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 고양이
이준희 지음 / 폴앤니나 / 202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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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 접하는 국내 작가의 SF 단편집이다.

총 여섯 작품이 수록되어 있고, 각각이 모두 조금씩 비슷한 듯 다른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각 작품마다 주제도, 등장인물의 성향도, 분위기도 조금씩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권의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기억'이라는 단어를 택해본다.

첫 작품인 '루디'와 후반부에 등장하는 '마인드 리셋'은 마치 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듯한 이야기들이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의 기억을 직접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루디'의 경우 PTSD를 앓는 소방관들을 위해 인위적으로 기억에 AI를 개입시켜 기억을 변화시킴으로써 부정적인 경험을 없애거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인드 리셋' 역시 부정적인 것이 명백한 기억을 제거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사실상 동일한 시대의 다른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두 작품 모두에서 저자는 인간의 기억이란 단순히 뇌에 저장된 데이터 이상의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살다 보면 많은 것들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 이미 잊은지 오래된 것 같지만, 불현듯 마주친 누군가의 이미지나 지나가는 사람의 향수 냄새, 특정한 음식의 맛과 같은 여러 자극들로 인해 어떤 기억이 훅 떠올랐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기억이란 우리 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오감으로 대표되는 신체와 분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이 작품들의 핵심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 알아?

내 몸이 기억하는 것들, 의식을 잃고 쓰러져가다가도

내가 내민 팔을 보고 강렬히 움켜쥐는 손, 현

장에서 부축해 빠져나오는 동안 뛰는 요구조자의 심장 소리와 숨소리...

그런 것들로 비로소 실감하거든. 아, 또 구했구나, 나도 살아남았구나.

앞으로도 계속 구해내고 싶다고 말이야."

그는 면체와 헬멧을 쓰더니, 관창을 집어 든다.

"실패한 경험이라도 나는 철저하게 더 기억할 거야."

(pg 45, '루디' 中)

표제작인 '평행우주 고양이'와 '대수롭지 않은', '여자의 계단' 등의 작품에서는 각각의 인물들이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어떻게 기억되는가 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다뤄진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필요에 의해 그 관계가 단절되기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타인의 존재가 필수적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타인에게 그러한 존재여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존재란 타인의 인지가 없으면 증명할 수 없고,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이용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 이야기 위에 멀티버스와 같은 SF 설정을 살짝 얹어놓은 작품들이라 보면 되겠다.

사실 '심해의 파수꾼들' 역시 위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다만 그 대상이 인간을 포함한 자연, 특히 바다와 그 속의 생물들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다른 작품들과 차별되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첫 작품인 '루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본 책에 담긴 '마인드 리셋'은 물론이고, 후속으로도 얼마든지 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을 여지가 충분한 설정이어서 이후에도 인간의 기억을 편집하는 세상에서 벌어질 이야기들을 더 들려주었으면 하는 기대감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전반적으로 짧으면서도 간결한, 그러면서도 각각의 작품들마다 고유한 재미가 인상적이었다.

더위에 지친 여름, 시원해 보이는 파란 표지를 보며 재미난 SF 작품 속으로 빠져보고 싶다면 읽어봄직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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