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우주에서 우리 만나더라도
마크 구겐하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의도치 않게 멀티버스 관련 작품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멀티버스라는 개념이 아직은 온전히 상상 속의 개념인지라 작가마다 그 모습이 다른데, 이번 작품에서는 히어로 영화에서 흔히 보던 형식의 멀티버스가 등장한다.

즉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과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우주들이 존재하고 그 우주들을 오갈 수 있는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작품은 물리학자인 '조너스'의 시각에서 전개된다.

그는 하나의 가설로만 존재하던 멀티버스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데 성공하면서 노벨상의 영예를 얻는다.

동시에 임신이 불가능할 줄 알았던 아내가 임신에 성공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듣는다.

그렇게 직업적인 성공과 개인적인 행복 모두를 손에 넣은 듯싶었지만, 수상 직후 교통사고로 아내가 세상을 뜨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가 없으면 자신의 삶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그는 자신이 밝혀낸 멀티버스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기로 마음먹고 무려 용병까지 고용해서 CERN 입자가속기에 침입, 아내가 살아 있는 우주를 찾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조너스가 돌아서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언제나 당신을 찾을 거야." 조너스가 말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 속에서도. 그 어떤 생애라도." 약속이 맹세처럼 느껴졌다.

(pg 111)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작품에 담긴 설정을 더 소개하자면, 일단 작품 속 멀티버스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저자는 이론상 무한대로 존재 가능한 다중우주를 그나마 유한하게 만들기 위해 우주가 일종의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정하고 있다.

즉, 다른 우주가 우리의 우주와 아주 다른 형태를 띤다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사는 우주에서 0.1% 정도 다를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가 수없이 많은 만큼 그 작은 차이로도 어떤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특정 국가의 존재 여부도 달라질 수 있으니 큰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인류가 발생하지 않거나 인류가 쭉 원시 시대에 머무르는 수준으로까지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또한 히어로물처럼 주인공이 다중우주를 무한대로 왕래할 수는 없다는 제한도 있다.

일단 처음에 입자가속기에서 얻은 에너지로는 이동할 수 있는 횟수에 제한이 있고, 각 우주마다 양자역학의 발달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마음대로 충전할 수도 없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더 신중하게 이동할 필요가 있고, 이 점이 작품의 긴장감을 더한다.

어맨다가 없는 세상은 텅 비었다. 달처럼 황량하고 삭막했다.

위로가 바닷물처럼 밀려들어도, 그의 영혼에 펼쳐진 사막을 적실 수 없었다.

(pg 171)

이런 여러 설정들 덕분에 피상적인 줄거리만 보면 멀티버스를 종횡무진 헤매며 사랑을 찾는 로맨틱한 이야기 같지만, 생각보다 스펙터클하고 긴장감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당연히 우주가 달라지는 것이기에 새로운 세상에서는 자신의 신분도, 돈도, 아는 사람도, 연락 방식도 모두 없는 것과 같기에 맨손으로 부딪혀야 하며, 끝까지 조너스를 쫓는 열등감 덩어리 빌런도 있어서 끝까지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우리의 삶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다루면서도 지금 우리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녹여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상실을 겪고 그리움에 힘든 시기가 있다.

그랬던 경험이 있다면, 그러한 상실을 되돌릴 수 있는 우주가 있다면 기꺼이 찾아 떠나고 싶은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고 있어요." 에바가 말한다.

"상실을 겪고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 알아요. 그 운명이 다른 패를 주었기를 바라며 사는 것.

하지만 상황이 다르기를 바라며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에요."

(pg 270)

개인적으로는 결말이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읽었던 작품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한번 책을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것 같다.

저자가 시나리오나 게임, 그래픽 노블 등의 스토리를 주로 써왔고 소설은 처음인 것 같은데 첫 작품이 이 정도라니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더운 날씨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SF 소설을 찾는다면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그 세상에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아름대운 예술 작품-희곡, 노래, 회화, 시, 교향곡-을 창조해낼 것이다.

조너스처럼, 선택받은 소수는 기존의 현실 인식에 도전하는 통찰을 내놓을 것이다.

모두가 절묘한 고통을, 잔인한 축복을 경험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으로 산다는 의미니까.

그 모든 삶이 하나마다 저마다의 우주다.

(pg 3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