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나라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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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우주전쟁', '타임머신' 등의 작품으로 SF의 아버지라 불리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이다.

약 12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며 이번 판본에는 영문과 함께 독후 활동과 편집자, 다른 독자들의 후기가 같이 수록되어 있어서 길이가 짧은 작품임에도 심도 있는 독서를 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

참고로 영화화된 적 있는 '눈먼 자들의 도시'와는 다른 작품이니(이 작품이 훨씬 오래되었다.) 착오 없기를 바란다.

작품의 배경은 제목 그대로 여러 자연재해로 인해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어떤 장소에 유전적으로 눈이 퇴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불의의 사고로 이 나라에 눈이 멀쩡한 '누네즈'라는 남자가 도착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시력을 잃은 곳에서 유일하게 시력을 가진 그는 '볼 수 있는' 능력으로 그 나라를 자신이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눈먼 자들의 나라에선 외눈이 왕이다.

(pg 35)

하지만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 완벽하게 시각이 배제된 사회를 만들어낸 그들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기본적인 인프라 시설부터 완전한 추상의 개념인 종교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시각이 배제된 채 구성된 사회에서 시력을 가진 사람이란 그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일 뿐이었다.

시력을 가진 자의 쿠데타는 허무하게 막이 내리고, 사회적 동물이기에 홀로 생존할 수 없었던 그는 노예로 순종하며 살아가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나라의 과학으로 진단한 바에 따르면 그의 비정상성의 원인이 바로 눈이므로 눈을 다른 사람들처럼 제거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테니 그때 결혼을 승낙해 주겠다는 통보를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력을 두고 고뇌하는 그의 선택을 끝으로 작품은 막을 내린다.

작품에 이어 학생들과 함께 해보면 재미있을법한 독후 활동도 포함되어 있고, 편집자를 비롯한 다른 여러 사람들이 남긴 감상이 이어진다.

여러 감상 중에서 특히 한 푸드칼럼니스트가 이 작품과 도루묵을 연관 지어 쓴 글이 기억에 남는다.

부르는 사람의 처지가 달라짐에 따라 이름이 왔다 갔다 했던 도루묵이지만 우리가 뭐라고 부르든 간에 도루묵이라는 생선의 근본은 전혀 변한 게 없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우리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요즘 사람들은 '가면을 쓴다'는 표현을 한다. '진정한 내 모습'이라는 표현도 쓴다.

어쩌면 '진정한 나'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누네즈가 시각을 놓을 바에는 삶을 놓아버린 것처럼,

나다움을 놓을 바엔 모든 인간관계를 놓아버리는 모습도 보인다. - 중략 -

누구도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타인에게 맞추는 건 '가짜 나'를 연기하는 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짧고 가벼운 만남과 관계 속에서 지쳐 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떤 모습이든 진정한 나다. - 중략 -

우리는 어느 한 모습만을 '진짜 나'라고 붙잡고 있을 뿐, 사실은 모든 모습이 나 자신이다.

(pg 127)

오래된 작품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이 사람들에게 씌워놓는 필터 버블을 설명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같은 작품을 읽고서도 감상은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문학이 갖는 힘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눈먼 자들의 시각에서 변론해 보고 싶다.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누네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두 번의 시도 끝에 곧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결론지어버린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들이 '누네즈'를 이해하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큰 위험이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모든 후손들의 눈이 멀게 되었다는 설정이었는데, 만약에 '누네즈'가 사회에 섞이면서 그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이들이 태어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후천적으로 시력을 제거한다 하더라도 유전자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보이는 걸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없기에 보이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은 극심한 갈등을 빚게 될 가능성이 크다.

보이는 자들이 소수일 때는 박해받는 소수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런 현상이 몇 세대만 거치고 나면 '누네즈' 이전에는 평화롭게 잘 살고 있던 나라가 결국 서로 다른 이념의 국가로 갈라서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눈먼 자들의 멸종으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그들 입장에서 '누네즈'는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서로의 작은 차이도 민감하게 포착해 기어이 구분 짓는(차별하는) 능력이 곧 인간이 진화해온 방향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두 무리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 생각한다.

길이가 짧지만 여러 보충 텍스트들이 있어서 읽는 시간보다 혼자 생각해 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간만에 수행평가를 하는 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저자의 작품들이 워낙 오래되었고, 시중에 나온 판본들도 다 옛날 판본들이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이번 작품을 계기로 다른 작품들도 신선한 해석들을 덧붙여 발매되면 훨씬 더 접근성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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