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깨어라 - 헤르만 헤세 청춘소설 3부작,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송동윤 옮김 / 스타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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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저자 이름은 익숙하지만 책 제목은 생소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지은 작품의 제목이 아니라 그의 대표적인 성장 소설들을 하나로 묶어낸 책으로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까지 총 세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데미안을 제외하면 처음 접하거나 옛날에 읽어서 기억이 나지 않아 꽤나 생소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포문을 여는 작품은 학창 시절에 읽었던 '수레바퀴 아래서'다.

워낙 옛날에 읽어서 그때의 감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는데, 그때는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숨 막히는 작품이었는지 잘 몰랐을 것 같다.

오히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감정 이입이 더 잘 되는 느낌이었다.

정말 단어 의미 그대로 주변의 기대에 억눌린 한 청춘이 서서히 숨이 막혀가다 쓰러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30여 년을 자식으로만 살다가 한 아이의 아버지로 산 삶이 어느덧 10년을 넘어가니 지금은 주변의 기대라는 것만큼 양날의 칼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은 부모가 자신에게 전혀 기대를 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도 실망하지만, 반대로 너무 큰 기대를 쏟아 그 기대에 부응하기 벅찰 때에는 자괴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 작품 속 '한스'는 주변의 기대에 맞추는 삶을 살다 잠깐 발을 헛디뎠을 뿐인데 결국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끊임없는 남과의 비교, 실패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늘 부족했던 지금 여기의 사람들도 누구나 한번은 자각했던 바일 것이다.

자칫 여기서 한 발짝만 잘못 디디면 지금의 위치에서 영원히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가혹한 현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지쳐 버린 노새는 길가에 쓰러져, 더는 쓸모가 없게 되어 버렸다.

(pg 145, '수레바퀴 아래서' 中)

이어지는 '데미안'은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두 번째 순서로 읽으니 그 감상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첫 작품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결국 찾지 못한 채 스러져간 청춘의 이야기라면 이 작품은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바에 비교적 근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살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스'에게는 그의 방황을 지켜봐 줄 누군가가 전혀 없었지만, '싱클레어'에게는 자신의 실수를 이해하고 지켜봐 주며 진정한 충고를 건네는 '데미안'이 있었다.

그래서 '한스'가 결국 자신까지 파괴하는 결과에 도달했다면 '싱클레어'는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서도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눈을 뜬 인간, 이성의 영역에 발을 디딘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 하나,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다. 결의를 굳히고 각오를 새로 하여,

손으로 더듬어서라도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

그 밖에는 어떤 임무도 없다. 원래 없었다.

(pg 398, '데미안' 中)

마지막에 수록된 '싯다르타'는 이번 기회에 처음 읽게 되었다.

제목만 보고서는 당연히 우리가 익히 아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작품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석가모니는 이 작품 속에서도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의 본명을 딴 싯다르타라는 인물은 젊은 시절 석가모니를 만나 큰 감화를 받지만 그를 추종하는 것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이 직접 진리를 얻어보겠다며 큰 소리를 치고는 온갖 방황을 스스로 경험한다.

이야기의 전개가 꽤나 신선했는데, 보통은 세속에 찌들어 있던 인물이 어떤 계기를 통해 고행이나 수행에 떠나게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 속 싯다르타는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고행과 단식을 이어가다 청장년기에 온갖 세속적인 삶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세속적인 즐거움, 즉 부와 명예, 주색과 도박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에 빠져버린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의 타락을 인지하고는 다시금 수행자로 돌아가는 삶을 살게 된다.

그는 결국 지식, 즉 언어로 전해지는 것들을 통해서는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어릴 적 생각대로 살아간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근원적인 샘물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결국 탐색일 뿐, 돌아가는 길이며,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될 수 있다.

(pg 459, '싯다르타' 中)

이 작품에서 싯다르타가 가진 특별한 능력은 바로 누구에게서나 무언가를 배우는 능력이다.

작품 속에서 직접 자신은 여러 사람에게 배운다고 언급한다.

심지어 장사꾼이나 도박꾼에게서도 배운 것이 있다고 말이다.

결국 그는 노년에 접어들어 강에게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길을 발견해야 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고민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결코 자신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면서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물론 같은 자극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그 반응은 다를 것이므로 주변의 영향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지는 스스로에게 달려있겠지만 말이다.

세 작품을 연이어 읽고 나니 왜 이 작품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었는지도 어렴풋이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의 기대에 지쳐 요절한 한스를 지나면 청춘을 바쳐 자신의 길을 찾고자 했던 싱클레어를 만나고, 마지막에는 온갖 삶의 모습을 경험한 뒤 노년의 몸으로 강에서 깨달음을 구하는 싯다르타를 만나게 된다.

이 세 사람이 보여주는 방황과 고뇌의 길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모습들일 것이다.

세 작품이 수록된 만큼 꽤 두꺼운 책이지만 수록작들이 워낙 훌륭해서 그런지 읽는 과정이 그리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 작품을 각각 접할 때와는 다른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므로 이미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 순서대로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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