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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애주가의 고백 - 술 취하지 않는 행복에 대하여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이덕임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술을 마실 때 나 역시 일행 중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견딜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서만 부끄러운 짓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pg 71)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핑계로 '나는 술자리를 좋아하지 술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난 내가 술을 좋아하지 술자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몇 년 전에 깨달았다.
난 참 술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맥주를 좋아하고 가장 좋아하는 술자리는 오로지 나 혼자 있는 술자리이다.
결혼하고서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 회식 후 2차 가자는 동료들에게는 집에 간다고 하고서
맥주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온 적도 있을 정도다.
살면서 혼술이 크게 늘게 된 계기가 두 가지 있다.
첫번째는 컨설턴트라는 허울에 반해 뛰어든 내 첫 직장일이 결국은 영업사원에 지나지 않았고,
난 사람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다.
대인기피증이 심해 평일에 연차를 내고 휴대폰을 끄고 방안에만 있다 출근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원래도 가끔 혼술을 하긴 했지만 이때부터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아니,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일, 인간관계, 인맥을 핑계로 술을 마셨다.
밤을 새워 마시기도 하고 아침에 모르는 사람과 눈을 뜨기도 하고.
그러다 급작스럽게 어떤 '깨달음'을 얻어 이제는 술을 끊고 이런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책이 주는 메시지는 심플하다.
술 마시다 죽기 싫으면 그만 마시라는 것이다.
이 책을 한 문단으로 요약할 수 있는 구절이 비교적 초반에 등장한다.
술을 끊으려면 술을 그만 마시는 수밖에 없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항상 같다.
술을 마시는 데는 어떠한 심리적 이유도 없다.
누설해야 할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술주정뱅이가 술을 마시는 것은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pg 50)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중독' 상태에 있는데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알콜중독자' 하면 뭔가 TV에서 등장하는 노숙자나 컴컴한 방에 혼자 쭈구리고 앉아서 깡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 정도가 아닌 우리들은 그저 '술에 조금 의존적인'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위하지만,
실제로는 의존증과 중독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나역시 술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숙취로 보낸 시간까지 술이 영향을 준 시간이라고 치면 근래 10년은 술에 취해있던 시간이 그렇지 않았던 시간보다 더 길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이 책의 제목에 이끌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읽게 되었다.
어처구니없지만 책을 받은 첫 날에는 맥주 한잔 하면서 읽기도 했다.
위에 언급했던 두 번째 혼술의 증가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였다.
한 백일 정도까지는 아이가 밤에 자주 깨서 아예 술을 마실수가 없었다.
하지만 평소에 먹던 버릇이 있으니 계속해서 스트레스가 쌓이기만 하고 배출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폭발해서 집사람이나 아이에게 신경질을 내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금단증상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집사람이 그럴꺼면 그냥 마시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그 뒤로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혼술을 하고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정도면 괜찮은 수준 아닌가 싶을수도 있다.
하지만 빈도를 통제한 뒤로 양을 통제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혼자 마시면서도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셔대는 날이 많아졌다.
나 또한 간헐적으로 금주를 실천해 봤지만 스스로 술을 조절할 수 있겠다는 자극을 받은 것 외에 별 이득은 없었다.
장기적으로는 점점 더 술을 마시게 될 뿐이었다.
잠깐의 절주는 통제 능력을 보여 주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통제력이 상실되는 신호인 것이다. (pg 134)
저자도 마찬가지의 경험을 했었다.
위 구절을 읽고서는 일종의 무력감까지 느꼈다.
나도 건강검진 후나 한번씩 심하게 아프고 나서는 짧게는 한달, 길게는 두세달 정도 술을 조절했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시 원래 사이클로 쉽게 돌아오곤 했다.
군대에서 술을 못마시니 대안으로 찾은 것이 담배였다.
평균적인 흡연자들에 비해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담배는 7년 정도 피우다가 결혼 전에 끊어버렸다.
한 1년 정도는 힘들었는데 그 뒤로는 생각도 안난다.
담배값이 올랐을 때 그 전에 끊길 잘했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금연 후 주량이 더 늘었다.)
그치만 술만은 정말 끊기가 어렵다.
심지어 지금도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맥주를 한잔 할까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미련한 생각이지만 이 책에 술을 끊을 수 있는 비책이라도 있길 기대했다.
하다못해 저자만의 특별한 노하우라도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건 없었다.
심지어 저자는 한번 의존증에 빠진 사람은 평생 그것을 잊지가 쉽지 않다고까지 이야기한다.
핵심은 자신이 중독이라는 것을 깨닫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중독을 혼자서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절대로 가 보지 않은 길이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중략 -
실패란 동시에 자유를 의미한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죄의식을 견디기 위해, 불안함과 자책을 덜기 위해,
자신에 대한 커다란 기대와 스스로의 하찮음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건 완전히 어리석은 전략이다.
술은 삶의 어떤 경험, 어떤 경력, 위대한 생각,일 혹은 책과도 상관이 없다.
삶은 그 자체로 항상 충분하다. (pg 198-199)
멋진 말이긴 하지만 크게 와닿지 않는다고 할까. 뭐 책 한 권 읽는다고 인생이 바뀌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잘살겠지만...
나에게는 지금 닥친 불안함과 자책을 덜어내는 것이 더 시급한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가 말하는 그 '은총'의 시점이 아직 나에게는 오지 않은 모양이다.
담배도 끊은 나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술도 그만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가 얼른 와서 이 책을 다시 평가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사족이지만, 저자가 말하는 독일의 음주문화가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술을 장려하는 직장 문화 같은 것들이 특히 그렇다.
이런 현상들이 개인들로 하여금 금주하기 더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고 한다.
점점 직장 회식 문화도 변화해가고 있다고 하니 점차 더 바람직한 음주문화가 생겨나리라 믿는다.
아이가 눈에 띄게 커가고 있다.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아버지에게 술은 일상이었다.
내 아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그와는 달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