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인웅 옮김, 신혜선 해설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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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학창 시절에 읽었던 것 같은데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새로운 판본이 나왔다는 소식에 이 불멸의 고전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고전 문학의 경우 여러 출판사에서 계속 새롭게 찍어내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인데, 이 판본만의 특징이라면 작품의 해석을 돕는 전문가 두 명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독문학 전문 학자가 아닌 헤르만 헤세 전문가임을 표방하는 두 교수의 시각이 책 후미에 상당한 분량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고전 작품과 현대 독자 간의 소통을 도와주고 있다.


워낙 인기가 많은 작품이라 그런지 출판사마다 번역가도 다 달라서 번역 역시 책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는 하는데 이 책은 번역도 상당히 훌륭했다. 

어릴 적 읽었던 데미안은 뭔가 난해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 책은 내 정신이 그간 성장한 덕분인지, 번역이 깔끔한 덕분인지 어쨌든 읽기에 그다지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해설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의 필독서처럼 인식되어 있는 이유는 이 작품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정한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나 역시 평균 수명이 80이라고 하면 대략 절반을 살아왔지만 진정한 자신이 무엇인지 확신하지는 못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살아온 궤적 역시 작품 속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던 '남들이 기대하는 대로 사는 사람'에 가깝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저절로 우러나온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pg 150)


물론 그 여정이 쉬운 것이었다면 이 작품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동물과는 무언가 다른 존재라고 믿는다면 어찌 됐든 우리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있고 그중 일부는 우리의 본능, 본성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싱클레어의 여정에서도 끊임없이 선과 악, 빛과 어둠 속을 헤매며 정확하게 자신이라 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고민하는, 자신의 내면에 천착하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된다. 

결국 데미안도, 베아트리체도, 피스토리우스도, 에바 부인도 싱클레어가 자신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에 지나지 않듯 진정한 자기 자신은 치열한 고민을 통해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애하는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브락사스라 합니다. 

그는 신인 동시에 악마이며, 내면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아브락사스는 당신의 사상이나 꿈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돼요. 

그러나 당신이 일단 비난할 여지없는 보통 사람이 된다면, 

그는 당신을 떠날 거요. 

(pg 173)


선과 악, 빛과 어둠이라는 도덕적인 관념이 오직 인간만의 것이라면 그 속에서 자신을 찾는 여정 역시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배가 고프지 않음에도 재미로 쥐를 잡아 죽이는 고양이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만둘 리 없듯이, 지나온 세월과 자신의 언행을 돌이켜보고 앞으로의 삶을 수정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힘을 믿고 있었기에 각자가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이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연의 고귀한 단 한 번의 시도인데도 

우리는 인간을 대량으로 살상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단 한 번의 고귀한 시도가 아니라면, 

또 우리 각자를 한 발의 총알로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게 가능하다면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누구나 그 인간 자신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존재이고 완전히 특별하다. 

(pg 4)


해설을 보면 작품의 후반부에 전쟁을 다소 미화하는 듯한 문구들이 있어 오해를 샀었다고 하던데, 위 구절만 봐도 저자가 전쟁을 미화할 의도를 가졌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한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기존의 종교 체계와 도덕관념에 의문을 던지며 진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노력하는 한 젊은이의 모습에서 저자가 가진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너무도 많은 곳에서 인용되어 다소 식상한 느낌마저 있는 구절이지만 '데미안'하면 아래의 구절을 빼놓을 수 없다. 

'알'은 여러 가지를 상징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의 애정 속 완벽한 안전의 세계일 수도 있고, 자신의 정신을 가두고 있는 스스로의 제약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결국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 새가 되기 위한 존재인 알은 결코 새가 될 수 없다. 

그 알은 곧 자신이 보고 누려야 할 하늘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pg 141)


후미에 수록된 작품의 해설에는 저자의 삶과 그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시대적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근본적으로는 문학 작품이기에 그저 작품을 읽고 혼자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해설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질 것이라 언급하고 있듯이 오히려 청소년 시절보다는 어린 티를 벗고 세상에 대한 열패감이 조금은 스며들었을 때 읽으면 더 좋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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