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클레이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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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뭔가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저자 이름과 달리 작품은 첨단을 달리는 SF, 그것도 스페이스오페라 장르라고 해서 관심이 끌렸다.

잘 쓰면 대박이지만, 어설프면 유치해지기 쉬운 장르라 여러 수상 이력이 있는 작가가 어떤 세계를 만들었을지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되었다.

일단 SF 작품인지라 어떤 세계를 그리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성간 이동이 가능해진 미래이며 활동 반경이 넓어진 인류를 통치하기 위해 지구의 메인 스트림은 굉장히 경직적인 독재 체제를 이루고 있다.

당연히 여기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저항 세력들을 잡아다가 외부 행성 개척에 노동력으로 보내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아턴 다데브'라는 생물학자다.

그는 당시 주류 과학계와 입장이 달라 진리의 추구가 곧 체제 저항이 되고 말았고 결국 '킬른'이라 불리는 외계 행성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작품 속 주류 과학계에는 인류의 우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화의 끝에는 언제나 인류와 같은 생명체가 탄생하기 마련이라는 이론이 지배적이었는데, 사실 생물학적으로 진화에는 방향이 없기 때문에 인류의 존재는 진화라는 과정 중에 발생한 우연의 산물이라고 보는 그의 견해는 주류가 보기에 불온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도착한 킬른에는 여러 생물이 풍성하게 살아 숨 쉰다.

하지만 지성이 있을 것이라 판단되는 생물은 발견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지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건축물의 잔해가 곳곳에 존재한다.

특이한 점은 그것들을 지은 존재의 화석이나 그들이 썼을 법한 도구 같은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배계층은 우주가 인간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믿으므로 그 역시도 인간과 매우 흡사한 어떤 존재가 만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인데 그 정체가 베일에 싸여있는 것이다

유배지에서 낯선 외계 생명체의 흔적과 마주한 그는 자신의 생존과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이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SF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과학적 장치들이 필요한데, 저자는 그중에서도 특히 다른 행성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해온 생명체 계를 표현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간 이동 기술이 전제된 작품이지만, 그런 기술은 '어찌 됐든 가능하다'라며 뭉뚱그리는 반면, 토착 생물에 대한 묘사에는 꽤나 공을 들였고 지구 생명체와는 확연히 다른 공생 체계도 잘 구축해두고 있다.

이곳에는 밀폐된 존재가 없다. 하지만 생물이란 원래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분류하고, 두 개의 라틴어 이름과 정기준 표본을 부여한 뒤

그것이 같은 뿌리를 가진 가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pg 317)

스토리 전개적인 측면에서도 '낯선 행성에서의 생물학 탐구'라는 재미없어 보이는 주제를 계급독재 사회에서의 저항 운동과 접목해 상당히 몰입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중반까지는 억압적인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밀고자 이슈가 중요하게 작용하면서 낯선 환경이 주는 고난에 인간관계적인 고난을 더해준다.

후반부의 결말은 '아바타'라는 걸출한 SF 영화를 이미 접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예상 밖의 전개는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아바타'의 세상이 과거의 인류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문명을 발전시켰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상한 것에 가깝다면, 본 작품 속 세상은 아예 다른 종과 관계 맺는 방식부터가 다른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한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적자생존'이라는 말 때문에 우리는 진화를 권투 시합처럼 상상한다.

링에 최후까지 남는 선수가 벨트를 차지하는.

타자보다 더 크고 강하다고 '적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타자보다 주어진 일을 더 잘 해서도 아니다. 그 모든 타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은 그렇게 움직인다.

모든 세포는 다른 세포를 필요로 하고, 모든 기관은 다른 기관을 필요로 하며,

모든 유기체는 다른 유기체를 필요로 한다. 생물의 기본 단위는 모든 생물이다.

(pg 323)

조금 아쉬웠던 점이라면 번역의 문제인지 원문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문장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그네'라는 삼인칭 대명사가 자주 쓰인다는 점도 그렇고(이는 성별로 구분된 인칭대명사를 최대한 피하고자 함이었을 것 같긴 하다.), 국어로 읽기에는 다소 어색하게 끝나거나 순서를 도치해서 쓰는 문장들이 많다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SF 버전의 독재 사회 타파를 보여줄 것 같았던 초중반이 지나고 킬른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그동안 누적된 궁금증들이 해소되는 쾌감이 상당히 좋았고, 결말 역시 깔끔하고 인상적이었다.

또한 저자가 만든 세계가 우리의 현실과는 굉장히 다르면서 독창적인데,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고 있는 트럼프 시대에 모두가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굉장히 현실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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