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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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렸다.

보고서, 이미지, 음악, 영상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영역까지 자동화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있는 요즘이다.

그렇다 보니 이 책처럼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는 책도 큰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직관적인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우리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실제로 하는 경험보다 기술이 매개하는 경험을 더 선호하게 된 세상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책이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체된 인간의 경험에는 손 글씨와 같은 비교적 덜 중요한 영역에서부터 인간 대 인간의 상호작용 저하로 인한 사회 공동체 와해와 같은 거대한 담론까지 그 범위가 넓다.

요즘 세상에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이 딱히 없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나 역시 이 글을 키보드를 통해 작성하고 있지만, 저자는 손 글씨가 우리에게 주는 경험은 학습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고 말한다.

뮬러와 오펜하이머는 노트북 사용이 학습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필기에만 노트북을 사용하더라도 인지 처리 과정의 깊이가 얕아지기 때문에

학습 능력이 손상될 수 있었다."

그들은 세 가지 다른 실험을 통해 노트북을 사용하는 학생이

필기하는 학생에 비해 개념적 질문에 약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pg 100)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도 크게 공감한다.

나는 지금도 회의록을 작성할 때 노트북 대신 개인 수첩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회의 때 노트북을 쓰는 직원들보다 회의록을 더 빨리, 정확하게 작성하는 편이다.

노트북을 사용하게 되면 그 사람이 발언한 바를 녹취록처럼 수동적으로 따라 쓰게 되는 반면, 손으로 쓰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의 발언을 정리, 요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회의 내용이 더 구조적으로 잘 정리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휴대폰 녹음 기능만 켜 두면 인공지능이 회의록도 대신 써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회의에 참석한 인간은 회의 내용을 더욱더 기억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기억에 남지 않는 회의는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또한 기술의 발달은 대중교통을 기다릴 때나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릴 때와 같이 일상생활에서의 시간 개념도 바꿔 놓는다.

이제 무언가를 기다릴 때 스마트폰이 없는 환경은 상상하기 힘들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기다림 속에는 오늘 해야 할 일을 시뮬레이션하거나 어제 본 드라마의 내용을 회상하는 등 우리 뇌를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영상이나 가벼운 게임 같은 것들로 그 기다림의 순간을 지워버릴 수 있다.

이제 기다림은 정상적인 인간 경험이 아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시간을 쉽게 채우는 데 익숙해지면 기대의 기회는 사라진다. - 중략 -

진화심리학자들은 앞날을 생각하고 미래의 사건에 대비하는 능력이

지각과 인지의 측면에서 상당한 혜택을 준다고 했다.

기대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준비다.

기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서적 건강에도 중요하다.

(pg 164)

이렇게 우리는 혼자 사색하는 경험 자체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더 이상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저자에 따르면 그저 알고리즘 회사들에게 데이터를 넘김으로써 편안함이라는 보상을 받는 실험실 쥐와 같은 존재로 추락해 버린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기술의 역할은 우리의 감각을 확장하는 것이지, 내 몸과 마음보다 나의 욕구와 욕망을 더 잘 안다고 주장하는 센서와 알고리즘으로 감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도구를 감각의 효과적인 대체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우리의 관계가 재구성되고 있다.

(pg 322)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심심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의 위대한 업적들은 고요함 속에서 골똘히 생각할 때 나온다.

아르키메데스에게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목욕을 하면서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감상하느라 유레카를 외칠 기회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인공지능의 시대, 모든 것을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미래가 다가온다.

사유하는 동물로서 수천 년을 존재해온 우리는 지금 그 사유의 기능마저도 외주를 주려 하고 있다.

영화 월-E 속 전동 휠체어 위의 인간이 지금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인류의 미래상과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런 미래가 끔찍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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