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부제로 달려 있는 문구이다.
미친 짓이라고 하면 다소 어감이 거칠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누구나 살다보면 자신도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미련한 실수들을 하게 마련이다.
보험설계사 말만 믿고 필요도 없는 보험 상품에 덜컥 가입해버리는가 하면
좀 더 기다리면 싸게 구입할 수 있었던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해 버리거나
고심해서 산 옷을 입지도 않고 옷장에 쳐박아두기도 한다.
우리는 왜 이런 실수들을 하는걸까?
이 책은 두 저자가 이런 인간의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을 연구한 책이다.
나 자신도 누구보다 이성적이라 생각하며 살지만 사실은 말도 안되는 실수들을 너무도 많이 하는 터라,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컸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저자는 우선 인간의 행동의 근원이 되는 동기를 파악하는 이론적 배경 두 가지를 먼저 비교하고 있다.
전통경제학자로 불리는 학자들은 대체로 인간을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로 본다.
이 때 합리성의 근거가 되는 것은 단연코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이다.
사람은 누구나 같은 물건을 산다면 10원이라도 저렴하게 사고 싶어한다. (물론 사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도 고려한다.)
하지만 이 이론적 배경으로는 인간이 행동 중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와는 상관없이 결정되는 수많은 행동들을 설명해줄 수 없다.
책에 나오는 예시를 들면, A와 B라는 두 명의 사람에게 만원을 준다.
A에게는 돈을 나눌 수 있는 권한을 주고, B는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다고 해보자.
만일 B가 받아들이면 서로는 그 돈을 갖고 끝나지만, 만약 B가 거절할 경우 A와 B는 둘 다 돈을 받지 못한다.
이 경우 서로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 하려면 B는 A가 1원을 제시하더라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이익이다.
하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A가 불공평하게 돈을 제시할 경우 B는 차라리 둘 다 돈을 받지 않는걸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들을 바탕으로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상황에 따라 경제적 이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합리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인간의 의사결정에는 다양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행동경제학자들의 다양한 실험들로 인간이 특정한 상황 하에서 보이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의사결정들이 많이 연구되어 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두 사람은 이러한 행동경제학자들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스스로를 진화심리학자라 부르는 연구자들은 아래와 같은 주장을 펼친다.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 종과 마찬가지로 자연선택이 현대의
인간에게 부여한 뇌는
특정 방식에 따라 결정을 내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특정한 방식은 조상들의 유전자가 되물림될 가능성을 꾸준히 향상시켜
주었던 방식을 말한다. (pg 32)
다시 말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진화적으로 더욱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심층 합리성'이라 부른다.
이 논리에 따르면 행동심리학에서 주장했던 인간의 판단미스, 오류들은 실제로는 설계상
결함이 아니라
설계상 특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특정 상황에서는 비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결론낼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진화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이러한 시각은 매우 새로운 것이었다.
수년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본 실험이 기억난다.
횡단보도에서 누가 먼저 길을 건너려는 모션을 취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따라 건너려고 하는지를 관찰했었는데,
이 때 정장을 입은 남자와 캐주얼을 입은 남자로 나누어 복장에 따라 사람들의 판단이 달라지는지를 실험했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정장을 입은, 권위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따라 가려는 경향이 더 강했다.
이 실험의 결과도 진화적으로 따져보면, 단순히 우리가 권위 있어 보이는 사람을 더 쉽게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낼 것이 아니라,
권위 있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생존에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어떤 부족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때,
산전수전 다 겪고 부족에서 추앙받는 권위 있는 어르신의 말을 따르겠는가, 패기 넘치는 젊은 청년의 말을 따르겠는가?
어떤 선택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납득이 갈만한 추론이다.
이러한 진화론적 관점은 아래와 같은 통찰을 준다.
첫째, 인지 편향이나 행동 편향 대부분은 진화적으로 더 깊은 기능을 지닌다.
둘째, 특정 편향의 적응 기능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그 편향이 어느 순간에 강해지고 어느 순간에 약해지는지 한결 쉽게 예측할 수 있다.
(pg
84)
따라서 저자는 어떤 행동의 원인을 추론할 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원인(근접인) 뿐만 아니라
좀 더 깊숙한 진화적 차원에서의 원인(궁극인)을 찾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궁극인을 찾아내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이 '부분자아'라는 개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의 자아는 단일한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흔히 그날 기분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상황에 따라 동일한 사람이지만 다른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이 '기분에 따라'라는 애매한 말 대신, 어떠한 상황에서 우리의 자아가 무엇을 더 중시하느냐에 따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부분자아라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계속해서 다양한 도전 과제를 해결해야 했고, 그로 인해 인간의 정신은
각각의 과제 해결에 부합하도록
다양한 심리 시스템을 갖추는 진화적 결과가 생겨났다. - 중략 -
이렇게 각자 역할을 맡아 나뉜 심리 시스템이 부분자아라고 생각하면 된다. (pg
64)
저자는 위와 같은 부분자아가 누구에게나 최소한 다음과 같은 7개는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pg 80)
결론적으로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우리의 부분자아 중 어느 것이 활성화되어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의도적으로 부분자아 중 어떤 것을 활성화 시킬 수 있다면 의사결정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타인의 부분자아의 활성화 정도를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타인의 의사결정의 방향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책의 후미에서는 이렇게 타인의 부분자아에 영향을 미쳐 교묘히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꾼들의 예도 들어주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행동은 언제나 진화론적으로 보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행동경제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어떠한 의사결정이 인간이 비이성적이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진화적 성향이 언제나 우리를 옳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말은 아니다.
심층 합리성은 현대 세계가 아니라 고대 세계에 맞게 계기판이 조정되어 있다.
(pg 320)
우리의 자아는 단일하지 않다.
따라서 지난 의사결정을 돌아보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자책하기 보다는,
그 당시 자신의 어떤 부분자아가 그러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반추해 본다면
동일한 상황에 다시 처하게 될 때 자신의 부분자아에 영향을 주어 보다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물질적 욕구가 더 깊은 진화적 욕구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신용카드를 한도까지 꽉 채워 사용하기 전에
똑같은 진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다른 방법을 고민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중요한 통찰이
생겨난다. - 중략 -
우리의 뇌는 물질적 재화가 아닌 진화적 욕구를 충족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현명한 조상들처럼
오늘날의 우리도 굳이 은행 잔고를 비우지 않아도 이런 욕구를 충족시킬 능력이 충분하다.
(pg 316)
단순히 어떤 의사결정에 대한 판단을 할 때에도, '이때는 합리적이었어', '이때는 비합리적이었어' 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어떠한 부분자아가 의사결정의 배경이 되었는지를 파악해 본다면, 이후에는 보다 상황에 적합한 의사결정을 내릴수도 있을 것이다.
책 자체는 기대한만큼 재미있는 책이었다.
먼저 나같은 문외한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만큼 문장이 쉽고 명료하다.
술술 읽히는 재미가 있으면서도 (나에게는) 새로운 시각이 가득해서 읽고난 후 얻는 것도 많았다.
예시나 실험 결과들도 매우 흥미로웠다.
일부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예를 들면 성별에 따라 이성에게 어필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주장 등)
전반적으로는 아주 논리적으로 전개되어 쉽게 이해가 갔다.
그러면서도 곳곳에 유머러스한 표현들을 집어넣어 책이 지루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누구에게든 '요즘 뭐 읽을만한 책 없어?'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딱 추천해 줄 수 있을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