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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불되지 않는 사회 - 인류학자, 노동, 그리고 뜨거운 질문들
김관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2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한때는 노동 문제에 관심이 참 많았다.
그러다 이제는 더 이상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워졌다.
현실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았고 나 역시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명확한 구조 안에서 감히 그 모순을 지적하지 못하는 처지이기에, 고통받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 자체가 괴로워 눈을 감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목을 가진 책들을 보면 그냥 넘어가기가 어렵다.
최소한 이렇게 읽어내고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덧붙여 사회에 뿌려대기라도 해야 그나마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저평가되는 가치인 노동의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책을 펼치면 얼마 넘기기도 전에 수많은 죽음들을 만나게 된다.
과로로 죽고 사고로 죽고,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스스로 비참해져 죽기도 하는 이들.
저자는 노동계에서의 죽음이 일상화된 현실을 두려워한다.
무서운 건 이것을 멈추려는 노력보다 나만 아니길 바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과 어찌할 수 없었던 일이라 무심하게 반응하는 모습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깊은 회의감이 들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는 산재 사망 사고들,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망자 수치들, 그럼에도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한 듯 바삐 움직이는 세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문화적 사실이다. (pg 86-87)
사고는 언제나 발생하고 사고가 발생한 후 이런저런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같은 사고가 계속 반복되고 그때마다 같은 잘못을 지적한다면 그건 이미 의지의 문제다.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우리 사회는 노동의 가치를 높일 생각이 없다.
노동자가 '나와 같은 사람 '이라 인식하는 경영진은 없다.
노동자를 '나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고마운 존재'가 아닌 '내 몫을 가져가려고 혈안이 된 존재'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노동환경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
지금도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고 있는 윤 모 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우리는 노동시간의 합법적인 증가라는 선물을 되돌려 받았다.
그 대가로 모든 것의 가격이 끝을 모르고 뛰고 있는 지금, 우리의 임금만이 겸손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고 그 덕분에 국가의 내수는 팬데믹 시절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순적인 건 '필요한 만큼' 일을 하라는 말 자체일 테다. 이 말은 태생적으로 '필요 이상의 돈'을 지닌 사람들이 '필요 이하의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는 잔혹한 유혹이다. (pg 125)
책의 서두에서도 저자는 말한다.
자신은 정답을 제시할 역량이 되는 사람은 아니라고.
대신 자신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 말한다.
"왜 지금처럼 살아야 하는가? 지금의 우리 사회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인가?"
하지만 이제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할 이유를 잊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고 '원래' 세상은 불공평했다고.
적응한 자는 살아남을 것이오, 그렇지 않은 자들은 탈락할 것이니.
저자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이러한 사건 사고들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타인의 고통이 그저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 믿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한다.
문화에까지 영향을 준 트라우마란 무엇일까. 이것은 문화의 기틀이 되는 도덕적 전제들에 대한 시민들의 깊은 신뢰가 손상된 상태를 뜻한다. - 중략 -내가 문화적 트라우마를 우려하는 이유는 도덕의 붕괴와 불신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탈도덕의 사회가 도래할까봐 우려되기 때문이다. (pg 151, 154)
노동을 하기 위해 경쟁이 필요했고 노동을 하면서 경쟁에 시달린다.
경쟁에서의 탈락은 곧 생존에서의 탈락을 의미하기에 이 땅의 자살률은 좀처럼 낮아질 줄 모른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곧잘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다.
조직생활 부적응자, 무리한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자, 뻔뻔하게 정규직 전환을 요구한 자,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기업에게 피해를 입히는 파업 분자 등 저자는 우리가 그들에게 붙인 수없이 많은 딱지들을 열거하며 이제는 멈춰서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종류의 책은 안에 담긴 말들이 구구절절 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에게 답답함을 안겨준다.
비슷한 책들을 읽을 때마다 언급하는 부분이지만, 해결이 쉬운 문제였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지속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논의하는 것이다.
플랫폼이 지배하는 세상, 그 안에 인간은 데이터로 존재한다.
그 속에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은 어떤 노동을 하게 될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다면 읽어봄직한 책이었다.