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 김영사 모던&클래식
로버트 노직 지음, 김한영 옮김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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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모든 사랑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 자신의 안녕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물의 안녕과 긴밀히 묶여 있는 것이다. (pg 91)

 

 

책의 저자인 '로버트 노직'은 최근 신정완 교수의 저작과 강의를 접하면서 친숙해진 이름이다.

자유주의 대표 사상가로 알려져 있어서 저작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우연치않게 기회가 닿아 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자유주의를 그다지 옹호하지 않는 입장이지만,

내 나이에 이미 하버드대 철학과 정교수가 된 자의 책이라면 무언가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나 책의 주제인 '삶'이라는 것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많은 사람들이 부제인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이라는 말에 낚여서 이 책이 마치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차용했을 뿐이지, 책 자체는 오로지 로버트 노직 본인의 사상을 담고 있다.

물론 본인의 사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다양한 다른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이 등장하지만 책의 핵심은 삶에 대한 로버트 노직의 사상이다.

(따라서 이 책을 보고 소크라테스 운운하는 사람들은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다.)

 

제목을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은 '삶'에 대한 사색이 담겨 있는 책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누구도 답해줄 수 없는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 26개의 소주제들로 묶여 있다.
이 소주제들은 마치 저자가 생각나는대로 써 나간듯이 배치되어 있어 얼핏 크게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부분부분 발췌해서 읽기 보다는 한 흐름으로 쭈욱 읽어가야 하는 책이다.

 

저자는 일상생활에서부터 생각을 전개해 나간다.

흔히 행복한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꼽고는 한다.

하지만 저자는 죽음, 사랑, 일상 등을 다루면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목적인 행복한 삶이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또한 쾌락이나 행복은 있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삶, 어리석은 쾌락이나, 소처럼 둔감한 만족이나,

경솔한 재미로만 채워진 삶, 행복하지만 피상적인 삶 등을 고려할 때,
쾌락이나 행복보다 더 큰 무엇인가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pg 140)
얼핏 그럴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면 무엇이 더 중요한걸까?

저자는 사고의 흐름에 따라 쭉 논리를 전개해 나가지만 짧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행복과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삶, 그러한 자아다. (pg 164)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저 그것들에서 즐거움을 얻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정말 그렇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것들이 정말 그렇다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들이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들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우리는 단지 그것들이 그렇다는 생각에서 즐거움을 얻지 않는다. (pg 147)

이게 뭔소리야 싶지만, 저자는 자아, 실재의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신의 실재를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과의 소통, 세상의 다른 존재들과의 소통이 필요하고,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추구하고자 하는 바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어떤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로 해야할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현재 우리가 무엇에 집중하는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에 영향을 받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개인은 그가 어디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가에 따라 구체적인 모습이 형성된다. (pg 171)

 

저자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것들을 주욱 나열한 다음, 이를 목록표로 정리하는 작업도 하고 있는데 그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사진 pg 267)

사실 이 표보다 더욱 완성된 형태도 책에 제시되어 있는데, 이 표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저자가 이 표 자체를 삶의 정답으로 내세우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미리 정해진 척도에서 위로 이동할 때가 아니라,

실재의 차원들을 결합하고 드러내는 우리만의 새로운 방법을 찾고 발명할 때 가장 진실해진다.
우리 자신의 특징과 기회를 활용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삶을 형성해 실재의 차원들 속에서 특별한 궤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중략-
우리 각자는 최소한 은연중에라도 자신의 도표를 만들어야 하고, 상호 연결된 실재의 본성을 이해하고 살아야 하며,
도표에 추가하고 탐구하고 대응하고 우리 삶에 통합된 새로운 차원들을 식별해야 한다. (pg 295-296)

 

 

결국 우리 스스로가 위의 표처럼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의 목록들을 만들고 이를 성실히 추구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들을 추구해야 하는지가 결정되면 어떤 것들을 얼만큼 추구할 것인가도 선택의 여지로 남는다.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들의 이상적인 한계라는 것이 사실상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한대로 추구해가다 보면 결국 신의 존재에 도달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신은 존재의 기원이나 그 이전의 원인이 아니라 그 목표이고, 존재가 움직이고 작동하는 지향점인 것이다.

존재가 도달하는 곳은 신이 되는 것이다! (pg 264)

 

 

하지만 위 구절이 결코 '모두가 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자!'의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착실히 추구하여 신에 근접한 예수나 석가모니같은 성인들이 있었다.

그 성인들은 우리같은 범인들의 존경을 받아 마땅하지만 모두가 그런 삶을 모델로 삼아야 하는가는 사실 다른 문제라고 말한다.

 

더 큰 실재를 향한 이동은 어두운 길을 따를 필요는 없지만, 행복 원칙에서는 멀어질 수도 있다. (pg 293)

 

우리는 두 가지 유혹, 즉 성인이고 싶은 유혹과 인간이고 싶은 유혹을 충분히 그리고 똑같이 느끼지 않을까? (pg 365)

 

사실 성인들의 일대기를 보면 이들이 보통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삶을 산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살아갔으므로 행복했을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정말로 '행복'하기만 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리 살아가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성인의 삶이 정말 행복할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저자는 따라서 모두가 성인으로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저 자신의 일상 속에서 자신의 실재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법륜스님의 책에서 본 생활 속의 수행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책 자체는 참 괜찮았다.

별점이 다소 적은 이유는 역시나 이 책의 난이도 때문이다.
일단 가치, 의미 등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 확 와닿는 느낌 자체가 좀 적으며 문장 자체도 상당히 어렵다.
분명히 국어인데도 문장을 서너번 읽어야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번역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냥 원문 자체가 어려웠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흔한 말로 진도가 참 더디게 나가는 책이었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불쑥불쑥 들었다.

 

이해의 어려움은 물론 내가 가진 기초 지식의 함량 미달에 그 원인이 있겠지만, 누구에게든 쉽게 권해줄만한 책은 결코 아니었다.

특히 출퇴근 시간 지하철 같은 곳에서 읽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며 장시간 책상 앞에 정자세로 앉아 차근차근 읽어가야 할 책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났을 때 건질것은 상당히 많을 것이다. (뭔가 모를 뿌듯함도 느껴진다!)

특히 본인의 이해 정도에 따라 삶에 대한 풍부한 사색을 하게 해주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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