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열린책들 세계문학 295
허먼 멜빌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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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수년 전부터 한번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끝내 손이 가지 않았던 작품인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각 잡고 읽어보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출시된 판본도 많은데 이번 책은 표제작을 포함해 총 다섯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작품들 모두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오래된 작품이지만 읽기에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첫 포문을 여는 작품은 역시 표제작인 '필경사 바틀비'다.

이 작품과 마지막 수록작인 '빌리 버드'는 비슷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데 재미나게도 등장인물의 성격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바틀비'가 자신의 생존마저 스스로 포기할 정도로 사회성이 극도로 없는, 그래서 그 누구도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라면 '빌리 버드'는 호감형 외모에 선천적인 선함을 가진, 그래서 세상 물정을 좀 모르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마저 갖추어 누구나 좋아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생존을 위해 누군가를 이용하고 또 누군가에게 이용당해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기능이 부족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바틀비'는 스스로 소외의 길을 걸으며 식사마저 거부한 채 죽음을 택하고, '빌리 버드'는 그를 질투한 상관의 무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사형 선고를 받고 만다.

개인적인 호불호와는 관계없이 한 인간이 사회에서 발을 붙일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회가 정해둔 규칙에 따라 결정될 뿐이라는 점을 두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위 두 작품이 길이가 꽤 긴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짧았던 나머지 세 작품의 감상이 더 좋았다.

특히 당시 엘리트 남성들의 평온한 만찬과 제지 공장에서 자신도 잃어버린 채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린 여성들의 고된 노동 현장을 비교한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처음 '총각들의 천국' 편만 읽었을 때는 '고작 밥 먹는 얘기를 뭘 이렇게 길게 썼나' 싶었는데 이후의 '처녀들의 지옥'을 읽고 나니 그 대비가 상당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곳에서는 인간들이 자신의 노예라고 호언장담하던 기계들이 보란 듯이 서 있고,

인간들이 비굴하게도 그 기계들을 섬기고 있었다.

노예들이 술탄을 섬기듯, 끽소리 못 하고 굽실거리며 기계들을 섬기는 인간들.

기계의 부속품인 회전 기어?

아니, 이곳 처녀들은 그보다도 못한, 심지어 회전 기어의 이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다.

(pg 125,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 中)

이어지는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 역시 그 시대에 만연했던 경제적 불평등을 담아낸 작품이다.

비록 끔찍한 맛이었을지라도 자신의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 빵 한 조각과 푸딩을 건넬 수 있었던 빈자의 집이 자선행사랍시고 귀족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배부하는 부자의 집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두 작품 모두 1850년대에 쓰인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저자가 관찰했던 사회의 불평등한 모습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대통령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사람은 없을 테니 일면 좋아지긴 했겠으나, 1850년대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과학 기술의 발전 정도와 비교하면 사회의 발전은 그보다 한참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아래의 문구에서 볼 수 있듯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를 바라보는 관점 같은 부분은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 공장도 결혼한 여자는 채용하지 않습니다. 일하다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해서요.

꾸준히 일할 사람, 일요일과 추수 감사절, 그리고 종교적 이유로 단식하는 날 빼고는

1년 365일 매일 하루에 열두 시간씩 일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결혼한 사람은 영...

그게 우리 업계의 규칙입니다.

(pg 139,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 中)

'행복한 실패'는 수록작 중에서 가장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역자는 이 작품에서도 흑인 노예의 처지에 주목하면서 만연했던 차별을 지적하고 있기는 하나, 작품이 전달하고자 한 핵심은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에 더 가깝다.

한 발명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한 필생의 역작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어 오히려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마치 탈무드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읽었지만 이 작품이 약 200년 전 작품이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요즘 문학 작품들처럼 단문을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배경 묘사가 좋고, 나쁘게 말하면 문장이 꽤 장황한 편이라서 전개가 빠르다는 느낌은 전혀 없으므로 성격 급한 사람이라면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근대 미국 문학에서 저자의 작품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므로 인생의 과제 하나를 끝낸다는 느낌으로 도전해 보기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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