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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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를 앞두고 읽을 책을 고를 때 저자의 책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미 서른 권이 넘는 작품을 읽었고, 작품 활동을 워낙 왕성하게 하는 작가인지라 앞으로도 내가 읽는 속도보다 그가 작품을 발표하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인터넷 뉴스에서 저자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아버지보다 고작 세 살 많을 뿐인지라 앞으로도 족히 10여 년은 더 집필 활동을 하리라 기대했건만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의 작품 목록의 길이가 확정된 만큼 이제 저자의 작품을 '모두' 읽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어쩌면 앞으로 남은 작품들을 아껴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손이 저절로 그의 작품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어린 한 남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처럼 시작된다.

하지만 곧이어 저자의 전매특허인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 사건으로 어린 딸이 살해당한 후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 살던 한 남자가 전처마저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품의 핵심 화두는 '사형 제도'이다.

과연 사람을 살해한 자는 국가가 마땅히 죽여도 되는 것일까?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집행이 되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그럼에도 가해자에게 '사형'이라는 판결이 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피해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형 문제에 대한 담론도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늘 인터넷상을 뜨겁게 달구곤 한다.

저자가 작품을 통해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사형은 무력합니다.

(pg 201)

작품 속에서는 세 종류의 범죄자가 등장한다.

각각 두 유형씩 비교해 볼 수 있는데, 먼저 사형 판결을 받고 집행도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반성한 적이 없었던 자와 처벌받지 않았지만 나름의 속죄를 하며 어떻게든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던 자가 대비된다.

물론 작품 속에서 이 둘을 바라보는 시각도 극명하게 나뉜다.

그 후의 행보가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살인범이라면 동일한 처벌, 즉 사형이 마땅하다는 입장과 이후에 성인군자처럼 세상에 도움이 되도록 살았다면 두 번째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저자는 이 두 입장을 꽤 균형적으로 다루면서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두 입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았으니 자신의 생각은 어떤지를 묻는다.

동기가 무슨 상관인가?

어떤 이유가 있었든 살인 피해자 유족의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자신들은 끝까지 사형을 바랄 것이다.

(pg 440)

"인간이 완벽한 심판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pg 441)

개인적으로는 사형 제도에 찬성하지 않는 쪽이지만, 아무래도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딸이 살해된 부모의 심정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가해자가 자신의 범행을 그다지 반성하고 있지도 않다면, 사법 체계가 하지 못하는 정의를 스스로의 힘으로라도 구현하고 싶을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심정이 아닐까.

작품 속에서 다루는 또 다른 비교 대상으로 둘 다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죄책감이 자신을 갉아먹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 자와,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며 어떻게든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며 살게 된 자가 등장한다.

과연 이 둘의 행보 중 어떤 것이 더 범죄자에게 기대되는 행보일까?

당연히 머릿속으로는 후자의 행보가 더 바람직하리라 생각할 수 있다.

전자의 행보는 사실상 사회에 짐만 되는 태도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피해자와 관계된 사람이라면 오히려 전자의 행보를 보고 싶을지 모른다.

과연 범죄자가 진심으로 갱생했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을까?

이 부분 역시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고민이 될 것이다.

역시 저자의 작품답게 시종일관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저자의 작품들이 대부분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휘발된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은 그래도 문제 제기가 좋아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저자의 사망 소식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집어 든 책이었는데 이 작품마저 재미있어 그 아쉬움이 더 커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일본의 장르소설 저변이 워낙 넓으니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배 작가들이 꾸준히 또 좋은 작품들을 이어갈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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