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작인 '평행우주 고양이'와 '대수롭지 않은', '여자의 계단' 등의 작품에서는 각각의 인물들이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어떻게 기억되는가 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다뤄진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필요에 의해 그 관계가 단절되기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타인의 존재가 필수적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타인에게 그러한 존재여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존재란 타인의 인지가 없으면 증명할 수 없고,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이용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 이야기 위에 멀티버스와 같은 SF 설정을 살짝 얹어놓은 작품들이라 보면 되겠다.
사실 '심해의 파수꾼들' 역시 위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다만 그 대상이 인간을 포함한 자연, 특히 바다와 그 속의 생물들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다른 작품들과 차별되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첫 작품인 '루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본 책에 담긴 '마인드 리셋'은 물론이고, 후속으로도 얼마든지 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을 여지가 충분한 설정이어서 이후에도 인간의 기억을 편집하는 세상에서 벌어질 이야기들을 더 들려주었으면 하는 기대감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전반적으로 짧으면서도 간결한, 그러면서도 각각의 작품들마다 고유한 재미가 인상적이었다.
더위에 지친 여름, 시원해 보이는 파란 표지를 보며 재미난 SF 작품 속으로 빠져보고 싶다면 읽어봄직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