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민주주의를 경험한 나라 - 분열의 정치를 넘어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시간 서가명강 시리즈 41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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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양질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서가명강'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제목만 읽어도 지난해에 있었던 갑분 계엄을 다루었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서울대 정치학 교수가 보는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일지 통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는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계 최강국이자 민주주의의 선봉장이었던 나라에서는 정권 교체에 대한 반발로 폭력 사태를 촉발했던 자가 두 번째 대통령에 당선되는가 하면, 우리와 비슷하게 민주화의 길을 걸었던 헝가리나 폴란드는 다시 독재 국가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 밖에도 브렉시트 사태와 몇몇 유럽 국가들에서 극우 정당이 상당한 득표를 얻는 등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며 현재의 민주주의에 새로운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민주화의 독특한 경향, 즉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공존하며 평화로운 정권 교체가 가능했던 87년도 이후의 정치 체계를 정리한다.

구체적으로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시대를 말한다.

저자는 이 당시만 하더라도 갈등이 존재했지만 적어도 상대를 용인하고 설득하려는 움직임은 충분히 보였다고 평가한다.

타협은 서로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 정치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상호 인정과 공존의 정신이 지속되어야 한다.

만약 어느 한 쪽이 상대를 부정하거나 배제하려 한다면,

타협의 기반은 흔들리고 다시 극한의 대립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한국 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타협과 합의라고 할 수 있다.

(pg 66)

저자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지지층이 극명하게 달랐던 세 대통령이 보여준 설득과 타협의 리더십을 꽤나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며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들 역시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들이 보여준 설득과 타협은 곧 양쪽 끝에서 보기에는 야합이나 굴복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만들었던 문화가 민주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매우 필요한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세 대통령 재임 시기에 있었던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 중략 -

살짝 언 얼음관처럼 쉽게 깨질 수 있었던 민주화 초기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들은 타협하고 양보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이견을 좁히고,

합의를 도출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이뤄냈다. - 중략 -

최근 한국 정치가 다시 불안정해지고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양보와 타협'이라는 정치적 관행이 무너지고,

'관용과 통합'의 정치 리더십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pg 117)

사실 이러한 문화가 사라지게 된 것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특히 SNS 보급이 가져온 필터 버블 효과를 간과할 수 없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대, 인간은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기 위해 더 극단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알고리즘은 이에 반응해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노출함으로써 인간을 필터 안에 가둔다.

이제 국내 정치판은 스펙트럼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동전의 양면처럼 앞과 뒤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우리 편이 아니라면 적일뿐인 세상이 되었다.

후반부터는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와 '양보, 타협의 정신'이 사라진 이유를 보복의 정치의 탄생에서 찾고 있다.

전반적으로 저자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할 수 있었지만, 보복 정치의 탄생을 문재인 정부부터라고 보고 있는 지점만큼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이명박의 노무현 탄압은 의혹이고 문재인의 이명박근혜 탄압은 보복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명백한 국정 농단 범죄자의 후속 정부로 출발했다는 특이사항이 있다.

이미 국민들의 분노를 등에 업고 출발한 정부가 지난 정부의 과오를 청소하지 않고 양보와 타협의 미덕을 보여줬어야 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친일 청산을 하지 못했(않았)던 대한민국 초기 정부의 정치적 실수를 되풀이하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싶다.

현재 이재명 정부 역시 같은 출발선 위에 있다.

아직 범죄자에 대한 법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를 지지했던 자들도 국회에 잔존한다.

과연 이 상태에서 그 어떤 리더십이 양보와 타협을 주장할 수 있을까?

저자 역시 현재 정치 체계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상생의 길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조국 등의 사면을 통해 편을 더욱 명확히 가르고자 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이런 이상의 실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작금의 정치적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저자는 대통령 권한의 수직적, 수평적 분배와 다당제로의 개편이 중요하다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 선거구 개편도 뒤따라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유권자들 역시 '우리 편 아니면 나쁜 놈'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24년 12월에 발생한 정치적 위기는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경고음이 울린 것이다.

사태가 일단락 되었다고 덮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꼼꼼한 진단을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경각심을 갖고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이번의 정치적 위기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pg 242)

본래 정치를 다루는 책들은 저자의 정치적 색깔이 명확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당연하지만 이 편이 책 판매에는 도움이 되나, 필터 버블 때문에 읽지 않아도 될 사람들만 열심히 읽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정치색을 숨기려고 노력한 흔적이 꽤 보인다.

물론 학자로서 중립을 지키고자 노력했다는 점은 높이 사고 싶다.

문제는 저자가 지적했듯이 이미 대한민국이 상당한 수준으로 양극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양쪽에서 욕을 먹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쪽에서 보면 '노태우 칭찬하고 문재인 욕하네? 색깔 나왔네'라며 빈정댈 것이고 저쪽에서 보면 '아직도 5.18 타령에 또 김대중 찬양이야? 태생이 전라도인가'라고 비아냥댈 게 눈에 선하다.

(물론 난 '이쪽'이기에 전자의 시각으로 읽었음을 고백한다.)

위의 사유로 저자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 가지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바로 우리의 정치 문화에 양보와 타협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명제 그 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웠다.

세상이 그 이상으로 향하는 길을 험난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상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내 개인의 생각이라도 보다 유연하게 변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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