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괴담
온다 리쿠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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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수상 이력도 상당하고 작품 수도 적지 않아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저자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하게 된 저자의 작품이다.

웬만해서는 내가 읽는 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내가 섬뜩한 표지에 한번, 저자 이름에 한번 놀란 반응을 보였다.

저자 이름을 본 아내가 '유명한 작가지만 자기 스타일은 아닐 것 같은데'라고 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역시 아내가 나를 나보다 더 잘 안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은 연작소설 형태로 중년의 남성 넷이 모여 커피집을 순회하며 괴담 이야기를 나누는 '커피 괴담' 세션을 주기적으로 가진다는 내용이다.

넷 중 둘은 음악 관련 일을 하고 한 명은 외과의사, 한 명은 검사로 직업이 다른 만큼 개성도 각기 다르지만 오랜 친구들이어서 서로를 잘 알고 괴담 이야기를 즐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총 여섯 번의 세션을 가지는데, 직업이 다른 중년 남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해 각각의 세션마다 계절도 차이가 크고 배경이 되는 장소도 계속해서 바뀐다.

연작소설 형식이어서 각 세션마다 일종의 클로징이 있으면서도 이전 내용이 다음 세션에 일부 이어지게 되므로 순차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다 읽고서 가장 먼저 든 소감은 생각보다 심심하다는 것이다.

꽤나 섬뜩한 표지를 자랑하는데, 막상 안에 담긴 괴담들은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 밤에 친구들과 나누던 괴담의 수준과 그리 다르지 않다.

사건 현장에 애완견이 보여서 쫓아갔더니 그 자리에 불에 탄 주인과 강아지의 시신이 있었다던가, 단골 술집에서 늘 앉는 자리에서만 들리는 기이한 소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자리에서만 들리는 바람 소리였다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작품의 중반까지는 이런 이야기들을 중년의 남성들이 커피나 홀짝이면서 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그다지 몰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인물들의 초점이 어디선가 주워들은 괴담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로 조금씩 옮겨가자 저자의 의도가 단순한 괴담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사회의 중견 톱니바퀴로서 그저 굴러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여유 자체가 가지는 낭만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인생이란 게 한 번 왔다 가면 그만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고매한 목표를 내걸고 꾸준히 노력하여 멋진 인생,

풍요로운 인생을 걷고 있는 사람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몬처럼 가볍고 실체 없는(남들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인생도 역시 인생이다.

다몬은 이렇게밖에 살 수 없으니까, 그것도 역시 한 번뿐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견실한 인생'과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pg 212)

요즘 들어 회식을 하거나 지인을 만날 때 종종 들었던 감상이기도 하다.

회사 사람들이야 회사 이야기 아니면 나눌 거리가 없고, 오랜 지인이라도 공통 주제가 없다면 재테크나 드라마 이야기나 나누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소한 것들이 일상의 소중함으로 다가올 때가 분명 있다.

젊을 때 치열하고 심각한 고민을 나누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예전에 심각하게 느껴졌던 것도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미 중년인 작품 속 인물들은 무해한 친구들과 모여 조금은 시답잖지만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목적이 없어서 좋은 수다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제나 고민이 해결되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서 약간의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즐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강렬한 표지가 무색할 정도로 무서운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내의 예언(?)대로 저자의 책을 자의로 다시 선택할 것 같지는 않지만, 궁금했던 저자의 작품을 하나 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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