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1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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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나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읽을 것이 떨어졌을 때 서점이나 도서관을 기웃거리다 눈에 띄면 집어 들게 되는 작가의 목록이 있다.

이 목록에 비교적 최근에 추가하게 된 저자의 단편집이다.

'환상문학'이라는 소개가 붙어 있는데 읽기에 따라서는 호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수록작 중 상당수가 오싹할 정도의 공포감을 선사한다.

420페이지 정도로 살짝 두꺼운 편인데 총 10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스스로가 복수 전문 작가인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이 책에는 복수를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

첫 시작을 여는 '나무'와 '머리카락'은 제목 그대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끔찍한 무언가로 변했을 때를 상상한 작품이다.

이어지는 '가면'이라는 작품과 함께 첫 세 작품 모두 호러 느낌을 물씬 풍기며 죽음과 선혈이 가득한데, 그러면서도 잔인하다기보다는 저자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작품들이었다.

'금'과 '물'이라는 작품에서는 각각 시간 여행과 외계인이라는 SF 소재를 다루고 있다.

'금'의 경우 큰 간격이 있고 두고 미래와 현재 시점을 왕래한 한 인물이 등장한다.

미래에서는 과거를 추억하고, 과거로 돌아와서는 미래를 추억하는, 그 어느 곳에서도 정서적, 사회적으로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는 인간의 방황을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로 풀어내고 있다.

'물'이라는 작품은 보다 더 흥미로운데, 외계에서 온 생명체가 액체 형태로 존재한다는 설정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용한 생물이라면 어떻게든 이용하려고 눈에 불을 켜는 자들이 있고 순수하게 연구를 하고자 하는 자와 같은 지적 생명체로서 측은지심을 느끼는 자가 모두 등장해 짧지만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언급하지 않은 다른 작품들도 모두 재미있었지만 마지막 두 작품은 특히 인상 깊었다.

'Nessun sapra'라는 작품은 뜻이 책 제목과 같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학자이기도 한 저자가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살린 작품으로, 읽다 보면 진짜 고전 러시아 문학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전쟁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데 미스터리가 섞여 그리 달달하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잔잔한 감동과 오싹한 공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수록작인 '완전한 행복'은 저자가 스스로 복수 전문 작가인 것 같다고 말한 근거로 가장 적합할 것 같은 작품이다.

하층민들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권력을 잡고자 수많은 살상을 해왔던 자가 악행의 결과를 수십 년 후 돌려받는다는 내용인데 마지막 결말의 카타르시스가 상당했다.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그 안에 가족의 억울한 죽음과 약자로 전락한 자들의 숙명과도 같은 고통들, 복수의 칼을 겨눈 순간에도 용서와 복수의 실행을 저울질하는 내면의 갈등까지 잘 표현해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용서하는 것이 곧 복수라는 말도 안 되는 결말로 끝나지 않아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 밖에도 마치 영화 '아바타'가 떠오르는 원시 부족과의 만남을 그린 '휘파람', 산에 얽힌 두 부족의 전설이 자본주의에 매몰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이야기를 그려낸 '산' 등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하는 것, 사람의 머리로 알아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은

결국 보고 알았을 때 괴로움만을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pg 239, '산' 中)

이전에 읽었던 '작은 종말'이라는 책과 함께 환상문학 단편선으로 총 세 권이 출간되었는데 아직 두 번째 책을 읽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다음에 읽을 책은 그 책이 될 것 같다.

저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은 아직 못하겠지만 일단 재미가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음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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