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정상입니다
하지현 지음 / 푸른숲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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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매일의 일상은요, 사실은요, 재미없어요. 지루해요. 그리고 뻔해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그게 보통의 삶인 것 같아요. (pg 14)



상당히 재미난 제목을 가진 책이다.

책 표지에 큼지막하게 "이런 일로 병원에서 만나지 말자."라고도 적혀 있다.

과연 어떤 내용일까?



'피로사회', '소진증후군', 'OECD 자살률 1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표현해주는 단어들이다.

그만큼 우리는 녹록지않은 세상을 살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 인터넷 기사에서도 전체 국민의 상당수가 우울증을 경험하거나 앓고 있는 것으로 보도할 정도로 심각한 세상이 되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가?

저자는 자신을 찾아온 자칭 '환자'들 중 대부분은 정상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책은 자신이 비정상인 것 같은, 혹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이를 저자가 풀이해주는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혼자 있는 게 너무 편해서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사람,

미래가 너무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 없는 사람,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으로 폭식과 구토가 이어지는 사람,

딱히 좋아하는 것 없이 그냥저냥 살아가는 데 이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고민하는 사람 등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거나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한 둘은 있을법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해당 사례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정상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해 준다.


먼저 좋은 신호와 좋지 못한 신호를 구별한다.

사회생활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다거나 잠은 잘 잔다거나 식욕에 이상이 없다거나 하는 것들은 좋은 신호에 속한다.

하지만 자살 시도를 했다거나 일체의 사회 생활 없이 고립된 생활을 한다거나 폭식-구토가 반복된다거나 하는 것들은 나쁜 신호에 속한다.


이러한 신호들을 파악한 뒤에 정말로 이 사람이 평균 분포곡선에서 양 극단에 속하는지를 판단한다.  

사실 혼자가 편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넓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인간관계가 폭넓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성향 문제이지 무엇이 바람직하고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계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pg 103)



누구나 올바르거나 바람직한 취미생활을 가지지는 않으며, 미래에 대한 꿈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태반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미운 사람을 치고 싶을 때가 있고, 누구나 한 번쯤은 죽고 싶을만큼 괴로운 일을 겪는다.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얼마든지 행복했다가도 우울하고 기쁘다가도 슬퍼진다.

저자는 이럴 때 상담이나 서적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캐내고 현재의 좋지 못한 일들의 이유를 찾아내는 시도는 위험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상담센터나 정신과에 가서 들은 몇 개의 이론, 책도 찾아보고 나는 왜 이럴까 하면서 파헤쳐본 지나친 내면 성찰들이

이 얘기들을 줄을 세워버리면 나머지 애들은 다 의미가 없는 기억같이 돼버려. 부수적인 기억이 돼버리는 거죠. (pg 233) 


이를 '심리화'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성적인 존재여서 이유를 찾으면 모든 기억을 그 이유에 맞춰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릴 적 친구들에게 외면 당했거나 부모님에게 애정을 못받았다는 이유를 찾아내는 순간 자신의 현재에서

불행한 모든 사실들을 이 이유를 근거로 설명하려한다는 것이다.

이는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를 알아서 뭐하겠냐는 거야 지금. 왜냐하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어요. (pg 229)



문제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일상'이냐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매일의 일상은요, 사실은요, 재미없어요. 지루해요. 그리고 뻔해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그게 보통의 삶인 것 같아요. (pg 14)


SNS의 폭발적인 증가로 사람들은 서로의 사생활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랑할 일이 있을 때 SNS를 찾는다.

맛있는 걸 먹거나, 특별한 사람을 만나거나, 멋진 곳에 가거나, 좋은 물건을 사거나...

SNS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나만 빼고는 다 행복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누구나 위와 같은 짓들을 한다. 다만 매일, 매순간 하지 않을 뿐이다.

남의 이벤트와 나의 일상을 비교하면서 오는 불행감을 사람들은 우울로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사회가 '보편적인 삶의 궤적'이라는 것을 너무 높게 설정하고 있다는 것 역시 지적하고 있다.

언제쯤 되면 어떤 직장을 가져야 하고, 언제쯤이면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져야 하고, 언제쯤이면 집과 자가 차량을 가져야 하고 등등.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러한 '보편적인 삶의 궤적'을 쫓는 일 자체가 힘겨워지고 있다.

이는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잘못이다. 이를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웬만해서는 정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나의 문제보다는 우리가 숨 쉬고 있는 환경이 나라는 사람을 자꾸 이상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면이 커요. (pg 236)


몇 시 몇 분부터 밤이라고 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없듯이

우리 삶도 꼭 '이건 정상이다, 비정상이다'라고 가를 필요가 없는 게 더 많아요. (pg 238)



저자가 이런 책까지 쓰게 된 이유가 뭘까를 고민해 봤다.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이유가 뭘까?


나는 소통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내가 유별나서 이러는게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상당부분 해소될 고민일 수 있다.

세상이 각박해져가니 사람들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자신의 생각 속에 매몰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난 제목에 걸맞게 상당히 재미난 책이었다.

저자가 세미나나 강의를 진행하며 녹취한 내용을 그대로 책으로 옮긴 듯한 형태를 띄고 있다.

때문에 끝까지 구어체로 기술되어 있는데, 책이 그리 두껍지도 않은데다 저자의 말투가 상당히 재밌어서 금새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었다.

(눈으로 보지만 귀로 들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가진 고민들을 대입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고 나름의 위로와 해결책도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사례가 좀 더 풍부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사례가 일부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더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가 관련 활동을 계속 한다면 언젠가는 2권이 나와 이러한 아쉬움을 좀 더 달래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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