녀를 집에 초대해 같이 식사를 하게 된다.

타인과의 일상적인 대화에도 어려움을 느끼던 헨리는 자신의 작품인 윌리엄을 소개하게 되고, 이 윌리엄이 인간을 향한 알 수 없는 적대감을 보이며 괴상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럼 프로그램이 아니면 뭔데?"

"로봇, 프로그램, 아기... 뭔가가 새로 탄생할 때는 그 존재와 더불어 '공간'이 생겨.

존재 안의 부재랄까. 짐을 싣지 않은 배가 바다로 출항하는 격이지."

(pg 173)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당연히 제목이기도 한 윌리엄이라는 'AI'와 '자동화된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사유를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한 AI가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은 그동안도 많았기에 사실 윌리엄이라는 인공지능은 참신한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강박스러울 정도로 안전을 고려해 설계한 저택이 오히려 밖으로의 탈출을 불가능하게 하는 최첨단 감옥으로 탈바꿈되는 지점은 꽤나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막상 AI로 인한 공포감은 부가적인 장치고,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 가장 적대적인 공간으로 변할 때 느낄 수 있는 극한의 공포를 제대로 경험한 것 같다.

후반부에는 나름 반전도 있어서 읽는 속도가 붙으면 책을 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윌리엄은 인간이 아니야.

놈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 여기서 한 일, 다 기계적 속임수에 불과해.

화면, 카메라, 보안 시스템 모두 한 가지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에너지 변환일 뿐이야."

"그게 바로 영혼의 정의 아니야?"

(pg 244)

저자의 책은 처음이어서 이것이 저자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사람들이 긴 글을 싫어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쓴 것인지 문장 자체가 매우 짧고 간결하다.

마치 영화 스크립트를 읽는 것처럼 대사로만 진행되는 부분도 많고 사건의 전개도 '걸어간다. 말한다.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와 같이 짧은 문장들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270페이지로 그리 얇은 두께는 아닌데 금세 읽어버린 것 같다.

물론 문장이 짧다는 것은 가독성을 높여주지만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흔히 기대하는 찰지고 멋진 문장을 만나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장르 자체가 그런 것을 추구하는 장르도 아닐뿐더러 유튜브 영상도 배속이 없으면 보기 힘든 이 시대에 짧고 강렬한 재미를 주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으므로 부담 없이 재미난 소설을 읽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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