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타고난 성향인가, 학습된 이념인가
존 R. 히빙.케빈 B. 스미스.존 R. 알포드 지음, 김광수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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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그야말로 정치 극단의 시대다.

SNS의 보급이 정치적 성향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간다는 분석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정치 성향에 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진보와 보수는 대체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보통 어느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반대되는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본다.

즉, '몰라서 저런다', '무식해서 저렇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회적 쟁점은 누군가에게는 이득을, 누군가에게는 손해를 의미하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정치적 성향은 과연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일반적으로는 태어난 지역(전라도-경상도, 강북-강남 등), 교육 수준, 경제력, 사회적 관계 등 성장 환경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저자들은 정치적 성향이 성격의 일환으로 일정 부분 타고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성격적인 부분은 유전성이 높아 타고나는 경향도 강하다.

어릴 때 내성적이었던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내성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 책에 따르면 정치 성향 역시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정치 성향을 결정하는 핵심 성격 요인으로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우호성, 신경증 등 다섯 가지 기본 특성을 꼽는다.

이중 개방성과 성실성은 특히 정치 성향과의 상관관계가 커서 많은 실험적 증거들이 정치 성향도 곧 타고난 성격의 일부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물론 모든 증거들은 확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당연히 타고난 성향에 반대되는 정치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경향성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평균 남성 키가 170이라 했을 때, '난 160도 안되는데?', '내가 아는 사람은 180 넘는데?'라는 반박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주변에 그런 예외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상관없이 통계상 평균치가 170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핵심은 개방성과 성실성에 관한 설문 항목이 정치적 질문을 포함하지 않음에도

지속적으로 정치 성향과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인간 심리의 깊은 곳에 사람의 생각과 감정, 행동에서

좋고 싫음을 결정하는 요소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음악, 예술, 명확성, 샐러드 채소, 정치, 도덕을 비롯한

모든 취향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pg 141)

흥미로운 주제지만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지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정치 성향이 태어날 때부터 특정 쪽으로 쏠려 있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히 타고난 성향과 살아가는 궤적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소극적으로 태어났지만 대범한 CEO로 살아가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반골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독재 철권통치 하에서는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성향은 운명이 아니다.

타고난 성향은 일종의 기본값으로서 상황에 따라 채택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 책에서는 '운명적(fated)'이 아닌 '타고난 성향(predisposed)'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처럼 타고난 성향이 이후의 태도와 행동을 한쪽 성향으로 기울이게끔 하기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pg 32)

여하간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같은 현상을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타고난 성향으로 풀어내는 지점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저자들은 특히 정치적으로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유전성이 강하게 발현된 결과이기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특정한 시각으로 세상을 인지하도록 세팅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중도층의 비중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은 저자들도 잘 인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정치 성향의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인류의 아종(亞種)으로 생각하는 편이 더 낫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인류가 본질적으로 모두 같다는 믿음은 옳지 않다.

우리는 사실 근본적으로 매우 다를 뿐 아니라,

그 차이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통계적으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모두

자신과 정치 성향이 같은 사람과 결혼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하다.

이는 초기 종 분화의 기초 작업이 이미 진행되어 왔음을 뜻한다.

(pg 355)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걸까?

그냥 저 족속들은 원래 그러려니 하며 무시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사실 끝까지 읽어도 저자들이 이러한 차이를 두고 뭘 어쩌라는 건지 명쾌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말 몇 마디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고, 상대가 더 받아들이기 쉬운 언어와 접근법을 고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라는 조언 정도로 끝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정치적 갈등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재미있었다.

다만 번역의 문제인지 감수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문장에 오타와 비문이 좀 있고 전체적으로 장황하기도 해서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진도가 잘나가지 않는 편이었다.

원문 자체가 꽤 현학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국어로 번역된 문장이 그리 눈에 말끔하게 들어오는 편은 아니었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하지만 정치 성향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참신하면서도 재미나게 풀어낸 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또다시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를 만들어 낸 이 시점의 대한민국.

같은 결과를 두고 한쪽에서는 축배를 들고, 한쪽에서는 눈물을 짓는다.

각자 반대쪽을 바라보며 같은 인간인데 왜 이렇게 다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꽤 재미있는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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