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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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가소성이라는 어렵지만 신기한 개념을 재미있게 알려주었던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의 저자가 쓴 작품으로 이번에는 우리의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우리가 의식적이라 믿고 행하는 지각과 사고, 행동의 작동 원리에 무의식이 관여하는 바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각만 보더라도 우리는 눈으로 객관적인 세계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보는 주체는 우리의 뇌이며 뇌가 보는 세계는 매우 주관적이다.


눈이 멀쩡해도 뇌에서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이 마비된다면 눈을 잃은 것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반대로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정상적인 안구를 이식받는다 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시각이 생기지 않는다. 

뇌가 눈이 제공하는 정보를 처리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뇌가 눈에서 보내는 정보를 익숙하게 느낄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한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우리가 집중해서 보는 것도 아니다.

출퇴근길에 무수한 사람들을 마주치지만, 자주 마주치거나 굉장히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 정도가 아니면 기억에 남기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정도 뇌에서 예측하는 바를 보고, 뇌의 예측에서 어긋나는 것들만 주의를 집중해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고나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행동을 처음 하게 되었을 때에는 의식적으로 집중하고 노력하지만 그게 익숙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된다. 

지금 타자를 치는 나 역시도 타자를 치면서 자판의 배열을 인지하지 못한다. 

되려 자판에 어느 키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떠올리려고 하면 타자가 더 느려질 것이다. 


과제를 수행 중인 누군가의 뇌에서 활동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사람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과거에 열심히 노력해서 

해당 프로그램을 뇌 회로에 각인시켰다는 뜻일 가능성이 더 높다. 

(pg 200)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무의식이 우리의 판단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진화의 움직임은 당연하고,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사소한 호르몬의 변화나 약물의 작용도 사고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굉장히 많은 사례들이 등장하지만 애주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바로 배우 '멜 깁슨'이 취중에 유대인 혐오 발언을 했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취중진담'이 맞는지, 술이 불러온 실수인지 첨예한 논쟁이 오갔는데 저자의 결론은 '둘 다' 그라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자신과 다른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이 과정이 매우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를 통제하고자 노력한다. 


저자는 이렇게 작동하는 우리의 뇌를 '라이벌들로 이루어진 팀'으로 비유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충동을 느끼지만 그 충동을 모두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다. 

나도 술을 좋아하지만 다음 날 중요한 회의가 있다면 자제하려고 하고, 가끔은 한 대 때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감옥에 간 아빠를 부끄러워할 딸을 생각하며 자제한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그러한 '팀'을 가지지 못한 채 태어난 사람이라면 어떨까?

혹은 질병으로 뇌에 이상이 생겨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일을 저질러 버린 사람이라면?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뇌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사람과 뇌 질환자가 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굉장히 놀라운 제안을 한다. 

책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기도 한데, 우리가 뇌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정상을 참작할'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즉, 지금은 우리가 '뇌에 아무 지장이 없는 사람'으로 분류한 범죄자를 100년 후의 과학 지식으로 분석해 보면 사실 지장이 있는 사람이었고, 치료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물론 그래서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주장은 당연히 아니고, 범죄자를 처벌함에 있어서 미래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이를 강화할 수 있는 훈련, 약물, 시술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처벌의 범위와 종류도 달라져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마다 다른 유전자와 경험을 지닌 사람들의 내면은 외모만큼 다양하다.

신경과학이 발전하면, 조악한 이분법적 카테고리가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도 향상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뇌가 똑같은 인센티브에 반응하며 

똑같은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믿는 척하는 대신, 

개인별 맞춤 선고와 재활을 실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pg 260-261)


인류의 과학은 눈부신 발달을 이루었지만 그 발달을 통해 우리가 알아낸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주 많다는 것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뇌 과학 역시 우리의 무의식까지 상당 부분 들여다보는 수준에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뇌는 아직도 수많은 비밀을 품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비밀이 밝혀질 것이기에 저자의 책처럼 과학이 밝혀낸 바를 대중들에게 쉽게 풀어주는 책이 계속해서 많이 나와 주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우리 뇌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구조였다면, 

우리는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못할 것이다. 

(pg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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